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소모
안녕, 그리고 안녕. ( Hello, and bye) / 여덟번째 이야기
(2023년의 어느날 )
''오빠, 왜 화를 내면서 말을 해? '
'내가 언제 화를 냈어?
' 유리야, 너는 별것도 아닌 것에 정말 예민해. '
'.....'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며 반복해서 싸웠다.
'이번주엔 집에 와? '
' 오면 언제 가는데? 며칠 있다가 가? '
' 또 약속 있어? '
남편이 집에 오는 주간이 오면 나는 질문이 많아진다. 2~3일을 집에 머무르게 되면 그는 일정이 많다. 오랜만에 서울에 오면 만나야 할 사람들도 많았고 그를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나를 제일 먼저 보려고 했지만 집으로 오는 동선에 시간이 맞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면 먼저 들렀다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 도착하는 것을 알아도 대부분 약속이 중간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보니 나의 질문이 많아진다.
'왜 자꾸 물어봐? 똑같은 말을 몇 번 해? '
같은 질문의 반복이 여러 번이다 보면 당연히 귀찮고 그 질문을 하는 의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남편은 나의 질문의 뼈가 있다는 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 알기에 나의 의중을 날카로운 말투로 묻기도 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내 탓도 있다.
'그냥 물어본 거야'
(내가 보고싶지 않은걸까? 왜 나를 더 먼저 챙기지 않지? 내가 걱정이 안되나?? 등등의 많은 뜻이 담겨 있는데 말이다)
나와 밥을 먹거나 시간을 보내고 나를 집에 내려주고 뒤에 약속을 이어서 잡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은 너와 시간을 보냈으니 이따가 나 00 만나고 와도 되나?
'... 00은 왜 만나는 거야? '
' 너도 참... 오늘 너와 놀아줬잖아 '
서운하다. 분명히 서운한 마음이다. 여기까지 글을쓰고 한동안 글을 더 이어나가지 못하고 작가의 서랍 속에서 글이 한동안 또 멈춰있었다.
마음에 묻어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일이, 눈앞에 텍스트로 다시 한번 직면을 하는 게 생각보다 마음이 아팠다. 한동안 굉장히 마음이 힘이 들었다.
그의 입장도 이해를 한다. 바쁜 스케줄을 마치고 서울에 오면 머리도 식혀야 하고 친구들도 오랜만에 만나야 하고, 일과 관련된 사람들도 만나서 비즈니스도 해야 하니까 시간이 필요함을 모르는 건 아니다.
쿨한 와이프의 모습으로 ' 잘 다녀와! '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나는 애초에 태생이 그런 사람이 아닌 것이다.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며칠 만에 왔는데. 나 오늘 쉬는 날인데.. 모든 상황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다고 딱히 같이 뭘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말이다.
남편은 나보다 늦게 올 때가 훨씬 더 많았다. 일도 늦게 끝나고, 나처럼 정해진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있는 직업도 아니니까 낮과 밤이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 아무래도 그런 일상이 익숙하다 보니 퇴근 후 이른 시간에 집에 오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결혼 초에도 분명 그랬다. 크게 지금과 다르지는 않았다. 떨어져 지내는 것만 달라졌을 뿐이다.
남편은 주변에 지인들도 많고 함께 있으면 유머스럽기도 해서 여러 사람들이 잘 따르고 인기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그를 찾는 사람도 많고 그가 챙겨야 할 사람들도 참 많다. 전화도 많이 오고 전화도 할 곳도 많다.
데이트를 할 때도 둘보다는 누구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둘이 있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같이 이동하는 일도 많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나와 있는 게 재미가 없거나 지루해서일까 생각을 하곤 했다. 가끔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나에게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같이 있어도 혼자 있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때론 나는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뿐이란 생각도 했다. 물론 이 이슈를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그럴 때마다 각자의 입장만 꺼내고 결국 해답은 나오지 않았고 얼굴만 붉히는 일만 남았다.
나는 너를 바라보고 너는 다른 곳을 바라본다
나는 오늘도 서운한 마음이 든다.
퇴근을 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그가 집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또 빈집이다. 현관에서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쉬어진다. 현관 앞에서 잠을 자는 뽀삐가 문소리에 자다 깨어 아픈 다리를 딛고 나를 마중 나온다.
' 뽀빠이이이~~' 잘 있었어?? '
하루 종일 혼자 집에서 있었던 뽀삐의 눈에 눈곱이 많이 낀걸 보니 혼자서 낮에 많이 짖었다보다.
뽀삐는 사람이 곁에 없으면 한동안 사람이 옆에 올 때까지 짖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래도 나와 둘이 지내다 보니 내가 눈앞에 없어지면 분리불안이 생겼다. 혼자있는것을 싫어하고 자주 짖었다. 눈물 자국이 깊은 것을 보니 오늘 하루동안 많이 힘들었나 보다. 왠지 모르게 뽀삐가 나 같아서 더 꼭 안아주었다. 뽀삐를 안고 쓰다듬고 한동안 충분히 시간을 보낸다.
익숙하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집에 와서 내 할 일을 한다. 퇴근을 했으니 저녁밥을 챙겨 먹어야 하고 밤이 되었으니 잠을 자야 한다.
