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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기자 Jul 03. 2022

<트레이드>

단편 소설



"따르르릉"


낮 11시. 단잠을 깨우는 전화벨 소리. 전화를 보니 모르는 번호다. 받을까 말까. 보통 이럴 때는 스팸일까봐 받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왠지 기분이 쎄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상대가 말을 하기도 전에 전화가 또 들어온다. 또 모르는 번호다. 뭐지. 무슨 일이지. 


"김산혁 선수 맞으시죠?" 


상대편이 내 이름을 얘기한다.


"네 맞는데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스포츠데일리 김미리 기자입니다"


전화 소리를 듣는데 계속 뚜-뚜- 전화가 들어온다. 


"아 저 전화가 와서 쫌이따 전화 드려도 될까요?"

"지금 트레이드 때문에 전화가 많이 오나봐요"


"트레이드요??"


나는 방금 전까지 절반쯤 떴던 눈을 번쩍 떴다. 트레이드라니?


전화를 쳐다보고 있자니 문자 하나가 띠링 울린다. 운영팀장님이다.


"산혁아, 문자 보면 전화 해라"


나는 기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운영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사이에도 전화는 계속 들어오고 어느 순간부터 카톡도 계속 울렸다.


"팀장님 전데요"

"어 산혁아.. 벌써 얘기 들었어?"

"트레이드요?"

"응 그래. 내가 전화를 먼저 하려고 했는데 홍보팀이 미리 내버렸네"

"저 트레이드 돼요? 트레이드 온지 반 년도 안 되는데?"

"그게 그렇게 됐다. 일단 짐도 챙기고 하려면 구장 좀 와라"


뭐지 이게. 


반 년 전 나는 OO에서 ZZ로 트레이드 돼 왔다. ZZ는 나를 영입하면서 내야수 풀을 두껍게 하기 위해 트레이드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나는 처음 지명됐을 때부터 뛰었던 OO에서 점점 출장 비중이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중이 적은 건 ZZ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1군에서 벤치만 지키는 것보다 2군에서 뛰다가 부르면 올라오라고 2군에서 주로 뛰었다. 짜증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구단에 비해 선수는 힘이 없다.


그렇게 2군에서 뛰다 1군에 올라와 뛴지 며칠 되지도 않을 때였다. 그런데 또 트레이드라니. 허겁지겁 기사를 찾아봤다. 나는 DD 투수와 유니폼을 바꿔입는다고 기사에 써 있었다. 전화기를 멍하니 보는데 전화가 또 울렸다.


아까 그 기자였다.


"김미리입니다. 그 사이에 다른 기자랑 인터뷰하신 거 아니죠?"

"네 아닙니다. 운영팀장님이랑 통화했습니다"

"팀장님이 무슨 이야기 해주시던가요??"

"구장 나오라구요"

"아 그럼 트레이드를 정말 눈치채지 못하셨군요.. 현재 심정도 많이 놀라셨겠어요"


이 기자는 노련하게 인터뷰에 쓸 말을 잘 유도한다. 짜증이 나지만 그렇다고 새 팀으로 옮기면서 미디어와 불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당황스럽긴 한데 처음 이적도 아니고, 가서 제가 필요한 부분 찾아서 잘 해야죠"


나도 교과서적으로 답했다. 사실 그 말이 맞다. 트레이드되기 싫다면 선수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를 요구하거나(거의 불가능하다) 이 팀을 나가서 자유계약선수가 돼 다른 팀으로 가야 한다. 사실상 방출이다. 선수는 힘이 없다.


"새 팀 팬들의 기대가 큰데 혹시 하실 말씀이나 각오 있나요?"


이 기자는 거짓말을 잘도 한다. 새 팀 팬들은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를 거고 그냥 백업 하나 늘었구나 할 거다. 지금 팀에 올 때도 그랬다. 내 트레이드 소식은 포털 메인에 뜨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그럴텐데 기대가 클리가 있나.


"DD가 저를 뽑은 이유가 있을테니 잘 찾아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럭저럭 전화를 끊고 카톡을 보니 몇몇 선수들이 "형 가요?" "형 언제 들었어요?" 라고 카톡을 보내놨다. 어쩌라는 거냐.


그중 하나. "우리 팀 온 거 축하한다. 잘 뛰어보자". 청소년대표 때 같이 뛰었던 내야수 친구의 문자 하나가 반갑다. 다행히 가서 버스 같이 타고 밥 같이 먹을 사람은 있겠다. 일순간 마음이 놓였다. 


하. 하지만 이제 할 일이 많다. 새 팀이 있는 데에 집도 알아봐야 하고 지금 집도 빼야 한다. 트레이드는 두 팀이 합쳐서 100만 원을 이사비용으로 주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집 전세를 내주신 부모님한테 아직 이야기도 못 했다.


트레이드란 너무나도 귀찮다. 하지만 입바른 말마따나 트레이드로 팀에 가서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새 팀에 가면 솔직하게 누가 아파야 나한테 기회가 오려나.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애초에, 트레이드 이거.. 누가 만든 거야 귀찮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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