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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재 Feb 07. 2016

인도여행 DAY 02

[+2 태국 방콕] 잃는 만큼 얻어지는 게 있을 것이다

[+2 태국 방콕]
2015.11.23











새로운 공간, 새로운 환경, 이에 대한 내 느낌은 이러했다.

1. 공항이 엄청 크다. 그리고 입국 심사장을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한국인 줄만 알았다. 여길 봐도, 저길 봐도 보이는 거라곤 온통 초록색 여권뿐이었다. 비행기가 방콕이 아닌 한국으로 다시 회항한 건 아니었을까.


2. 정말 습하다. 공항 내부는 시원하길래 안이나 밖이나 둘 다 똑같을 줄 알았다. 하지만 공항 밖은 '음 여긴 아니다!'라는 말이 단번에 나올 정도로 괴로운 곳이었다. 한국의 장마 전 여름을 방불케하는, 아니 그 이상인 그런 날씨를 품은 곳이었다.

3. 핸드폰을 충전할 만한 곳도 있고, 노숙할 만한 곳도 있다. 잠자리는 걱정 없다. 벤치에서 자면 된다.

4. 7일 1.5GB에 100바트 (3천원) 이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299바트 (9천원) 이었다. 잘 못 보고 데이터 싸다며 좋다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아니었다. 9천원을 내느니, 차라리 와이파이만 쓰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5. 닭고기가 올라간 밥이 55바트다. 1804원. 공항임에도 불구하고 음식값은 저렴한 편인데 중요한 건 요리사가 올 기미를 안 한다. 아니 님아 저 배고프다고요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세요 제발











6. 아무리 기다려도 요리사가 오지 않길래 결국 메뉴를 바꿨다. 10바트 (3백원) 더 비싼 걸로, 이번 요리는 어떻게든 잘 나오겠지. 그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핸드폰은 충전할 수 있으면 70%까지 충전하고, 얼른 자야지.

7. 맛있다. 양은 적으나 나름대로 먹을 만했다. 태국 와서 처음으로 먹어본 태국 음식은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8. 유니클로 사은품으로 얻은 보조배터리는 미리미리 완충해 둘 것!

그렇게 태국에서의 하루가 저물고 아무 일 없이 새로운 아침이 찾아왔으면 참으로 좋았을러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하였다. 정신을 아직 도서관 책상 위에다가 두고 온 것이 분명했다. 지갑이 없어졌다. 가방의 모든 짐을 꺼내고 파헤쳤는데도 끝내 나오지 않았다. 어딘가에 흘린 게 분명했다. 그럼 어디에다가 흘린 거지? 아까 밥 먹은 식당? 잠자리인 벤치가 있는 4층에서 식당이 있는 1층까지 미친 듯이 에스컬레이터를 닮은 무빙워크 위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정말 지금 이 모든 상황이 꿈이길 바랐다. 이건 꿈이다. 나는 이미 수많은 꿈들을 통해 위기를 겪고 개인의 의지로 잠에서 깨어나 위기를 모면했다. 그럼 일어나야지. 일어나야 한다. 잠에서 깨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기엔 꽤나 힘들어 보였다. 식당은 생각 외로 고요했고,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모른다고 했다. 그럼 어디지? 화장실?











4층으로 다시 뛰어갔다.

제발 있길 바랐지만, 하지만 그러면서도 있지 않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지갑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며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지? 보이는 사람이란 사람은 다 붙잡고 되도 않는 영어로 하소연을 해댔다.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어디로 가야 하냐고. 그러다 누구 하나가 경찰에 가보라고 말했고, 경찰은 유실물 센터에 가보라고 했다.

그곳에는 과연 지갑이 있는 걸까

하지만 유실물 센터 직원은 의외로 천하태평이었다. 아무리 자기 일이 아니더라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저 기다리라고만 하는 태도가 과연 정상적인 행동이었을까. 그렇게 마음 졸리는 시간들이 흘러가고 직원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Here's your wallet. But... (너 지갑 여기 있어, 그런데...)

그런데, 그렇지. '그런데' 라는 말이 섞여 있는 반전이 있어줘야지. 너무나도 큰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면 뭔가 또 찜찜하잖아. 저게 분명 끝은 아닐 거야. 끝이었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저 사람이 '그런데' 라고 말하는 걸 봐선....

No money. (돈이 다 털렸어)

이미 예상했던 결과였다. 아무리 찾아봐도 돈은 남아있지 않았다. 한국에서 미리 환전해둔 3천 바트 (10만원) 와 무슨 이유로 남아있는지 모를 한국돈 1만5천원이 몽땅 사라져 있었다. 9천원이 아깝다고 데이터조차 사지 않은 나였는데, 그리고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려고 생소한 음식들을 보면서 최대한 가성비가 높은 음식을 고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나였는데. 노력의 결과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돈을 아끼고 또 아끼는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었던 걸까? 그저 저비용 고효율에서 얻어지는 쾌락을 즐기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아는 사람커녕 한국인 하나 없는 이곳에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옆 벤치에 쭈그려 누운 서양인 여자는 부스럭 거리는 나를 줄곧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지금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고, 치유해야 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리고 인생의 부질없음을 크게 느낀 나였지만, 이대로 털썩 주저앉을 수는 없는 거였다. 어떻게 보면 고작 10만 원 밖에 털리지 않은 거다. 핸드폰과 여권과같이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단 10만 원만 잃어버린 것이다. 손을 떠난 돈은 꽤나 아쉽지만, 현금을 인출하면 돈은 다시 내 손안에 들어온다. 돈은 원래 돌고 도는 것이기 때문에 돈이라는 이름이 붙혀졌으며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바로 돈이다. 잃은 만큼 얻어지는 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 시라도 빨리 공항을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예약해 놓은 숙소로 가야 한다. 사실 그 숙소가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카오산 로드로 가면 되지 않을까? 카오산까지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자 그는 일단 종점인 파야타이역까지 가라고 했다. 그럼 거기서 버스를 타던, 택시를 타던 뭘 해도 다 된다고.

