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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 아빠표 짬뽕을 조리하라

아빠의 비밀 레시피 대작전

- 프롤로그 -


"특명의 시작"

나는 첫 요리였던 냉면의 성공에 도취되어 있었다.

내 생애 첫 요리였던 냉면이 무척 맛있었다는 아이와 아내의 칭찬에 한껏 고무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기분이 좋았던 나는 아내에게 다음 요리는 짬뽕을 만들어 주겠다고 덜컥 약속부터했다.

아내는 매운맛 요리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매운 짬뽕을 무척 좋아한다. 중국집에 가면 나는 늘 짜장면을 먹고 아내는 매운 짬뽕을 시켜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짬뽕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생전 요리 한 번 하지 않던 남편이 냉면에 이어 짬뽕을 만들어 주겠노라 하니 아내는 신기해 면서도 무척 기뻐했다.


나는 짬뽕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도 없고, 어떻게 만드는지 알지도 못했지만 왠지 자신이 있었다. 레시피야 인터넷의 바다를 조금만 헤엄쳐도 양질의 것들을 얻을 수 있으니 만드는 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만큼 쉬울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아내에게 호언장담을 했으니, 그 말의 무게에 맞는 맛있는 짬뽕을 내어 낼 의무가 나에게 생겼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레시피 앱들을 뒤져보니 대부분 식재료와 양념, 조리 방법까지 자세히 나와 있어 그대로만 따라 하면 이연복 짬뽕 저리 가라 하는 걸작이 탄생할 것만 같았다.


여러 가지 레시피 중에서 가장 쉬워 보이면서도 맛있어 보이는 짬뽕 레시피를 골랐다.

회사에서 업무에 초집중해 할 일을 모두 끝내놓고, 정시에 퇴근하며 마트로 차를 몰았다.

얼마 만에 가 본 마트였을까.

항상 요리는 아내가 준비를 했었기에, 마트도 웬만하면 아내만 다녀왔다. 생각해 보니 와이프와 함께 마트에 들러 장을 본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문득 가슴 한편에선 미안함과 아련함이 밀려왔다.

결혼해 달라고 꼬실 때는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힐 것처럼 온갖 감언이설로 꼬셔놓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랑하는 아이를 낳아주고, 내 옆에서 항상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내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맛있는 짬뽕으로 내 요리를 기대하고 있을 그녀에게 보답해야 했다.


호박, 당근, 양배추, 청양고추, 돼지고기, 손질된 오징어, 핫 소스, 버섯,  생소면 등 최대한 싱싱하고 좋은 식재료들을 골라 바구니에 넣었다. 혹여 사 먹는 것보다 훨씬 재료비가 많이 들면 아내에게 타박을 들을까 싶어 가능한 한 중국집 삼선 짬뽕 두 그릇을 사 먹는 비용보다 너무 크게 오버하지 않도록 가격도 맞추었다.


모든 준비를 하고 집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아이가 뛸 듯이 기뻐하며 나를 반겨주었다.

사실 아이는 내가 만든 요리보다 저녁을 먹고 나와 함께 즐기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더욱 고대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빨리 저녁을 먹고 게임을 하자며 나를 채근했다.


나는 아이에게 아빠가 일단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짬뽕을 맛있게 만들어줄 테니 잘 먹고 난 후 게임을 하자고 달랬다. 아이는 짬뽕 때문에 기분이 좋은지 게임 때문에 기분이 좋은지 춤을 추며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몸은 어느새 점점 자라 청소년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아직도 마음만은 7살 꼬맹이인 아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 요리 편 -


앞치마를 두르고, 준비해 놓은 식재료를 물에 씻고 손질한 후 종류별로 가지런히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딴에 본 건 있어가지고 도마 위에 식재료들을 올려놓고 폼을 재며 칼 춤을 추었다. 내 망나니 춤을 지켜보던 아내가 야채를 너무 두껍게 썰면 익지를 않는다고 귀띔해 주어, 금세 기가 죽어 춤을 멈추고 다소 곳이 석봉이 어머니가 떡을 썰듯 재료들을 손질했다.


본격적으로 준비해 놓은 웍에 올리브유를 넣고 가스를 가열했다. 파를 먼저 넣어 파기름을 만들어야 했으므로 성큼성큼 잘라 두었던 파를 모조리 때려 넣었다. 아내는 뭔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그냥 웃고만 있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시험 볼 때 왠지 선생님이 내 문제지를 유심히 보면 찍었던 문제가 마치 틀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답을 고쳤던 것처럼 아내의 그 모습이 뭔가 꺼림칙했다.


그러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만 하는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파를 열심히 볶았다. 약 3분가량 볶아 어느 정도 파기름이 만들어질 무렵 준비해 놓았던 돼지고기를 넣었다. 보기에도 신선해 보이는 핏빛 육질의 돼지고기가 파기름과 뒤섞여 맛있는 냄새를 풍길 무렵 손질 오징어를 넣어 육해의 화합을 만들어내었다.


