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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02. 2024

일인분의 딜레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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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번이나 쓴 것 같지만 내 식단 계획은 이틀이 한 묶음이다. 밥을 한 번 할 때 2인분을 해서 첫날은 더운밥 둘째 날은 찬밥을 먹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이틀씩 짝을 맞춰 나가다 보면 외출 계획이 생겨 점심을 밖에서 먹어야 할 일이 가끔 생기고, 그런 날 밥통에서 밥을 하루 묵히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 정도 짝이 맞지 않는 날이 생긴다. 이런 날 도대체 뭘 해서 뭘 먹고 어떻게 넘어갈 것이냐 하는 것도 내게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다.


어제도 그런 하루였다. 오늘은 또 뭘 해서 오늘 하루를 때우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실로 오래간만에 파스타나 한 끼 해 먹기로 했다. 말이 좋아 파스타지, 내 파스타는 라면을 끓이는 것과 별반 차이도 없다. 일단 면을 삶는다. 파스타면은 소위 알덴테라고 해서 중간 부분 심이 조금 남아있도록 삶는 게 포인트라고 하는데 나는 촌스러워서 그런 면은 아무래도 덜 익은 것 같아 취향이 아니다. 그래서 10분쯤, 아주 푸욱 삶는다. 그래놓고 양파와 표고버섯, 베이컨, 햄 등등을 적당히 썰어서 간 마늘을 넣은 올리브유에 적당히 볶는다. 화이트 와인이 마침 있으니 기분껏 약간 넣는다. 야채가 적당히 익으면 다 익은 면을 넣고 약간 볶다가 미리 사놓은 소스를 적당량 붓고 좀 더 볶는다. 이때 면수를 한두 국자 추가해서 소스가 너무 뻑뻑해지지 않도록 조절하면 끝이다. 적당한 그릇에 대충 담아서 파슬리 가루나 좀 뿌리면 그걸로 아쉬운 대로 적당한 한 끼 식사가 된다. 파마산 치즈가 있다면 조금 뿌려주면 좀 더 좋겠지만 아쉽게도 지금 우리 집에는 파마산 치즈 가루가 없으니 이건 그냥 생략하기로 한다.


이렇게만 적어놓으면 매우 스무스하게, 능숙하게 한 끼의 파스타를 잘 만들어 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나는 아직도 파스타 1인분이 어느 정도 양인지를 정확히 계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엄지와 검지로 말아 쥐었을 때 50원 동전 정도 크기의 양이면 대충 1인분이라고 알고는 있다. 문제는 그렇게 한 움큼을  덜어내놓고도 아 이거 아무래도 적을 것 같다는 생각에 슬금슬금 몇 가닥씩을 더 넣게 된다는 것이다. 파스타에는 밥을 말아먹을 수 없으니 양이 적으면 분명 애매한 시간에 배가 고파질 거라는 생각 때문에 더 그러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슬금슬금, 한두 가닥씩 더 넣은 면은, 다 볶아서 그릇에 담아보면 파는 파스타 기준으로 2.5 인분 정도는 넉넉히 되지 않겠나 싶을 정도로 불어나 있다. 그렇게 태산같이 만들어진 파스타는, 안 됐지만 같이 먹어줄 사람 같은 게 없기 때문에 나 혼자 다 먹어야 한다. 나는 파스타를 할 때마다 이런 실수를 하고,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은 적이 없다.


어제도 비슷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는 각오를 했다는 점 정도가 좀 다를까. 오늘도 분명히 다 볶아놓고 보면 프라이팬 하나 가득 태산 같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어김없이 그 예상은 맞아 들어갔다. 다 만든 파스타는 그와 둘이 나눠 먹어도 배불렀겠다 싶을 만큼 양이 많았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나는 그 태산 같은 파스타를 들고 앉아 틀어놓은 에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천천히, 꾸역꾸역 다 먹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이렇게 태산같이 만들어진 파스타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안 버리고 다 먹어지긴 한다는 점 정도랄까. 덕분에 어제는 밤에 자기 전까지도 간식 생각이 별로 나지 않긴 했다.


아주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다. 요즘은 별의별 것이 다 제품으로 나오는 시대라, 파스타 면을 계량하는 메이저도 있다. 아주 친절하게 적정량만큼의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만큼에 맞춰 면을 덜어내 삶으면 된다. 그런 걸 모르지도 않으면서도 나는 매번 파스타를 해 먹을 때마다 면 계량에 실패해 2인분이 훨씬 넘는 파스타를 만들어서는, 그걸 꾸역꾸역 먹으면서 스스로를 타박하기를 반복한다. 이쯤 되면 이건 뭐, 자업자득 혹은 요즘 말로 '지팔지꼰'이라고나 봐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다. 뭐는 너무 적어서 난리, 뭐는 또 너무 많아서 난리, 혼자된다는 게 참 이렇게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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