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두에 걸려 하루종일 집안에만 있는 아이의 보육과 교육을 함께 도맡아 하느라 진이 빠진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아내에게 오징어짬뽕라면을 맛있게 끓여주겠노라고 호언장담했다. 나의 자신감은 그 근거가 없음에도 아내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아내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데, 특히 짬뽕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난 수요일 요리는 짬뽕으로 고른 것이었는데, 대실패로 끝났으므로 이번 짬뽕라면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그게 내 요리실력에 대한 아내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었다.
아내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앞치마를 배 위에 둘렀다.
팔을 걷어 부친 후 냉동고에서 지난번 짬뽕을 만들고 남은 오징어를 꺼내 찬물에 깨끗하게 씻어 해동을 시켰다. 제법 부엌칼이 손에 익었는지, 오징어 손질이 지난번보다 확실히 나아졌음을 느꼈다. 분명 아내가 보기엔 서투름 그 자체였겠지만 그래도 느낌만으로는 서울 유수의 호텔 주방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징어 귀를 떼어 내고 다리와 몸통을 분리해 다리는 씹기 좋게 적당한 길이로 잘라내고, 몸통은 3cm 간격으로 잘라내어 다시 반으로 잘랐다. 먹기 좋게 손질을 끝내놓은 후 웍을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파기름을 만들기 위해 웍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손질된 파를 넣어 볶았다. 파 냄새와 기름냄새가 섞여 구수한 재료의 향연이 아지랑이 피우듯 집안 곳곳에 퍼졌다.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이라고 했던가. 비록 실패는 했으나 짬뽕 조리법을 기억하고 있던 손과 팔이 그새 능숙해져 있어 막힘없이 조리를 하고 있었다.
웍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에 비례해 오징어의 육신에도 생기가 넘쳐흘렀다. 작은 미끼에 대한 욕심에 현혹되어 어부들에게 낚이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크고 넓은 해양을 휘젓고 다닐 오징어였다. 그런 오징어가 주검이 되어 생기를 잃고 흐느적거리고 있었던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것일까. 뜨거운 파기름은 오징어의 토막 난 육신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오동통통 쫄깃쫄깃.
잘 볶아진 오징어에 찬물을 500ml 정도 부었다. 조금 전까지 왁자지껄하게 웍이라는 무대에서 놀던 식재료들이 일순간 잠잠해졌다. 태풍전야일까.
물이 끓기 전 잠시 상념에 젖었다.
'이번엔 맛있어야 하는데' 물이 끓고 라면을 뜯어 넣고 수프와 건더기 수프를 넣었다.
국물을 한 수저 떠먹었다.
'그래. 이 맛이야.' 오래된 광고 카피라이트처럼 맛이 좋았다.
빨리 완성해 아내에게 칭찬받고 싶은 욕심에 라면을 자주 뒤집어 주었다.
3분 정도가 지나고 태어나 처음으로 만든 오징어 짬뽕라면엔 진짜 오징어가 들어있다라면이 완성되었다.
큰 그릇에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모조리 털어 넣고 아내의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마마님 드시지요.'
그 순간만큼은 아내의 전속 요리사로서 의무를 다하고자 했다.
아내는 숟가락에 면발을 얹어 한 입에 넣은 후 국물을 떠먹어 맛을 음미했다.
"여보. 맛있어요."
아내는 별 것 아닌 별거인 내 요리를 칭찬해 주었다.
따끈한 오징어짬뽕라면처럼 내 마음도 따뜻했다.
여보. 고마워요. 내 레시피 없이 만들어 본 오징어 짬뽕라면이 맛있다고 해줘서.
오징어짬뽕라면 자체가 맛있는 것인지 내 정성이 들어가 더욱 맛있어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