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25세 청년 J.
그는 1년 전에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아서
200만 원이나 써버렸는데, 정작 훈련을 마친 웹디자인 분야로 취업 이력이 전무한 채 다시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 사이에 3개월 정도 사진관에서 보조로 일을 하면서 사진에 흥미가 생겼다고 한다.
문제는 잘못된 진로 선택으로 1년이라는 기회비용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정작 필요한 직업훈련에 새로 참여하는데 써야 할 내일배움카드 잔액이 부족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당시의 상담사가 과연 적절한 진로상담서비스를 제공했는지도 의문스럽다.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의 학원비가 세금으로 지원되는데
구직자와 상담사 모두 이 점에서 정말이지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선 안된다.
J는 4월에 개강하는 광고사진작가 양성과정에 참여를 희망했다. 그런데 학원비가 200만 원,
100만 원의 자부담이 발생하게 되었으나 형편이 어려운 친구였다. 나는 한도 추가 제도를 활용하여 어떻게든 자부담을 줄여주고 싶었으나 그러기 위해서 부친이 추가적으로 제출해주어야 하는 서류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J군의 부친은 서류 제출에 협조적이지 않았다. 본인이 말하기를 꺼려하여 나 역시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평범한 가정환경은 아님이 분명했다.
그것은 직업심리검사에서도 나타났다.
J의 검사 결과, 불안이 매우 높고, 성실성은 전 항목(책임감, 목표지향성, 완벽성 등)이 매우 낮았다.
"불안이 이렇게 높은데 책임감은 바닥이에요,
이건 다시 말하면 회피하겠다는 거죠.
내가 처한 상황들로부터 그냥 다 회피하고 싶은 거예요"
나의 피드백에 J는 수긍했다.
그러면서 지금 자신을 둘러싼 가정환경에서
회피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는 여전히 자세한 언급은 꺼렸지만,
아직 보호받아야 할 청년이 가족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에 짓눌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부모도 성인이고, J씨도 성인이죠?
그럼 이제 성인들은 각자 도생하면 되는 겁니다.
J씨는 J씨의 삶을 사세요. 부모는 알아서들 살아갑니다. 가난한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본인만 잘 살아줘도 훌륭한 거예요. 서른이 넘도록 정신 못 차리고 부모 등골 파먹으며 징글징글하게 속 썩이는 자식들도 많습니다."
나의 위로가 그에게 닿길 바랬다.
그가 좀 더 자유로워져서 20대 중반의 청년답게 살길 바랬다.
몇 달 전, 아버지를 병원에서 퇴원시키고 결국 방치하여 사망케 한 20대 초반 청년의 사연을 뉴스에서 봤다. 20대 초반의 아이가 그럼 대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그 청년을 우리는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오히려 그 나이가 되도록 자기들 건강관리 못하고, 자기들 병원비도 감당하지 못한 부모들에게 더 화가 난다. 왜 그 무거운 짐을 사회에 제대로 진출하지도 못한 아이들이 져야 하나. 같은 이유로 나는, 자식 앞길 막는 모든 종류의 부모들에게 화가 난다.
훈련비 증액을 위해 여러 차례 통화하는 사이,
정말 운 좋게도 3월 22일 자로 지침이 변경되어 별도의 추가 서류를 받지 않아도 증액이 가능해졌다.
그 소식을 전하자 J는 너무나 안도하고 기뻐했다.
그런데 추가 서류 문제로 실랑이를 하는 사이 이미 지침이 변경된 것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
"J씨, 내가 사과할게 하나 있어요.
지침이 3.22자로 변경된 걸 몰라서 괜히 애를 태우게 했네요. 지침 변경을 빨리 알고 전달했다면 일주일은 빨리 행복했을 텐데요 ㅠㅠ"
내가 말하자, J는 해맑게 웃으며 이렇게 화답했다.
"괜찮아요, 더 극적이고 좋은데요!"
"물론 그걸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나도 웃으며 화답했다.
마지막 상담일에 화사한 연두색 티셔츠를 입고 농담까지 건네는 J를 보며 조금 마음이 놓였다.
비로소 25세 청년다운 밝은 웃음을 보며 상담을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비처럼 가볍게,
당신의 삶을 살아라,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