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센터에는 아주 늠름한 여자 보안실무관이 있습니다
우리 센터는 내가 입사한 후로도 오랫동안 경비나 보안요원이 없었다. 악성민원인들이 규모가 작은 센터라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닌데 이미 너무나 유구한 세월 동안 권역이 넓은 1센터들만 지원이 되었다.
그러다 몇년전, 기억회로에 다소 혼선은 있으나, 어쨌든 지방의 모센터에서 사단이 났다.
악성민원인이 시너인지 휘발유를 들고 쌩쇼가 벌어졌고 어느 공무원의 기지로 그의 손에 든 라이터를 뺏으면서 위험한 상황을 모면했다.
하지만 그런 황당 시츄에이션 자체가 이미 거대한 폭력이 자행된 것이고, 대민업무를 담당하는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불시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그제서야 위기의식이 발현되었는지, 어쨌든 그후로 2센터에도 드디어! 보안요원들이 투입되었다.
그 무렵에 우리 센터는 그야말로 여인천하였다. 두어명 있던 남자 공무원들도 8급만 되길 기다렸다는 듯이 근로감독관 등으로 휘릭 뺏어가 버리고, 심지어 그땐 새로 오신 소장님 마저도 여자였다.
약강강약의 비열한 습성을 가진 진상들은, 남자 직원이 다가가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한마디만 해도 꼬리를 내리고 얌전해진다. 그런데 이짝을 봐도 저짝을 봐도 여자들 뿐인걸 알자, 이 작자들은 더욱 의기양양해진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사춘기 청소년이 부모에게 불만 만땅이라 개짜증이 나는데, 지 눈에 부모가 만만해보이니까 반항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해에 전국 단위로 보안요원 공채가 진행되었고, 당시에 모든 2센터에 배치전환이 된건지 그것까진 모르겠으나, 어쨌든 당시 여인천하였던 우리 센터에 드디어 그분이 오신거다.
그녀의 이름은 백OO!
그녀가 우리 센터에 첫 출근하여 직원들에게 인사를 도는데, 그때 나는 통화중이라 자세히 보지도 못하고 일단 눈인사만 나눴던거 같다.
그런데 며칠뒤,
나는 화장실에 쉬하러 갔다가 거울앞에 서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부지불식간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외쳤다.
"선생님, 여기 여자 화장실인데요!"
나는 그때 백쌤의 반응을 지금도 아주 명확히 기억한다.
"저 여잔데요."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는 평온한 말투라니,
필시 이런 꼴을 한두번 당한게 아니었다는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멍청한 나는 거기서 멈추지않고 기어이, 이번에도 뇌라는 걸 거치지 않고, 파플로프의 개처럼 자동반사적으로다 이렇게 한마디가 더 튀어나갔다.
"여자였다구요?!??!"
이때 나의 표정은 진심 놀라움이었고,
이때 백쌤의 표정은 시크함 그 자체였다.
나는 기억을 되돌려 그녀와 대충 나눈 첫인사 장면을 복기했다. 그녀는 유도선수처럼 정말 늠름하고 듬직한 체격에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있다. 그녀의 채용에 관해 아무런 사전정보가 없던 나에게 "보안요원=남자" 라는 공식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깔려 있었는데, 백쌤의 보이시한 외모에 나는 그녀가 남자라고 기정사실화 했던 것이다.
어멋, 근데 남자분이 쫌 곱상하게 생기셨네?
아주 찰나적으로 그런 생각을 혼자 했던거 같다.
그녀의 늠름하고 듬직한 모습을 보며, 악성 좀비 니들 이제 다 주거써, 아주 뿌듯해 하면서 말이다.
내가 백쌤의 진가를 발견한 것은 2020년 여름이다. 코로나가 창궐했고 영업을 강제당한 자영업자들에게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이 투입되었다. 우리 부처에서도 센터내에서 급작스럽게 직원들이 차출 되었다.
