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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Jun 10. 2022

아주 오래된 농담

캄캄하고 어두운 깊은 밤, 골목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창백한 얼굴로 길바닥을 헤집고 있다.

그 옆에서 머리를 산발한 계집애가 비몽사몽 한 얼굴로 여자를 따라 바닥을 헤집고 있다. 사방이 고요하고 거리에는 12월의 찬바람이 적막하게 나뒹굴고 있다.


이 장면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그해 12월 어느 밤의 풍경이다. 내 유년시절에서 잊혀지지 않는, 박제된 장면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일터에서 뇌출혈로 쓰러지고 그해 12월에 결국 돌아가셨을 때, 미망인이 된 엄마의 나이는 고작 마흔다섯이었다.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엄마는 준비되지 않은 사별을 겪으며 고스란히 자기 몫으로 남겨진 4남매의 여성가장이 되었다.


내 기억에는 엄마가 울고불고하는 장면이 없다.

아마도 엄마는 자신이 직면한 처연한 현실에 기가 막혀 눈물도 나지 않았을 것이고, 생활력이 강한 성정 탓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버텨내었을 것 같다.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니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그날 밤 나는 자다 말고 엄마 손에 끌려 골목을 헤매고 다녔는데, 조의금으로 받은 10만 원짜리 수표를 잃어버리셨기 때문이다.

그때 엄마에게 그 돈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나는  길바닥에 나뒹구는 종이 쪼가리들을 열심히 헤집고 다녔다. 엄마가 문상객들을 배웅한 길목을 따라 우리 동네 버스 종점 부근까지 훑어 내려갔다.


얼마나 소요되었는지도 기억에 없다.

다만, 길바닥 어딘가에서 꼬깃꼬깃 접힌 상태 그대로의 수표를 엄마가 결국 찾아내었다.

하얀 종이 쪼가리는 죄다 주워서 펼쳐 보아야 했지만, 엄마가 수표를 꼬깃꼬깃 접어놓았기에 그 돈은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돈을 찾았을 때도 엄마의 반응은 담담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수표를 발견했을 때 엄마가 느꼈을 깊은 안도감을.


나에게 이 장면은 언제나 실체를 알 수 없는 서글픔을 동반한다. 그날의 풍경이 내겐  삶에 대한 최초의 기억과도 같은 것인데, 나에게 있어 삶이란  기본적으로 슬프고  처연한 그 무엇인 것이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어른들이 울면 덩달아 울다가도 또 어느 결에 남동생과  천방지축 장례식장을 뛰 댕기며 놀던 열두 살 계집애는

아버지의 부재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깊은 겨울밤에 수표 한 장을 찾아 나선 젊은 엄마에게서 나는 아주 어렴풋이 삶의 절박함 같은 걸 느꼈을 것이다. 앞으로 엄마에게 펼쳐질 고단한 삶의 무게가  어린 내게도 느껴졌을 것이다.


얼마 전에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그날 밤에 하필 왜 나를 끌고 나간 거야? 오빠도 있고 언니도 있었는데.."

"니가 내 눈에 띄었나 부지 뭐."

"그날 수표를 찾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

"좋았지 뭐."


엄마의 심드렁한 말투에는 40년 전의 그날 밤이 대수롭지 않았다.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난다며 엄마는 부질없는 세월에 손사래를 친다.

나에게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던 그날의 밤공기가 여전히 선명하건만,  엄마에게 그 밤은 너무나 케케묵어서 더 이상 웃음을 주지 않는 오래된 농담 같은 것이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인에게 삶은 그렇듯 오래된 농담 같은 것이다.


그것은 가볍게 여기기로 작정해서 얻을 수 있는 가벼움이 아니다. 삶의 풍파를 구비구비 겪고, 온몸으로 비와 눈을 맞으면서도 피하지 않는 담대함으로 저벅저벅 인생길을 헤쳐온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질량인 것이다.


엄마에게 그날 밤 기억이 더 이상 쓰라리지 않아서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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