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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짼토끼 Jan 29. 2023

4. 덕분에? 때문에?

덕분이 크겠지만 때문은 한 번씩 아프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빠의 죽음이 나에게는 긍정적인 성장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원래의 성격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악착함이 없고 잘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도 없고 그저 그날의 날씨를 즐기며 소소한 행복을 좇는 성격이다. 


아빠는 평생을 부지런히 일만 하시다가, 자식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뒷바라지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그런 아빠가 안쓰럽고 가엽다 생각하여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속 편한 핑계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2000년도에는 IT 학원과 취업이 성행하였다. 

기계과를 졸업한 나는 마땅히 관련 직종을 찾지 못해 IT 학원에서 웹 개발자 과정을 수료하고 취업도 하였다.

 

이제 막 어른이 된 사회초년생. 

아빠의 죽음이 적응되지 않았고, 집안의 분위기는 여전히 장례식장이었고 난 그걸 외면하고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스트레스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여전히 엄마와의 관계는 서툴고 삐뚤어지고 어색했다. 


이때부터였을까?

난 운명론자가 되었던 거 같다.

일어난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고 내가 걱정해도 앞 일은 달라지지 않을 거란 생각. 

그리고 너무 열심히 악착같이 살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우울이 심할 때는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세상이라 생각하니 세상이 밝아 보인다. 걱정들도 별거 아닌 게 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 그래도 소심한 나는 성실히 회사를 다니고 착실히 일을 했다 ) 


대학을 다니며 술맛을 깨달았던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욱 당당하게 술을 마셨다. 

술이 유일한 낙이었고 친구들과 지인들과의 행복한 술자리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내가 직접 돈을 벌고 술을 마시고 여행도 가고 즐겁고 신나게 살았다.

우울한 집과 우울한 엄마는 모르는 척 한 채...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그때를 돌아보니 

나의 소심하고 작은 방황들이 지금의 내 성격을 만들어 준 것 같다. 

엄마의 사랑이 모자란 덕분에 내가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엄마의 칭찬이 모자란 덕분에 내가 스스로를 더 칭찬하게 되었다. 

엄마의 상처 주는 말 덕분에 나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되었고

엄마의 부정적인 생각 덕분에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꾸준히 엄마를 연구한 탓에 

꾸준히 엄마를 원망한 탓에 

나는 엄마와는 다른 사람, 완벽한 어른이 됐다. 

이러다가도 한 번씩 나의 멘털이 흔들릴 때, 

관계에서 소심하고 못난 내 모습이 보일 때

덕분이란 생각은 온 데 간데없고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결과라고 

암마의 단점이 나에게도 있다고 

자책하게 된다. 


정말 엄마 때문일까? 

난 아직 엄마를 원망하고 갈망하는 철없는 아이인 걸까? 

이제 엄마 덕분이다... 때문이다...라는 정의가 필요하지 않은 진짜 어른이 돼야 하지 않을까? 

아직 더 살아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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