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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리 Oct 29. 2024

따릉이 클래식

한국문화예술예술위원회 발표지원 선정작

따릉이 클래식


최규리




평범한 하루를 믿지 못해서

바퀴는 흙이 묻어 있지 않았다. 매끈하고 적당히 부풀어 있다. 세상 끝까지 달리고 싶지는 않다. 푸른 언덕에도 오르고 싶지 않다. 끝도 없이 달리는 것도 경사가 심한 곳을 오르는 것도 싫다. 내가 가고 싶던 맛집을 지나가며 맛있는 냄새를 맡고, 그와 함께 먹는 상상을 하는 것이 참 좋다. 힘차게 페달을 밟지 않는다. 음악을 들으며 벚꽃 나무 아래를 달린다. 이상한 숲을 헤매는 것이 싫다.


갈라파고스 거북이처럼

결론도 없는 슬픔이 출렁인다. 어디까지 차오른 건지. 숨이 막힌다. 앞으로 먼저 가 있는 감정들이 나를 끌고 간다. 끌려가는 속도보다 급발진이 더 무섭다. 나보다 먼저 출발하는 마음은 늘 갈라파고스 거북이처럼 차갑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헤엄친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 마음으로 달린다. 각질로 덮인 입술처럼 삐뚤거린다.


종이 빛이 내릴 때

무릎에 멍이 든다. 그런데 기분이 좋다. 몸에 멍이 든 것을 보면서 이제야 현실감이 든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아무렇게나 구겨진다. 작은 돌멩이에 바로 넘어진다. 아직 잡아주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부끄러운 햇빛이 누그러지길 기다린다. 슬로모션으로 쓰러지는 장면이 반복된다. 한 사람도 믿지 않으면서 나를 믿어달라고 떼를 쓴다. 무릎에 멍이 든다. 그런데 기분이 좋다. 몸에 멍이 든 것을 보면서 이제야 현실감이 든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거품 정원

꽃은 피었다 지고 또 피었다가 지고 또 웃었다가 울고 또 화냈다가 손을 잡고 달리다가 또 달려가고 굴러가다가 또 구르다가 잡았다가 또 놓쳐버리고 반복하는 어제라서 오늘은 없고 또 미래도 없고 지나갔는데 또 지나가고 어제라서 너무 익숙한데 매일 넘어지고 또 일어나고 또 넘어뜨리고 손을 내밀고 달리다가 웃고 달리다가 물건을 잃어버리고 또 마음을 잃어버리고 또 마음을 빼앗기고 또 마음을 빼앗고 구멍 속으로 달려가다가 부풀어 오르고 달려가다가 떠다니고 또 떠다니고 떠다니고 또 꽃이 피는 너에게로 달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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