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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17. 2024

부정출발

-233

그러니까 그게 분명히 6월 말쯤 아니었나 싶다. 벌써부터 이렇게 날이 더워서 올여름은 또 어떻게 나나 하는 소리를 하면서 에이컨을 켰던 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며칠 내내 비가 왔었고 드디어 올해 장마가 시작됐다는 뉴스가 여기저기서 났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와중에 올해도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비 피해가 났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지금이 장마 중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는 말이다. 요즘 날씨가 좀 이상해서, 잠깐 장마전선이 소강 상태거나 뭐 그럴 뿐. 어쩌면 그 덕분에 날이 그렇게까지 막 덥지는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본래라면 오늘 나갔어야 했을 일정이 좀 있었는데 급작스레 어제로 당겨졌다. 그 바람에 허둥지둥 대충 점심을 먹고는 들고나가야 할 것들을 가방 안에 쑤셔 넣다시피 챙겨 넣고 집에서 튀어나갔다. 집을 나설 때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버스에 올라 한참 가고 있는 동안은 그야말로 내려서 걸어갈 일이 걱정될 만큼 미친 듯이 쏟아졌다. 드디어 이름값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나는 관련 뉴스를 몇 개 검색해 보다가 올해 장마는 어제부터 시작이라는 뉴스를 보고 잠깐 멍해졌다. 아니 그럼 내가 그동안 장마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반달 남짓한 기간은 다 뭐였단 말인가.


뭐 크게 달라질 건 없다. 나는 침수 피해가 자주 나는 곳에 살고 있지도 않으며 날마다 어딘가로 출근해야 하는 처지라 비가 오느냐 아니냐에 따라 뭐가 그리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다. 하다 못해 빨래를 집 밖에 너는 사람조차 아니어서 장마철에는 여차하면 널어놓은 빨래를 걷으러 밖으로 뛰쳐나가야 하는 처지도 아니다. 집에서 일하고 어지간해서는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 나에게 장마란 그저 창밖에 내리는 비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반 달간 '지금은 장마 중'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몹시 억울하게 느껴졌다. 아, 그러고 보니 이달 초에 지인의 쇼핑몰 포장 일을 거들었고 그 백여 개 남짓한 박스를 일일이 1층으로 내려다가 차에 싣느라 비가 찔끔찔끔 오는 와중에 몹시 고생했던 기억도 있는데 그게 장마가 아니었단 말이지. 어쩐지 속은 기분이 든다.


누구의 잘못인지는 모르겠고 뭐 굳이 따지고 싶지도 않다. 그런 것 하나 혼선 없이 예보 못 하느냐고 하기에는 요즘 날씨는 문외한인 내가 봐도 어딘가 이상하기 때문에 말이다. 아무튼 이래서 본의 아니게 올해 장마는 반달 가량 '부정출발'을 한 꼴이 돼 버렸다. 이제 장마가 시작이라면 모르긴 해도 최소한 2, 3주는 갈 텐데, 올해 7월은 내게는 꼬박 장마기간으로 남게 생겼다. 실제로 그렇지 않을지라도.


이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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