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그리고 안녕. ( Hello, and bye.) / 열 번째 이야기
남편은 지방에 지은 전원주택 집과 서울집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나는 주 5일 출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지방으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또 올해 미술치료 대학원에 합격한 상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며칠 잠깐 가는 것이 아니라면 길게 머무를 수 있는 상황이 되진 않았다.
반면 남편은 개인 시간 조율을 일주일에 하루를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고 직원들이 중간중간직접 내려와서 회의도 하고 해서 크게 타격이 없었다. 특히 지금 하던 일에서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곳이 위치가 집 근처인 대구라 그곳에 머무는 것이 그에게는 우연찮게도 딱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집을 완성된 후에도 나는 일을 하느라 일정을 내기가 여의치 않았는데 이번 설날, 나는 처음으로 시댁을 가지 않고 새로 지은 집과 친정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친정집은 집을 지은 곳과의 거리가 30분 거리이기 때문에 내려간 김에 집도 가보고 부모님도 함께 뵙기로 했다.
차를 타고 4시간이 걸리는 곳까지 뽀삐를 데려가는 길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뽀삐는 남편이 곁에 있으면 덜 불안해해서 크게 어려움 없이 내려올 수 있었다.
지난여름, 집이 다 정리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이번에 드디어 완성된 집을 보게 되었다.
그가 손수 1년간 공들여 지은 집은 누구나 감탄할 만한 웅장함을 지니고 있었다. 2층으로 지어진 전원주택은 모든 이들의 로망을 실현한 공간으로, 계곡을 바라보며 세련된 인테리어와 남편이 직접 디자인한 가구들의 배치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집의 모든 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개방감이 넘쳤고,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집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와 너무 좋다. 너무 좋은데? '
이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대단한 사람임은 틀림없었다. 디자인 설계. 인테리어 마무리까지 본인이 다 했다니 얼마니 애정을 가지고 만들었을까.
1층에는 방과 거실, 주방, 테라스가 있었고, 부대시설로는 골프장, 자쿠지, 노래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에 있으면 외부의 소음이나 번잡함이 느껴지지 않아, 오롯이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지내어도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멋진 집이었다. 모든 것이 새것. 새 주방 도구, 새 가구, 새 침구등 10년 살림살이만 보다 새것을 보니 호텔에 온 것만 같았다. 이곳저곳 감탄하며 둘러보다 나는 갑자기 ‘아 여기 우리 집이지? ’ 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공간에서 느끼는 멋있고 편안함을 느낌과 동시에 , 한편으로는 나와 뽀삐가 서울에서 느끼는 고독함이 더욱 부각되었다. 내 집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집, 잘 지어진 모델하우스에 와 있는 듯한 낯선 감정을 느꼈다. 분명히 나의 집인데, 그곳은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지난번에 왔을 때 2층은 공사가 끝나지 않아서 내부를 볼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2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사무실 겸 작업실은 그동안 수집한 피규어와 소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쪽 벽에는 어머니의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이 집을 지을 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담아 어머니의 공간을 꼭 마련하고 싶어 했고, 이제야 그가 하고 싶은 어머님의 유품들을 정리해서 나열해 두었다. 본인의 물건들과 유품들이 함께 있는 그 공간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 나의 존재가 그 공간에서 점점 더 희미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서울에서 뽀삐와 함께 1년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많은 어려운 감정들로 시간을 보내왔는데 왜인지 그는 참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 아.. 여기 있으면 서울에 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주말이면 지인들이 그곳을 즐기기 위해 방문해서 바베큐 파티도 하고 골프도 치고 사람들과 몇일을 보내는 못습들을 전해 들을때마다 나는 내 처지를 한탄했다.
나는 뽀삐 때문에 사람들도 잘 못만나고 잠도 잘 못자고 힘든데, 내가 걱정이 되지는 않는건가?
나는 밥을 잘 먹고 사는지 마음이 쓰이지도 않나?
