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를 모시고 세브란스에 다녀왔다.
12월 들어서만 벌써 네 번째다.
만 2년 넘게 엄마를 지켜주었던 타그리소도 결국 내성이 왔다. 그건 이미 오래전에 예정되어 있었고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지만 사실 나는 이 순간이 오지 않길 바래기도 했다.
엄마 폐에 2년 만에 다시 물이 차기 시작했고 호흡이 힘들어지셨다. 결국 지난 금요일, 옆구리 쪽에 배액관을 삽입했다. 이틀간 흉수를 쏟아내고서야 호흡이 다시 편안해지셨다.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간밤에 거즈 부위가 가려워서 긁으신 탓에 심하게 상처가 난 엄마의 피부를 보며 나는 또 그렇게 나의 무심함을 자책했다.
나 힘들까 봐 어지간해선 내색을 안 하는 우리 엄마, 좀 가려우니 소독약 좀 한번 발라 달라고 했으면 좋았으련만, 아니, 당신이 그러시기 전에 내가 좀 더 세심하게 살폈으면 좋으련만. 엄마를 생각하면 나는 온통 자책감에 휩싸인다.
엄마는 이제 새로운 치료에 들어가야만 한다.
주치의가 우리에게 어떤 선택권도 없이 신약 임상을 안내했다. 임상센터에서 연구 간호사에게 안내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나의 질문이 계속되어 한 시간 넘게 상담을 받았다.
엄마는 설명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치료를 안 받겠다, 그냥 이대로 살겠다며 동의서 서명을 거부하셨다. 나는 그 말에 갑자기 화가 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말라며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그러자 엄마가 우시면서 자식들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또 자책했다. 엄마가 어떤 마음이실지 알면서 짜증을 낸 스스로에게 경멸했다.
나는 이내 엄마 손등을 살포시 포개어 잡았다.
치료를 중단하면 계속 폐에 물이 찰 거고,
1년을 살아도 2년을 살아도 최대한 덜
고통스러워야 한다고. 우리 앞으로 어떤 상황이 와도 담대하자고 나랑 며칠 전에 약속했잖아.
우리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보자 엄마, 응?
엄마는 그제야 동의서에 서명을 하셨다.
예상보다 길어진 탓에 오늘 동행해준 조카의 중요한 저녁 일정이 꼬였다.
엄마와 나는 6호선 마포구청역 앞에서 먼저 내리고 조카를 보냈다. 이틀 후에도 와주기로 한 조카는 오늘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원망할 수도 없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예상과 다르게 지나가는 택시가 거의 없었다.
카카오택시를 호출하고 5분 넘게 기다렸는데 기사가 일방적으로 호출을 취소해 버렸다.
남편도 부산 출장 중이라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저녁이라 추워졌는데 마냥 도로에서 헤맬 수 없어 결국 지하철을 탔다. 퇴근시간의 지하철을, 6호선에서 2호선과 7호선으로 갈아타는 여정.
오른쪽 무릎엔 보조기를 차고 왼손엔 깁스를 한 엄마를 나는 온몸으로 사수해야 했다.
엄마, 오늘 정말 고생했어.
고생은 니가 했지.
아픈 사람이 고생이지 내가 뭘.
우리 엄마는 사실 굉장히 나쁜 엄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셔야,
어디가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말하셔야,
필요한 게 있으면 필요하다고 말하셔야,
그랬으면 늘 뒤늦게야 알고서 자책감에 휩싸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자식들에게 다 퍼주고 다 내주고 껍데기만 남은 몸으로도 여전히 당신을 희생해야만 살 수 있는 분.
그런 엄마에게 화가 솟구치다가도, 너무나 작고 작은 새 한 마리 같은 엄마의 연약해진 육신 앞에서
나는 이제 마음껏 화도 낼 수 없다.
몸도 마음도 고단했을 하루를 마친 엄마를 침대에 눕히고, 엄마의 마른 얼굴을 쓰다듬으며 약속했다.
엄마, 내가 끝까지 엄마 곁에 있어.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힘들게 해서 미안해.
엄마의 죄책감과 나의 죄책감은 서로를 향해 있고 서로 닮아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오늘 하루 종일 엄마 앞에서 꾸역꾸역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그저 긴 하루였다.
그저 아픈 하루였다.
2022.12.21. 수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