첫번째 긴급고용안정지원 업무는 매뉴얼이 부실했기 때문에 창구에서도 혼선이 계속 되었고, 자영업자들은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서 하루 건너 한번씩은 잡음이 들려왔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업무에 투입된 우리센터의 자립지원상담사에게 기어이 악성 민원이 발생했다. 그 쌤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상대방이 잔뜩 주눅들자 그 남자는 더욱 신이 난듯 그녀를 몰아 부쳤다. 대체 뭘 그렇게 죽을 죄를 지었다고 저렇게까지 드잡이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짱가 엄청난 기운이~
분명 그런 BGM 이 내 귀에 들렸던 거 같다.
실업급여팀에서 고성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로 2층에 상주하는 백쌤이, 어느결엔가 1층으로 내려와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나는 그때 백쌤의 첫 대응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그 화장실에서처럼, 감정의 동요가 1도 없는 목소리로, 매우 건조한듯 하면서도 위엄있게 이렇게 첫마디를 했다.
"선생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나즈막하고 조용했지만 분명하고도 단호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당신은 누군데요?!"
그 남자가 백쌤을 향해 말하자, 백쌤은 그 남자에게 몸을 더욱 바짝 부치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보안요원입니다."
내 기억은 여기까지다. 그때까지 누군가를 쥐잡듯 하던 그 사내는 더이상 내 기억에 없다. 백쌤을 대하는 순간 약강강약의 그 비열한 사내는 슬그머리 꼬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아, 내가 여자한테 쪼인트 까이면 더 쪽팔리니까 이쯤에서 고만 해야 겠다. 어쩌면 그런 약삭빠른 계산이 뇌리를 스쳤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날의 백쌤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그녀에게 시집가고 싶어진다. 진심 멋지고 섹시했다고, 이제 와서 고백한다. 그리고 나는 그때, 왜 우리에게 보안요원이 필요한지 더 여실히 느꼈다.
언뜻 보기에 보안쌤들은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왜냐면 악성 민원이라는 게 매일, 한 시간 단위로 발생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보안쌤들이 한시간 단위로 악성민원인들을 퇴치한다면, 그건 바로 우리 창구 직원들 누군가가 한시간 단위로 죽어나간다는 소리인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안쌤들의 업무는 이렇게 반비례성을 깔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들이 바빠지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는다. 절대! 네버!
악성 민원이 언제 어느때 발생할지 알 수 없고, 그것의 발생 빈도 역시 예측 불가한 것은
보안쌤들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다. 같은 이유로 그들을 한가하다고 폄하 할 수 없고, 그것이 그들을 1호봉의 족쇄에 가둬야 할 이유는 더더욱 되지 않는다. 혹여라도 우리의 속마음에, 그들이 하는 업무의 정량이 그들이 만60세 정년퇴직할때까지 1호봉이면 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우리 안에 또아리를 틀고있는 치졸한 계급의식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나는 받아 마땅한게 왜 너는 안되는지, 이 조직은 입직의 경로가 서로 다를 뿐이지 신분제 사회가 아닌 것이다.
간혹 미디어에서 소개되는 좋은 사업장들을 보면, 사장님들의 마인드가 훌륭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기 혼자 잘먹고 잘사는게 중요하지 않고, 회사의 성장과 직원들의 성장을 동일시 한다.
그런 회사에 이직률이 높을 수 없고, 그런 회사에 어떤 직원이 애사심과 충성심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국가의 회계로 운영되는 곳이기 때문에 직원들의 애사심이나 충성심이 필요가 없어 보인다. 어차피 우리는 영업이익을 추구하고 회사의 외적 성장이 중요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이 거대한 조직의 컨베이어 벨트가 착착 문제 없이 돌아갈수 있게 유지하면 되는 부품 조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일호봉제를 납득할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고용을 선도하는 부처이다. 그래서 이름도 고용노동부다.
공무원 채용 증원이나 공무원 복지 증진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거기에는 끔찍한 댓글들이 달린다.
