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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09. 2024

개기일식이 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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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에 개기일식이 있다길래 좀 호기심을 가졌었다. 내가 알기로 같은 장소에서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주기는 350년이던지 400년에 한 번인가, 여튼 극히 운이 좋아야만 사람의 한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대단히 진귀한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그런 개기일식이 하필이면 그가 떠나간 날 일어난다는 것도 사뭇 이채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감상은 그 개기일식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에서 관측 가능하다는 뉴스를 확인하고는 금세 팍 식고 말았다. 듣자 하니 개기일식을 보겠다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일식이 관측 가능한 일부 주에서는 8조 원 가까운 경제 효과가 발생했다던가.


그와 나는 20년 이상을 함께 지냈다. 개기일식이야 본 적이 없지만 부분일식이나 월식 정도는 몇 번 같이 본 적이 있었다. 가끔 유성우가 관측된다는 여름밤이면 돗자리를 들고 옥상에 올라가 드러누운 채로 한동안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모기에 잔뜩 뜯긴 채 내려온 적도 많았다.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고 물어보면 그는 그냥 싱긋 웃을 뿐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어제는 날이 제법 후덥지근했다. 핸드폰의 날씨 어플에 의하면 한낮의 최고 온도가 24도까지나 올라갔었다고 하니 봄이라기에도 약간 더운 편이었던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점퍼 안에 긴팔 티셔츠를 입고 나갔더라면 더웠겠다는 생각을 나는 어제만도 몇 번이나 했다. 날은 훈훈해졌지만 날이 뿌옇게 흐려 있어 햇빛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가라앉은 하늘 아래로, 한참 피고 있는 봄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저 꽃들은 얼마나 갈까.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내가 저 꽃을 며칠이나 더 볼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봉안당 안에 있는 자판기에서 오랜만에 찬 캔 커피 하나를 뽑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이 시려서 마실 수가 없었던 그 찬 캔 커피가 어제는 더없이 달고 시원해서 오늘 날씨가 좀 후덥지근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 달 들어서 자주 온다고, 그런데 앞으로도 두 번 더 와야 한다고, 다음 주는 당신 제사고 그다음 주는 당신 생일이잖아. 그런 말들을 했다. 나는 여기서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혼자 애쓰고 있는 중이니, 혼자서만 너무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지 말고 이 풍진 세상에서 발버둥 치는 나도 가끔은 좀 살펴 주고 하시라는, 늘 하던 징징거림을 어제도 결국 또 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는 언제나처럼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집에 돌아와 밥통에 남은 식은 밥을 라면에 말아먹고 때우는 것으로 어제 내 공식 일정은 끝났다.


어제는 미국에서 개기일식이 있던 날이었고 우리나라에서 개기일식을 보려면 600년도 훨씬 지나야 한다고 하니 내 평생에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신이 있는 거기서는 그깟 개기일식쯤이야 재미없는 텔레비전 채널 돌리듯 그렇게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지 않냐고, 그의 사진에 대고 물어본다. 우리나라에서 다음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건 600년 후라고 한다. 그때쯤엔, 나도 그의 옆자리에서 같이 개기일식을 보고 있겠지. 일식을 맨눈으로 보면 눈이 상한다는데 거기서도 그러려나. 문득 그런 게 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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