오징어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 술과 생강가루, 다진 마늘을 함께 넣고 잘 볶아 주었다. 볶다 보면 어느 정도 불향이 날 것만 같았는데, 불향이 전혀 나질 않아 왠지 뭔가 잘 못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지만 나는 알량한 자존심에 아내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계속 볶기만 할 뿐이었다. 이윽고 레시피대로 간장을 부어 넣어야 했지만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금세 잊어버렸다.


'대충대충'

간장의 양은 감으로 때려잡아야 했다. 어차피 물 부으면 똑같아질 것이라 믿으며 간장 뚜껑을 열고 간장을 들이부었다.

순간.......

'큰일 났다...' 간장을 굉장히 많이 넣은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나중에 물을 붓고 나면 간이야 어떻게든 맞춰질 것이라 생각했다. 간장반 식재료반이라는 원치 않는 앙상블이 웍 안에서 서로 화음을 내고 있었다. 뭔가 잘 못 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했지만, 나는 태연히 레시피에서 본 바대로 그릇에 담아 놓았던 고춧가루를 마저 넣었다. 그리고 뒤엉켜 싸움박질하는 그것들을 달래듯 살살 볶으며 국물이 되어버린 간장이 쫄면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것인지 가늠할 수 없어 순간 멘붕이 찾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마치 다 알고 있고, 레시피대로 잘 되어 가고 있다는 듯 연기하는 것뿐이었다. 와이프는 그런 내 연기에 속고 있는 것인지 속아 주고 있는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이미 멀리 와버린 내게 돌아갈 곳은 없었다. 나는 그저 찰리 채플린처럼 무성 연기를 계속할 뿐이었다.


고춧가루와 다른 재료들이 어느 정도 볶아졌다고 생각이 들어 물을 부어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이제 90%는 완성된 것이라 생각하니, 더 이상 돌이킬 수도 없었다. 그저 내가 만든 짬뽕 국물이 맛이 있기를 기도할 뿐.


짬뽕 국물이 끓는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냄비에 물을 받아 생소면을 끓였다. 생소면은 약 3분에서 5분 정도 끓는 물에서 끓여 건저 올린 후 찬물에 씻어주면 특유의 탄성과 쫄깃함을 유지할 수 있다.

면을 흐르는 물에 잘 씻어 아내의 그릇에 잔뜩 올려놓았다. 면이 너무 많다는 아내의 투정이 있었지만, 많이 먹이고 싶은 남편의 마음에 나는 이미 올려놓은 면을 다시 거두지 않았다.


"여보! 맛있을 거예요. 많이 드세요"


짬뽕 국물이 끓고 마지막 식재료인 팽이버섯을 넣어 상큼한 향을 더했다. 숟가락을 들어 국물의 맛을 보니 왠지 물과 재료들이 입안에서 따로 노는 듯했다. 아뿔사.  실패였다.

소금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소금을 넣고 오래 끓이면 맛이 우러나올 것이라 생각해 준비해 놓았던 소금을 조금씩 계속 넣었다.

국물 한 번 떠먹고 소금 넣고, 두 번 떠먹고 소금 넣고.... 그렇게 열 번은 넘게 맛을 보며 간을 조절했지만 계속 짜지기만 하고 영 중국집 짬뽕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시계바늘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쨌든 요리는 완성시켜야 하고, 저녁은 먹어야 하기에 될 대로 돼라 심정으로 요리의 완성을 알렸다.


짜잔! 아빠표 비밀 레시피 짬뽕의 완성이요!


- 에필로그 -


짬뽕 국물은 맛이 조금 없었지만, 면과 섞이면 뭔가 맛이 날 수 있겠다 싶어 아내에게 얼른 맛을 보라고 채근했다. 싱싱한 식재료들이 많이 들어가서 보기에는 그럴듯하게 보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 보기에 짬뽕의 비주얼이 그럴듯하니 맛도 그럴듯했으면 하고 바랐다.

아내는 짬뽕의 비주얼이 좋다며 맛있을 것 같다고 격려 해 주었다. 그리고 난 후 국수를 한 젓가락 드시고선.....


"여보! 국수에서 밀가루 맛이 나요......"

아이는,

"아빠 맵고 짜서 못 먹겠어요"

 

여보.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렸어요. 짬뽕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도전이었어요. 내 오늘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초심으로 돌아가 다음 주에는 오므라이스로 맛을 내보리다.

오늘은 그냥 드셔주시오......


오늘의 아빠표 잠뽕은 사진용으로 만족해야 했다. 나에겐 다음 주가 있으니.

맛없는 아빠의 음식이지만 조금이라도 먹어 준 아이와 아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날 나는 아이와 두 시간 동안 게임을 즐겁게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또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리.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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