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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ott 장건희 Sep 24. 2022

근육과 신경이 기계를 품다

기계가 인간의 몸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인간은 모든 것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미국 플로리다에 살고 있는 자니 매테니(Johnny Matheny)씨는 2007년 종양을 제거를 위해 왼편 어깨 아래로 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왼팔을 잃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매우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앞선 최첨단의 로봇 팔의 주인이라는 타이틀이었습니다.


수술을 받았던 존스 홉킨스 의대의 의료진의 소개로 매테니 씨는 미국 국방부(DARPA)에서 지원하고 있는 존스홉킨스 대학 응용물리 연구소(Applied Physics Lab, 이하 APL)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APL에서 개발되고 있는 인공 팔은 과거 로봇팔과는 다른 제2세대 로봇 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깨 아래로 남아 있는 근육의 근전도(electromyography) 신호를 읽어 들여 팔과 손가락을 자신의 것처럼 제어하는 고도의 첨단 로봇 팔이라고 할 수 있죠.

그의 로봇팔 덕분에 매테니 씨는 금세 유명인사가 되었다.

매테니 씨는 정기적으로 APL에 방문하여 인공 팔을 부착하고 기능을 테스트하는 연구에 자원했었습니다. 열심히 팔을 움직이고 측정을 하지만 실험이 끝나면 1억 2천만 불짜리 로봇 팔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몇 시간에 불과한 실험은 매테니 씨로 하여금 로봇팔에 익숙해지는데 별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인식한 APL은 인간이 얼마나 로봇 팔을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적응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시험하기 위해 매테니 씨로 하여금 집으로 가져가 일반 생활 속에서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매테니 씨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같이 로봇 팔을 사용 하면서 놀랍게도 그 기능이 향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실험실에서 몇 시간 시험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통합력, 적합성, 숙련도가 빠르게 향상되었습니다. 신호의 폭이 줄어즐면서 움직임이 더욱 정밀해졌습니다. 제어효과가 월등하게 개선된 것입니다.

로봇손과 인간 손의 협주. 매테니 씨는 찬송가 'Amazing Grace'를 연주해 보였다.

매테니 씨는 로봇 팔을 착용하고 채소밭을 가꾸고 직접 요리도 하였습니다. 거기다 피아노 연주까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실제 손가락처럼 기교를 부리는 수준은 아니지만 간단한 곡을 천천히 연주할 정도로 로봇 손가락의 정밀한 움직임이 가능해졌다는 것은 연구팀을 흥분시켰습니다. 연구팀이 예상치 못했던 큰 요인은 바로 인간의 적응력이었습니다. 신경과 근육이 로봇팔에 적응해 나가면서 서서히 자기 자신처럼 품기 시작했던 것이죠.   

영화 같은 인생의 주인공 휴허 박사. MIT 미디어랩에서 가장 유명한 교수가 되었다.

수년 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고 이제 한국 내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MIT 미디어랩의 교수인 휴허(Hugh Herr) 박사의 이야기도 각별합니다. 십 대에 천재 암벽등반가로 불렸던 휴허 박사는 나이 17세 때 등반 중 당한 큰 사고로 두 다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잃어버린 자신의 다리를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감동적인 인간승리 이야기는 책과 다큐멘터리로 소개되기도 했죠.


최근 그의 연구팀에서 개발하고 있는 신형 로봇다리 또한 인간의 근육과 그 움직임을 최대로 활용합니다. 주동근-길항근간 근신경 인터페이스 (agonist-antagonist myoneural interface)라는 기술을 이용하여 근육의 움직임을 로봇다리가 효과적으로 프로세스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용자들은 '로봇다리가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A robot became part of me)고 경탄에 마지않았습니다.

주동근-길항근간 근신경 인터페이스를 설명하는 그림.

이렇게 뛰어난 성능의 로봇다리가 선보여지긴 했지만 이들 제품이 아직 보편화되기에는 가격과 기술적인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기존에 휴허 교수가 개발한 제품들을 아이워크(iWalk)라는 스타트업 회사로 기술 이전하여 산업화시키려고 했었죠. 그러나 제품이 워낙 고가인 데다가 (한화로 6천만 원 정도) 사용이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환자들은 불편하더라도 저렴하고 간단한 디자인의 보철 다리를 선택했습니다. 결국 이런 첨단 로봇다리는 자동차로 치면 실용화와는 아직 거리가 있는 '콘셉트카'나 '포뮬러원 레이싱카'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기술적 진보가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로봇다리가 세상에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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