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
한동안 편의점이고 마트고 가는 곳마다 초콜릿 상품들이 대거 전진배치가 되어 있어서 역시 수능 칠 때가 다가오긴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한 가지 더, 초콜릿이 코팅된 특정 과자 종류가 또 유독 특정 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했더니 오늘이 그 과자 주고받는 날로 암암리에 정해져서 그런 것인가 보다.
꽤나 오랫동안 우리에게는 2월 14일도 3월 14일도 10월 31일도 11월 11일도 모두가 의미가 비슷했다. 그냥 그 핑계로 그날 주고받는다는 뭔가를 사 먹는 날 정도의 느낌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네 날 모두 초콜릿 혹은 달달한 것을 주고받는다는 공통점이 있고, 그래서 저 날들에 우리는 그 핑계를 대고 조금은 비싼 벨지안 초콜릿 같은 것을 사다 놓고 하나씩 나누어먹는 정도로 치레를 마쳤다. 그러나 그런 재미도 같이 할 사람이나 있을 때 이야기다. 한동안은 발렌타인데이라도 일부러 초콜릿을 사다 먹기도 했었지만 이제 같이 챙길 사람이 없어져 버린 지금은 그냥 나 하나 모른 척 넘어가면 아무도 섭섭해하지 않는 날 정도로 격하된 저 날짜들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져 버린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올해 10월 31일에는 그 흔한 박하사탕 한 봉지 사지 않고 그냥 지나가기도 했고.
오늘만 해도 그렇다. 그냥 슬쩍 지나가버린대도 이젠 섭섭해할 사람도 없고 서운해할 사람도 없다. 그러나 그래도 괜히 기분이 그래서, 어제저녁 편의점에 갔다가 모르는 척 아몬드가 박힌 것으로 하나 슬쩍 골라 같이 계산을 했다. 이 과자들도 몇 년 사이에 점점 바리에이션이 다양해져서 베이직한 과자 위에 초콜릿 코팅이 된 것 말고도 무슨 딸기 맛 감굴 맛 치즈 맛 요거트 맛 허니버터 맛 등 온갖 종류가 다 있었다. 이왕 사 먹을 것 그런 새로 나온 맛들 중에 하나를 살까 하다가, 그래도 나도 그도 가장 무난하게 좋아했던 아몬드 맛으로 골라서 사기로 했다. 기껏 사 온 과자는 먹지 않고 잘 두었다가, 오늘 오후쯤 슬슬 입이 궁금해질 때 먹을 예정이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건 생각하기 따라서는 굉장히 복잡하고 번잡하기도 하고, 가끔은 좀 귀찮기도 하다. 나 하나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달력에 날짜까지 일일이 체크해 가며 오늘은 초콜릿 주는 날, 한 달 후는 사탕 주는 날 하는 식으로 신경을 쓰는 것도 제법 귀찮고 성가신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래도 이 브런치에 들르시는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런 거 같이 할 사람이 있을 때 많이 해두시라는 말이다. 챙겨야 할 그 누군가가 없어져 버리면 그 날짜들만 뒤에 덩그러니 남아 더없이 쓸쓸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떠나가도 날짜는 남고, 사람은 떠나가도 해마다 11월 11일은 돌아오기 때문에. 그리고 그날들에 초콜릿 과자를 나눠먹던 기억은 웬만해서는 잘 잊혀지지도 않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