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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tN Apr 16. 2022

1. '참을 수 없는 말'

둘 이상의 사람이 만나면 말을 한다. 아니, 당연하지! 관계가 유지되려면 말을 해야 된다. 묵언수행 데이트 같은 게 아니라면, 아무리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이'여도 기본적인 대화는 해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말은, 관계에서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참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좀 짓궂게 생각하자면, 관계에서 강요되는 것이다. 이게 말의 첫 번째 '참을 수 없음'이다.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우리는, 말을 참을 수 없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대화에 조금 더 적극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에게 말은 안 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연인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랑의 기호를 제공하고 싶고, 막 친해지려는 동기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고 싶다. 이것이 말의 두 번째 '참을 수 없음'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슬프게도 대화를 어려워하고, 피곤해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에게 종종 말과 대화는, 혹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상황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마인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빠져나가서 침대에 드러눕고 싶다.." 이들이 느끼는, '말'에 대한 감정이 세 번째 '참을 수 없음'이다.


이 세 가지는 어떤 연관이 있나? 사실 이 셋의 관계는 아주 비대칭적이다. 1은 2와 3을 위한 그라운드를 제공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면, 다음과 같은 정리를 보자.


1) 말은 어쨌든 관계에서, 대화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2) 누구는 대화에서 말을 더 많이 하고 싶어 한다.

3) 누구는 대화에서 말을 더 적게 하고 싶어 한다/말을 듣는 상황에 놓여야 한다.


세 가지 '참을 수 없음'은 각각 대화의 대전제, 의미의 과잉 혹은 제공, 의미의 수용 혹은 축소로 분류될 수 있다. 이 셋은 어떤 대화에서건 항상 작용한다. 1초에 10마디를 뱉는 ESFP와 충실한 반응 머신인 INFP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어떤 대화에서건,  심지어 대화의 순간순간에서도, 의미 과잉을 원하는 자와 그걸 수용하는 자는 상대적 차원에서 존재한다. (심지어 이는 그다지 고정적이지도 않다. 10분 전에는 A가 2고 B가 3의 포지션이었다면, 지금은 B가 2일 수도 있다)


이것이 결국 무엇을 의미할까?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E. Levina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인은 그의 표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매 순간 넘어선다."

이는, 3의 입장에서 2가 제시하는 의미를 받아들일 때에 발생하는 중요한 순간을 시사한다. 대화에서 너와 나 '사이'가 발생하는 그 연속적인 과정들을.


A가 B에게 일련의 의미 다발을 내뱉는다. "아 C 개싫어!!" B는 그 의미의 제공/과잉을 듣고 A를 'C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관념적 규정을 내리고자 한다. 그런데 1초도 되지 않아 A가 다시 말한다. "내 마음도 몰라주잖아!!!!!" 앞서 규정한 관념은 한순간에 재가 되어 날아가고, 새로운 관념이 머릿속에 들어서려는 찰나... 또 대화가 이어진다.


이처럼 대화는 '사이', 0장에서 말한 '간격으로서의 사이' 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나는 너를 완전히 관념에 담을 수 없다. 나는 너가 될 수 없고, 너는 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사이'는, 아직은, 가까움과 멂이라는 관계규정적 판단에 포섭되기 전의 근원적 사이이다.

이것이 내가 0장에서 관계규정적 사이와 간격으로서의 사이를 분리시키고자 한 이유이다. 후자(근원적 사이)는, 상황과 맥락이라는 조미료와 함께 전자의 맛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위에 제시된, C에 대한 험담(?)에서, B가 사실 C를 이성으로 좋아하는 상황이었다고 하자. A에게서 "C 개싫어!!"라는 말이 제시되었을 때와, 그 뒤 "내 마음도 몰라주잖아!!"라는 것이 제시되었을 때. 그 관념의 간격. 사이. 차이. 가 A와 B의 규정적 거리를 결정한다. 아마 A가 첫 문장만 하고 말을 끝마쳤으면 B의 질투를, 좀 더 먼 관계로 규정되는 것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참을 수 없는 말'로부터 참을 수 없는 차이와 간격(으악 난 C를 좋아하는 A를 못 견디겠어!!)이 제시되는 순간. 간격으로서의 사이가 의미의 과잉과 축소, 제공과 수용을 오가며  시시각각 변화하고, 그로부터 가까움과 멂이 규정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대화라고 부른다. 아이러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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