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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pr 14. 2024

이름이 뭐라구요?

-139

스타티스를 사려다 말고 4월의 첫 꽃은 무조건 프리지아여야만 한다는 내 고집으로 주문한 프리지아는 그가 떠난 날을 넘기고 눈에 띄게 그 생기가 쇠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꽃을 산다고는 해도 배송일자까지 한참 시간이 남아 있어서, 그 며칠 동안 그의 책상에 시든 프리지아를 꽂아놓고 싶지는 않아 부랴부랴 동네 꽃집에 꽃을 사러 갔다.


쇼케이스 안에는 늘 보던 장미와 카네이션, 요즘 한참 제철인 프리지아가 가득 꽂혀 있었다. 장미도 카네이션도 프리지아도 다 최근에 사다 꽂아놓은 기억이 있어 뭐 좀 색다른 꽃이 없는가 하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대번 눈에 띈 것은 델피늄이었는데, 이 꽃은 대단히 여리여리하고 예쁘기는 하지만 썩 오래가는 꽃은 못되어서 아쉽게 탈락했다. 프리지아는 빼고, 이번에도 만만한 장미를 사 가야 하려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사장님께서 이건 어떠세요 하고 쇼케이스 가장자리에  꽂혀 있는 작고 하얀 꽃송이가 올망졸망 매달린 꽃을 권해 주셨다. 그러고 보니 새하얀 꽃은 일전의 백합 후에는 한 번도 사다 놓은 적이 없기도 하고, 작고 수수한 꽃을 꽂아놓은지도 꽤 된 것 같아 그 꽃을 사기로 했다. 이 꽃은 이름이 뭐냐고 물었을 때 사장님이 뭐라고 대답을 해주시긴 했는데 워낙에 낯선 이름이라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INFP 답게도 그 이름을 두 번 물어보지는 못하고 그냥 꽃만 받아서 집으로 가져왔다.


이파리 하나 붙어있지 않은 가늘고 늘씬한 긴 줄기 위에 작은 꽃송이들이 몽글몽글 뭉쳐서 피어난 모양은 크기가 작은 수국 같기도 하고 작은 솜사탕 같기도 하다. 때마침 더워진 날을 맞아 새로 꺼낸 얇은 이불의 색과 어울려서 수수하면서도 깨끗한 느낌이라 새삼 잘 사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인터넷으로 꽃을 사면 대개 싼 가격에 싱싱한 꽃을 많이 받을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대개 파는 꽃의 종류가 장미나 튤립, 백합, 프리지아 같은 어느 정도 수요가 보장된 꽃들 뿐이라 집 앞 꽃집에 가는 빈도가 줄어든 요즘은 예전에 비해 새로운 꽃 이름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는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건 영 아쉽긴 해서, 이제 날도 풀렸으니 교대교대로 집 앞 꽃집에 가서 좀 희귀한 꽃들을 사다가 꽂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핸드폰의 이미지 검색까지 동원해 가며 찾아낸 이 꽃의 이름은 '알리움 코와니', 보통은 그냥 '코와니'라고 한다. 찾아보고 나서야 사장님이 말했던 이름이 이거였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고 하얀 꽃이 조랑조랑 열려 있는 모양이 튀밥과 비슷해 튀밥꽃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며, 부추꽃과 비슷하게 생겨서 뜬금없이 '나폴리 부추'라는 생뚱맞은 이명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 꽃은, 제 선임자였던 프리지아와 같은 순수, 천진난만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는 것 같다. 아마도 그의 2주기 제사가 있는 화요일까지 그의 책상을 지키는 것은 이번에 사온 코와니가 될 테고, 이름도 처음 듣는 이 소박한 꽃이 부디 그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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