공항을 떠나 시내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나서야 지금이 출근시간대라는 사실을 알았다. 학교와 직장으로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 한참을 고뇌하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나. 여행자. 그 둘의 조합은 이질적이었다. 사실 여행자라는 말이 사실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 일컫는 말 아니었던가. 현실과 이상. 반복되는 삶과 반복되지 않아 때론 앞날이 두려운 삶. 그 둘 중에서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가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아침 7시의 방콕은 지하철만큼이나 꽤나 분주했다. 아니 분주함을 넘어 혼잡-지옥-그 자체였다. 버스와 택시, 거기에다 오토바이까지 섞인 이곳은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과연 이런 곳에서 이름조차도 가물가물한 숙소를 무사히 찾아갈 수 있을까. 











관광안내소에서 분명 어떤 버스를 타라며 알려주고 심지어 종이에다 태국어로 주소까지 적어줬음에도 불구하고 눈 앞은 그저 깜깜하기만 했다. 일단 데이터를 사용하지 못하는 덕분에 지도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디가 어딘지 모른다. (그때 9천원 내고서라도 데이터를 샀어야 했다. 지금까지 와서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하나다. 택시. 많은 돈을 요구할지라도 목적지까지는 확실히 데려다줄 테니까. 지금 내가 믿을 거라곤 그게 전부였다. 괜찮아 보이는 택시를 골라잡고 주소지를 보여줬다.

200바트 (6천원)

운전석 뒤에 걸려있는 요금표를 보니 바가지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택시 기사에 비해 가진 것도, 알고 있는 것도 전무하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물론 이의를 제기했다. 가뜩이나 돈 때문에 예민해져 있는데 여기서도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사의 말은 한결 같았다.

바가지일것 같다고? 그럼 내려! 너 알아서 가면 되겠네.

그의 말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을 중에서도 을은 그 누구보다 더 격렬하게 가만히 있어야 했다. 갑님께서 뭐라뭐라 말하면 나같은 부류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예 예 그렇지요 당신 말이 백 번 옳습니다. 옳고 말구요... 누군가는 피해를 보겠지만, 세상은 더없이 평화로워진다. 나는 숙소에 몸을 뉘일 수가 있고, 기사는 얼뜨기 여행자로부터 뜯어낸 돈으로 가족들과 함께 더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다. 그렇게 세상은 부조리하나 부조리하지 않은 듯 유하게 흘러내려간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게스트하우스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곳에 왔다. 더 오버스테이 게스트하우스. 방콕에 내재되어있던 모든 더러움이 이곳으로 모인게 분명했다. 천장이 뚫려있거나 매트리스가 움푹 패어 있는 등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는 이 시대 최고의 히피들의 성지. 그리고 이런 곳에 제 발로 기어들어온 수험생 하나. 두 밤 자는데 택시비보다 조금 비싼 250바트 (7500원) 가 이해가 가는 이 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리고 어쩌면 나와 같은 처지일지도 모르는 홍콩 형과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서양인이 사장일 정도로 서양인만 가득한 문화충격인 이곳에서 만난 동양인이 어찌나 반갑던지. 그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형과 같이 가기로 한 곳은 바로 맥도날드였다. 사실 여기만큼 제일 무난한 곳이 없었고, 타국과의 문화적 차이를 적극 활용하는 다국적 기업의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햄버거를 먹어본 지가 얼마나 오랜 지...











태국 맥도날드에서는 케첩을 무제한으로 양껏 퍼담을 수 있다. 밥 한 공기에 케첩만 있어도 잘 먹었던 나에게 이런 선진화된 시스템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케첩을... 비닐팩에 되어있는 거 많이 받아봐야 다섯 개 받는 그런 케첩을 양껏 받을 수가 있다니...











홍콩 형도 의아해하며 정체 몰라 했던 딸기잼... 도대체 왜 있는 걸까....











일단 방콕에 왔으니 카오산 로드에는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가면 여행자들도 많고, 무언가 할 만한 것도 많고, 엽서를 판매할 만한 곳도 있겠지. 어차피 오늘은 쉬자는 마음이 강했으니 일단은 천천히 둘러보기로만 했다. 여기에는 뭐가 있고 저기에는 뭐가 있으니 내일은 이걸 해야겠군!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똠양꿍 다음으로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태국 음식 팟타이도 한번 먹어보고. 진짜 팟타이는 와... 어디서 먹든 다 맛있다. 일반 레스토랑에 가서 먹어도, 카오산 로드 길거리에서 먹어도, 심지어 인도 방갈로르에서 먹어도 맛있다. 해파리 냉채를 닮은 쫄깃한 국수와 아삭함이 씹히는 숙주나물의 환상의 조합. 저건 진짜 여행하면서 먹어본 최고의 요리 순위권 안에 뽑힌다. 고작 4일밖에 머무르지 않은 태국에서 최고의 요리를 먹게 되다니... 역시 태국. 역시 팟타이. 한국에서도 진짜 먹어보고 싶은 그런 맛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리고 내일 자세하게 보게 될 방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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