시간을 확인한다. 먼저 연락을 하고 위치를 묻고 언제 오냐는 질문의 행동들에 잠시 제어가 걸린다. 마음으로 하고 만다.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지만 마음 한 구석이 계속 답답했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그게 정확히 뭔지 표현을 할 수 없었고 나도 내 마음의 상태를 정확히 읽어내리지 못했다.
차라리 그림을 그리거나 글로 마음을 그려내는 것이 나에게 훨씬 더 솔직하고 편할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의 이야기를 입으로 꺼내어 순서대로 조리 있게 하고 싶지만 분명 횡설수설이 되어 버린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길을 잃기도 해서 오히려 의미 전달을 망치는 경우도 많았기에 입을 또 굳게 닫아버린다.
30대 초반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매일이 정신없이 바쁘고 한창 바쁘게 지내던 시절이었다. 하루종일 수업을 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심신이 지쳐 있었다. 자취하는 오피스텔로 터벅터벅 들어왔다. 배도 고프고 몸은 피곤하고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이미 저녁 10시가 넘어서 누구를 만나기도 애매했다. 친구를 만나서 마음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지만 그럴 사람도 없었고 그럴 용기도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허공에 발차기를 했다. 악!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답답했다. 옆집에 안 들릴 정도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다. 하루종일 사람들과 교류하며 집에 왔는데 그 공허함과 외로움이 너무 힘이 들었던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던지고 긍정의 힘을 전달하는 역할이지만 진작 나는 마음이 왜 이리 가난할까..
나도 위로를 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깊은 속 마음에 진짜 내편을 원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속의 이야기를 조리 있게 하지 않아도 되고 편하게 내 이야기를 해도 들어줄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늘 원했다
사랑하는 부모님은 매일 통화를 하지만 당장 내 곁에 있어줄 수는 없으니 안타까웠다.
그래서일까? 그 가난하고 찌질한 나의 어리고 여린 마음을 결혼을 하게 되면 다 해결이 될 줄 알았다.
결혼은 완벽한 내편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내가 아닌 우리가 되면 나는 늘 함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친구도, 주변사람들도 중요하지만 나는 그것보단 우리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나도, 지극히도 의존적인 사람인 것일까?
과연 내가 매 순간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정말 바라는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며 욕심쟁이인 것일까
그전에는 사람에 지쳐 결혼도 하기 싫었고 나와 잘 맞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곁에 가족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의 긴 밤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사소한 말다툼의 시간들이 쌓여가고 불편한 감정을 가진 채로 남편과 떨어지게 되면 다시 1~2주를 있다가 만나게 된다. 각자의 공간에서 밤을 보내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먼저 전화가 온다. 그도 물론 마음이 불편하겠지만 나보다는 마음의 정리가 빨리 되는 편이었고 나는 감정을 다스리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는 사람이란 것을 물리적으로 떨어져 지내다 보니 알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전날의 불편한 감정이 이어져 그가 원하는 말투나 텐션의 음성이 전달되지 못했다. 그 감정들이 덕지덕지 뭉쳐져서 표정과 말투에도 날섦과 짜증이 섞여 표현이 된다. 어쩔 땐 내가 오히려 더 짜증을 내기도 한다.
'오빠는 나에 대한 배려가 없어!, 말을 좀 다정하게 했으면 좋겠어. 왜 그렇게 말을 해 '
'너는 바라는 게 너무 많아. 너의 방식대로 해주길 바라고 10을 잘해도 1개를 잘못하면 그 앞의 9개는 다 잘못한 게 되어버려.'
어느 때는 통화를 할 때마다 부딪히기도 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투고 화내고 주변사람들이 있을 때도 싸움이 연결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싸울 때는 울기만 하고 그의 말에 덜덜 떨기도 했지만 1년 정도 말다툼이 이어지다 보니 나도 마음의 직선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사랑을 말하며 결혼한 상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되돌릴 수 없는 단어로 쏟아졌다. 그런 단어 사용의 지적은 오히려 그의 심기를 더 거스르게 할 뿐 갈등은 깊어졌다.
'우리 당분간 대화를 좀 줄이자. 필요한 말만 하자. 지친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부부는 다투어도 물처럼 화합하기 쉽다
예전에는 말다툼을 하거나 의견의 대립이 있을 때는 10분도 안되어서 바로 풀고 1시간도 채 걸리지 않고 바로 사과를 했다. 싸움이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며 싸움은 바로 풀어야 한다고 둘 다 웃으며 끄덕이며 말을 한 적도 자주 있었다. 심지어 주변 지인부부가 싸우면 우리처럼 바로바로 풀어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사실 칼로 물을 벨 수는 없다. 부부싸움은 오히려 내 마음을 단칼에 날카롭게 베어버렸다.
매번 사소한 별것도 아닌 것이 싸움으로 인해 우리는 진짜 별거가 되어 버린 셈이다.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몇 년 전 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냈던 시절이 나는 훨씬 행복했다.
서로 부딪히는 시간들의 감정적인 소모가 너무 심할 뿐이다.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슬픔의 감정은 어떤 사람이 쉽게 치유받을 수 없는 박탈이나 상실을 경험했을 때 나타난다.
-아들러의 인간이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