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겨울에도 우리 함께할 수 있겠지?
안녕, 그리고 안녕. ( Hello, and bye) / 아홉 번째 이야기
2023. 뽀삐와 함께하는 네 번째 겨울
겨울이 성큼 다가오면서, 뽀삐와 함께하는 네 번째 겨울이 찾아왔다.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고, 창밖으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풍경을 보며, 뽀삐와의 산책을 자주 나갈 수가 없음이 아쉽기만 하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면 답답할까 봐 추운 날씨지만 뽀삐를 품에 꼭 안고 잠깐씩이라도 바깥의 공기를 맡게 해 주려 데리고 나간다. 옷을 입으면 좋겠지만 평생 강아지 옷을 거부해서 어쩔 수 없어 패딩 안에 꽁꽁 싸매고 나갈 수밖에 없다.
집에서는 서열이 나보다 위이지만 안기만 하면 쫄보가 되어서 나에게 꼬옥 안기는 뽀삐가 너무 귀엽다.
또 꼭 안으면 따뜻한 체온이 느껴져서 우리 둘만의 작은 교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늘 산책하는 장소에 데리고 나가면, 뽀삐는 꼭 그 지점애 쉬야(?)를 하고 코를 킁킁 거리며 공기를 맡은 후 천천히 발을 뗀다. 힘이 없는 얇은 다리가 휘청휘청 대기도 하지만, 한발 한발 걸으려고 하는 뽀삐의 의지도 느껴진다. 대견해.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정확히 걸어 나가는 행동들은 여전히 신기하다. 초록 풀숲이 무성했던 지점에서 꼭 한 템포 쉬며 한참울 풀에 코를 박고 탐색했었는데 올봄에도 꼭 그렇게 하자며 약속했다.
산책시간이 5분 정도 지났으려나 금세 다리가 아파 자리에 주저앉아버리는 뽀삐는 작년보다 또 몇 달 전, 한 달 전보다 점점 다리 힘이 없어지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이러다 정말 걷지 못하는 날이 올까 두렵다.
뽀삐는 노견치매 진단을 받았다. 강아지 치매는 사람의 치매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치료법은 없다고 한다. 작년과 올해, 치매 증상이 한동안 심해졌다가 다시 조금 나아진 것 같지만, 그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쩔 수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이 참 슬프고 무겁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진행 속도를 늦추고, 뽀삐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산책을 많이 시켜주는 것이 현재 20세를 앞둔 뽀삐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런 조언을 들으면서도, 뽀삐가 여전히 왕성한 식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한 줄기 희망을 느낀다.
내년이면 뽀삐는 사람 나이로 100세를 훌쩍 넘길 20세가 된다. 이 나이를 생각하면, 사람의 100세 건강 상태와 비교할 때, 뽀삐는 나름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뽀삐가 치매 증상이 심해진 후, 나의 일상은 크게 달라졌다.
치매 노견들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인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이 시작되었다. 낮에는 하루 종일 자고, 밤에는 잠을 자지 않으며 끊임없이 짖기 시작했다. 또 화장실 변기 뒤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거나, 어떤 사물에 꽂히면 계속 짖거나 발로 긁는 행동을 반복하는 뽀삐의 모습은 그저 안타까운 상황일 뿐이다.
자다가 깨어서 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짖는 일이 잦아졌고, 그렇게 온몸이 뜨거워져 열이 날 때까지 몸을 들썩이며 짖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저 속이 아렸다. 그럴 때마다 뽀삐의 눈빛은 원래의 순한 모습과는 달리, 사나운 다른 강아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뽀삐를 안아보기도 하고, 새벽에 찬 공기를 쐬러 나가기도 하며, 어루만지고 달래 보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아침을 맞이한 밤이 수없이 많았다. 밤 11시, 새벽 3시, 5시 간격으로 깨어나는 뽀삐를 위해, 올 초부터 작은 방에서 함께 잠자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침대에서 함께 자보려 했으나, 뽀삐는 오히려 침대 끝에 가서 내려달라고 더 심하게 짖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현관 앞, 뽀삐의 이동이 가장 많은 곳에 이불을 깔고 바닥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뽀삐를 안고 자려하면 짖고 물고 으르렁거리고, 그냥 놔두거나 곁에 없으면 또 짖고, 그렇게 밤새 우리 둘은 보이지 않는 밀당을 주고받으며 수없는 밤을 새우다 지쳐 잠이 들었다. 손이 저려 눈을 뜨면, 뽀삐가 언제인지 내 곁에 스윽 와서 팔을 베고 세근세근 자고 있었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서 정확히 감정을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운다면 이런 느낌일까? 뽀삐의 자는 모습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천사 같은 모습으로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예민해져서 뽀삐에게 그만 짖으라고 소리 지른 것이 미안해지고 반성하게 되었다.
어쩌다 이 작은 생명체와 나의 인연으로 우린 매일 밤을 이렇게 보내게 되었을까. 숱하게 내 마음에 물어봤다. 어쩌다 내가 , 왜 내가, 뽀삐를 만나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쩌다 나는 이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졌을까?
그리고 그 의문에 답의 끝엔 뽀삐가 있어줘서 다행이란 결론으로 마무리가 지어졌다. 이 상황에 뽀삐까지 없었다면 나는 어떠했을까? 혼자 있는 시간들에 이 아이가 곁에 있어 주어서,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존재에 의지하며 위로를 주고받고 있는 것 같다. 뽀삐가 나에게 주는 사랑과 위안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매일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힘든 긴 겨울밤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가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들이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사실이 두렵기도 하다. 몸은 힘들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후회하는 순간이 올까 봐 나는 그저 곁을 지키고 돌보고 있을 뿐이다.
겨울의 찬바람 속에서도, 우리의 소중한 순간들과 따뜻한 온기들을 뽀삐가 기억을 했으면 좋겠다.
내년 겨울에도 우린 함께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