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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의 일이다. 소셜커머스에서 싸게 파는 가격만 보고 덥석 샀다가 온 고기들이 죄다 후지살이어서 실망했다는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다. 그렇게 실망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여덟 팩이나 되던 고개들은 한 팩씩 두 팩씩 야금야금 잘도 먹어치우고 이제 한 팩만 달랑 남았다. 이쯤 되면 그때 아마도 '최소한 전지살은 돼야 뭘 해 먹어도 해 먹는데 후지살을 여덟 팩이나 사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고 귀먹은 욕을 들어먹었을 것이 분명한 나 자신에게도 좀 사과를 해야 하지 않겠나도 싶다.
저걸 어느 세월에 다 먹어치우나 하던 걱정을 덜어준 메뉴는 제육볶음이다. 생각보다 별로 어렵지도 않다. 적당히 먹을 만한 크기로 썬 고기를 적당히 볶다가 썰어둔 설탕을 한두 스푼 넣고, 대파와 양파를 넣은 후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올리고당 다진 마늘 굴소스 등등을 적당히 넣어 섞은 양념장을 끼얹어 잘 볶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거 몇 번 해봤다고 요즘은 고기를 볶을 때 화이트 와인을 조금 넣는다든가 양념장을 섞어 만들 때 물을 약간 넣어서 되직한 정도를 조절하는 등의 잔재주도 제법 부리고 있다. 300그램짜리 한 팩으로 만들면 한 끼밖에 먹을 수 없어서 품이 아깝고, 한꺼번에 두 팩 정도씩 넣어서 만들어 두면 두 끼 정도는 먹을 수 있으니 꽤 쓸만한 반찬인 셈이다.
단만에 고기반찬을 좀 먹고 싶어서 구태여 고기를 사 올 것 없이 그냥 냉동실 안에 들어앉아 있던 후지살을 꺼내 제육볶음을 하기로 했다. 이젠 굳이 레시피를 찾아보지 않고 뚝딱뚝딱 만들어도 내 입에는 그럭저럭 먹을만한 정도로 나와서 한 끼 밥을 먹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올리고당 굴소스에 다진 마늘까지를 볼에 떠 넣고 휘휘 돌려 섞으면서 불쑥 그런 생각을 했다. 이거 비율이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내나 떡볶이 양념인데. 그러고 보니 그가 예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양념이란 크게 고추장 양념과 간장 양념이 있고, 주된 재료가 간장이냐 고추장+고춧가루냐의 차이가 있을 뿐 들어가는 것들은 대개 비슷하다고. 그러니 사실 떡볶이나 제육볶음이나 닭도리탕이나 고추장 주물럭이나 양념 만드는 법은 사실 거의 똑같고 만들려는 음식이 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척할 뿐이라고. 그땐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고 넘어갔었다. 그리고 내 손으로 내 밥을 챙겨 먹는 지금에 와서야 그 말이 그 뜻이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요컨대 결국 제육볶음의 정체는 그냥 돼지고기 떡볶이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이겠다. 하긴 조치원 어딘가에 있던 닭떡볶이로 유명한 집에 가서 먹어본 닭떡볶이는 사실 닭도리탕과 거의 비슷한 맛이 났었다. 그냥 떡볶이를 만드는데 떡과 오뎅 대신 돼지고기를 넣고 만드는 음식이 제육볶음인 거로구나. 뭔가 세상이 돌아가는 섭리 중의 하나를 이제서야 깨달은 듯한 기분이 든다. 나이 쉰을 목전에 앞두고 새삼 깨닫기에는 좀 열없는 사실이긴 한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