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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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지금도 뭐든 안 가리고 잘 먹는다고 할 수는 없는 식성이지만 그를 처음 만나던 무렵의 나는 몹시 입이 짧고 가리는 것이 많았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그 닭갈비조차도 그때는 별반 맛있는 줄을 몰라서 그가 사준 것을 반도 채 다 먹지 못하고 그대로 남기고 나온 기억도 생생하다. 나는 음식 중에 못 먹는 것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음식 중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정해져 있는 수준의 극단적인 편식쟁이였다. 그는 그런 내 식성을 조금이나마 고치려고 참 무던히도 많은 애를 썼었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의 나는 그럭저럭 보통사람 수준의 식성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의 대부분은 그에게서 먹는 법을 배운 것들이다.


그러나 그중 유일하게 내가 밖에서 먼저 맛을 보고 이거 맛있더라며 그에게 '영업'을 해서 먹게 된 음식이 하나 있는데, 그게 쌀국수다.


내가 처음 쌀국수를 먹어본 건 2천년대 초반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직한 회사에 첫 출근을 하던 날, 그 회사의 팀장님이 점심을 사겠다면서 회사 근처의 쌀국수집으로 데려가 한 그릇을 사주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 집의 쌀국수는 양은 많았지만 그리 맛있게 잘하는 집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숙주와 생양파를 가득 넣어 먹은 그날의 쌀국수는 매우 이채로웠고 그 이후로 나는 이 음식은 맛있는 음식이구나 하고 인식하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였던 나는 날이면 날마다 그에게 그날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댔었고 그 속엔 당연히 그 쌀국수 이야기도 포함돼 있었다. 그거 먹어봤는데 맛있더라. 먹으러 가자. 그는 네가 나한테 뭐 먹으러 가자고 하는 일이 다 있냐며 신기해했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쌀국수는 우리의 주요 외식 메뉴 중의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사실 그는 나만큼 쌀국수를 좋아하진 않았다. 그냥 내가 워낙 좋아하니까 같이 먹어주는 정도에 가까웠다고 하면 될까. 그래도 우리는 집 근처에 꽤 이름이 알려진 쌀국수집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한 시간 정도 대기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가서 맛을 봤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그가 먼저 너 쌀국수 먹은 지도 제법 됐으니 나가서 먹고 오자는 말을 했었다. 그렇게 쌀국수를 먹으러 나가면 각자 다른 메뉴 두 가지를 시키고 한 젓가락씩 나누어 먹고는 이건 이런 점이 맛있고 저건 저런 점이 맛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었다.


며칠 전 집 앞에 있던 쌀국수집 하나가 문을 닫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집은 그다지 '맛집'이라고 할 수는 없었고, 그냥 다양한 종류의 쌀국수를 싼 가격에 파는 것으로 유명한 한 프랜차이즈 가게였다. 그래도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지난 2년간 그 집은 쌀국수가 땡길 때 그와 내가 종종 찾아가 한 그릇씩 먹고 오던 추억이 있는 집이었다. 그랬던 가게였는데, 며칠 전 그 앞을 지나가다 보니 간만을 내리고 내부를 공사하고 있었다. 그와 공유하던 추억 하나가 또 이런 식으로 사라진 것이다. 왠지 모를 아쉬움에 나는 한참이나 그 가게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고, 그와 공유하던 것들은 하나씩 이런 식으로 자취를 감추어갈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사라지고 나면 이 세상에 그를 기억하는 건 어쩌면 나 하나만 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안물안궁한 글을 쓴다. 그를 놓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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