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그것은 단순한 소리의 조합이 아니다.
이름은 각 개인의 존재를 지칭하며, 그 자체로 깊은 의미와 정체성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름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인생의 길을 걸어간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이름은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을 알려주는,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단어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詩, <꽃> 가운데서.
과연 언어가 존재의 본질을 의미할 수 있을까.
이름은 단순한 기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우리는 그 이름에 담긴 스토리와 감정을 함께 떠올린다.
친구가 이름을 부를 때는 친밀감이 느껴지고, 선생님이 부를 때는 존경과 신뢰가 담긴다.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를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이름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고유한 개성과 특별함을 인식하고, 이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보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보면, 그 이름이 담고 있는 따듯함과 희망을 상상하게 된다. "지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그 이름만으로도 지적인 깊이를 상징하며, 우리는 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지혜로운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름이 그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도 있다.
회사 이름이나 상호를 자기의 이름으로 작명하는 이도 있다. 넘치는 자신감과 자긍심의 표현이다.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는 아무런 상상이 생기지 않는다.
이름에는 각 개인의 역사와 가문, 그리고 부모의 마음도 담겨 있다.
부모는 자신의 자녀에게 특별한 이름을 붙일 때, 그 이름에 자신들이 꿈꾸는 최고의 희망을 담는다. 따라서 이름은 그 자체로 부모의 사랑과 염원을 내포하고 있으며, 자녀에게는 세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집안마다 돌림자(字)를 사용함으로써 씨족의 연을 이어가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작명하든지 유명 철학관에 가서 작명하든지 그 이름이 지닌 뜻과 함께 성장하는 사람은, 그 이름의 의미를 삶 속에서 실현해 나가려는 무언의 의무를 느끼기도 한다.
흔히 어려운 결단이라도 할 때면 “내 이름을 걸고!”서라며 호언장담도 한다.
어떤 때는 이름을 믿고 과감하게 투자를 하기도 한다.
전 세계인이 가장 호감을 느끼는 단어가 “엄마(mother)”라고 한다. 엄마 못지않게 자신의 이름부터 먼저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자신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야박한 사람은 엄마는 물론 누구에게나 넉넉한 틈을 주기 어렵다.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같은 이름일지라도 그 사람의 살아온 역사는 각각 다르다.
인생은 변화무쌍하고 때로는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이름은 변하지 않는 상수로서 우리의 존재를 지탱해 준다.
입신양명(立身揚名). 이름을 빛낸 이들에게는 그에 따르는 책임이나 명예도 크다.
물론 어떤 이는 개명을 통해 새로운 삶의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지만, 이름은 개인적인 성격과 특징을 넘어서, 그 사람의 꿈과 희망, 인생의 여정을 함께 기록하는 특별한 단어다.
어릴 때는 별명을 부르며 친근함을 표시하거나 놀릴 때도 있지만, 옛날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호(號)를 만들어서 편하게 부르도록 했다. 구름에 묻혀있는 자신의 처지를 대신한 백운거사(白雲居士) 등등. 나도 한때 정산(靜山)이라는 호를 쓴 적도 있다. 애칭을 서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름보다 더 정겹고 편해서다.
직장생활을 주로 하는 현대인은 이름보다는 직책을 더 많이 부르는 편이다. 가끔 직책 이름은 생각나는데 정작 당사자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상관도 더러 있다. 장관 출신은 현역에서 물러나도 평생 장관으로 호칭한다. 벼슬 덕을 오랫동안 보며 대우 아닌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현재인데 말이다. 결혼하여 자녀가 태어나면 부부끼리도 "00 아빠, 00 엄마" 호칭을 더 자주 사용하고 듣는다.
나의 본래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 이름이 잊힐수록 나의 정체성도 희박해진다.
우리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이름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며, 그 존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야말로, 이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가족의 개념에 포함되고 있는 반려동물에게조차도 이름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 사회적 추세다.
하여튼, 이름은 단순히 부르는 호칭만이 아니라, 인생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 숨 쉬는 단어이다. 우리는 이름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의 이름이 소중하듯이 남의 이름 또한 소중하고 귀함을 받아야 한다.
누구도 내 이름을 친근하게 불러주는 이가 뜸한 이 한갓진 인생의 오후에 조용히 내 이름을 내가 한 번 그냥 불러본다.
“해용아!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