전국민의 공무원화, 니들이 하는게 뭐있다고, 이게 주된 반응이다. 나는 그중에서 이런 댓글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 미련한 사람들아,
공공기관에서 선도해야지,
그게 낙수효과가 되어 민간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복지도 증진되는 거지.
나는 이 말에 격하게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낯짝이 뜨거워졌다.
정말 우리는 고용을 선도하고 있는가?
정말 우리는 양질의 고용을 선도하고 있는가?
삼사십대 가장들이 대부분인 보안쌤들에게 만60세 정년퇴직하는 그 순간까지 1호봉만 주면 되는 우리는, 정말, 양질의 고용을 선도하고 있는가?
콜센터 상담원들의 호봉제가 인정된 것도 불과 얼마전으로 알고 있다.
직업상담원들 처럼 민원인들과 라포도 형성할 수 없는 전화상담원들이 전화기 너머의 폭언에 얼마나 피를 흘렸을지 나는 짐작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같은 조직내에서 아직도 1호봉의 저주에 갇힌 직렬들이, 그 차별의 비애를 안고 오늘도 민원인들과 씨름을 할 것이다. 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만행인가.
어떤 회사도 자기 조직을 백퍼센트 계약직으로 채우지 않는다. 직원의 업무 숙련도는 민간 회사들에게 존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도 정신못차리고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의 상식적인 인간들은 나이와 함께 정신과 지혜도 성장한다.
직장 구성원들의 짬밥도 그냥 무익하게 쌓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짬밥을 바탕으로 악성민원에 대한 스트레스를 스스로 관리하고, 더 나은 대민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하지만 이 짬밥의 상식적인 원리를 알면서도 그들에게 온니 1호봉이 강요되는 것은 명백히 반인권적이다. 그것도 국가 조직이라는 곳이 말이다.
다시, 백쌤의 얘기를 해야 겠다.
그녀는 얼마전 매우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고,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고통을 호소했지만 나는 실질적으로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저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나다운 조언 밖에 건넬 것이 없었다. 제3자라는 이유로 행해진 일종의 방관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늘 내마음 한구석에 부채감 처럼 남아 있다.
그러나, 나는 다시 같은 일이 벌어져도 여전히 제3자의 입장에서 그녀가 헤쳐나가는 것을 지켜볼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늦었지만 이 글이 나의 미안함에 대한 면죄부가 되면 좋겠다. 그 마음이 그녀에게 닿길 바란다. 2022년 5월에.
[ 뒷 이야기 ]
나는 얼마전에 이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백쌤은 최근 새로 부임한 소장으로부터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고, 나는 이렇게라도 그녀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싶었다. 그리고 올해 임단협에서도 보안실무관, 시설관리직 등의 호봉제 전환이 패씽되는 분위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글의 힘으로나마 그들을 응원하고 싶었다.
백쌤이 일빳다로 깊은 감사의 댓글을 남겨줘서 나는 마음의 부채감을 조금 덜어낸 느낌이다.
이 글은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고 다양한 댓글이 달렸는데, 나는 보안실무관 두 분의 댓글이 마음에 남았다.
"한주동안 개인정보 공개 동의도 안했는데 공개된 것처럼 불편한 감정을 가지며 지냈는데, 동료애를 느낄수 있는 글을 보며 다시 웃음 장착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댓글에서는 그들의 오래된 곪은 상처 같은 것이 느껴져서 마음이 애잔해졌다.
"보안실무관들은 악성민원인으로부터 직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희 보실이들의 자존감은 이렇게 직원 분들이 지켜주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댓글에서 보실이라는 애칭에 살짝 웃음이 났지만, 보호받을 때의 따뜻한 느낌이 들어서 가슴이 살짝 뭉클했다.
먹고 사는 것도 고달픈 우리들 그 누구도 마음이 다치거나 아프지 않고 살아가면 좋겠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