온통 불평 불만 서운함의 마음들이 점점 쌓여만 같던것이다. 아마 내가 원했던 대답은
'너는 힘든데 나는 지금 사람들이랑 이렇게 있어서 미안해. ' 진심으로 미안해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퉁명스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다보니 상대는 또 나의 이런 태도들이 언짢게 느껴져서 왜 매일 툴툴거리냐고 받아들이기도 했다. 풀릴듯 풀리지 않는 반복적인 대화들이 더 입을 다물게 하기도 했다.
이런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감정이 차오를때면 '내가 없어도 잘 살고 있고 잘 살겠구나' 라는 어리석은 생각도 들었다. 기분이 씁쓸하다. 같이 사는 남편에게 왜 나는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건지. 나는 어디서 부터 잘못된 건지. 나는 뭐가 문제인 사람인지. 나를 탓해 보기도 한다.
내가 이런 삐뚤어지고 못난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안다면 남편은 서운해 할 수도 있고 억울한 감정이 들 수도 있겠지만. 나도 모르겠다 이 삐뚤어진 마음이 왜인지는.
학교가 방학을 한 기간 동안 매주 서울을 오지 않아도 되어 그는 설이 지나고도 겨울을 그곳에서 조금 더 오래 지내게 되었고, 이번에 내려간 김에 뽀삐를 본인이 데리고 있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뽀삐를 돌보느라 새벽에 잠을 잘 못 자기도 했고, 그로 인해 심신이 너무 지쳐 있는 상태이기도 해서 남편이 맡아서 돌보기로 했다.
솔직히 뽀삐는 남편과 있을 때는 잘 짖지도 않고 잠도 잘잔다. 다음번 서울에 올 때까지 뽀삐를 두고 나만 서울로 오는 기차를 탔다.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지만 서울로 오는 기차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터져버렸다.
마음엔 수많은 물음표가 던져졌다. 밤하늘이 어두워졌을 무렵 나는 집으로 도착을 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다
하루종일 갇혀있던 익숙한 냄새들이
고스란히 코끝으로 만져졌다
보조등이 다행히 어두움을 막아준다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누른다
찰나의 순간 눈앞에 펼쳐진
텅 빈 공허를 마주한다.
아무도 없네
하루종일 수많은 사람들과 말을 건네던
뒤섞인 언어의 조각들이 빠르게 스쳐간다
꾹 닫힌 입. 무표정한 얼굴.
한숨을 잠시 크게 내쉰다
좋아하는 음악을 빠르게 골라서 크게 틀어 놓는다
집안 전체에 아름다운 소리들이 채워진다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다
어느 순간 마음이 평온해진다.
참 단순하고 또 단순한 나다
고프지 않은 배고픔에
주섬주섬 예쁜 그릇을 꺼낸다
곱게 나를 위한 한 상을 차려본다
고요한 식사 시간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런 거지 뭐
적당한 서글픔과
적당한 쓸쓸함이
치솟아 오를 때
혼자 중얼거리며 말한다
혼자도 아니고
함께도 아닌 우리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렵진 않다
마음의 조절기능 버튼을 작동하여
연약한 마음의 안정적인 지점을 맞춘다
태연하게 마음이 다시 한번 평온해진다
노트북을 꺼내든다
향이 좋은 커피를 내린다
다시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한다
무겁게 내려앉아있던 공기들에
미지근한 생기가 깃든다
좋다
그럼 된 거지
지금 이 순간 꽤 괜찮은 시간이네
자려고 할 무렵, 뽀삐의 사진이 한 장 도착했다. 맛있게 밥을 먹고 이불속에 쏙 들어가 자는 모습이 귀여웠다. 오늘 밤 잘 때 나를 찾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와 함께하는 뽀삐의 평온한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네가 행복하면 된 거야.
오늘 밤, 뽀삐와 함께 지내던 방에서 혼자 잠을 자려니 낯설고 어색했다. 이불에서 뽀삐의 꼬수한 냄새가 났다. 짖어도 뽀삐가 옆에 있는 게 나은 거 같기도 하네 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오늘은 깨지 않고 1년 만의 숙면을 취하는 날이 되겠구나. 아침까지 깨지 않고 푹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