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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Feb 05. 2024

내가 유모차 대신 개모차를 사게 될 줄이야.  

현타가 오는 날

안녕, 그리고 안녕.  ( Hello, and bye)  /  여섯번째 이야기.


(2022년 일기입니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나면 아파트 분수대 앞 놀이터는 활기로 가득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하원한 아이들이 모여들어, 웃음소리와 놀이하는 소리가 공기를 가득 채운다. 이 시간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마치 우리 아파트의 모든 아이들이 모여있는 것 같이 활기차다.


놀이터 주변에는 유모차를 끌며 아이들을 데리러 나온 엄마들이 모여있다.  아이들의 안전을 살피기도 하고, 엄마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육아의 지친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놀이터의 벤치에는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쉬는 엄마들도 보인다.


나는 뽀삐와 함께 산책을 나가는 길에 이 놀이터를 지나친다. 그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내 마음은 멈춰지는 것 같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엄마들의  따뜻한 모습은 나에게 낯선 기분을 전해준다.


 '아, 조금 더 늦게 나올걸.. ‘


뽀삐를 태우고 신나게 개모차를 밀고 나오다 순간  멈칫한다.  놀이터를 지나는 순간, 내 마음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유모차와 아이들의 움직임을 피해 개모차를 밀며 지나가는데, 내 뒤통수는 뜨거워지고 머리는 쭈뼛 서며 얼굴이 붉어진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데도, 나 혼자 괜히 의식하고 부끄러웠다.


‘저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인데 다 유모차를 끌고 있는데 나는 왜! 개모차를 끌고 있는 거지? ‘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나자마자, 나는 바보 같은 생각에 휩싸인다. 양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둘러 공원 쪽으로 향해 아무도 없는 벤치에 앉았다. 쿵쿵 뛰는 내 마음을 진정시키려 한다.


'나 아직 괜찮지 않은 걸까?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마도 나는 아직 괜찮지 않았나 보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상처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험관 시술을 5번이나 거쳤고, 유산의 아픔을 3번이나 겪으며, 결국 나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받아들여야 했다. 너무 힘든 과정을 지냈기 때문에 결국 나와 남편은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딩크(DINK) 부부가 되었다.

뽀삐와 자주 가는 산책길. 파랑 초록 예쁜 색이 가득한 날.





애써 외면했던 나의 마음들이 갑자기 건드려지면 나는 기가 죽거나 의기소침해진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잘 이겨냈는데도 말이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란 것은 충분히 안다. 그저  내 안의 상처와 아픔이 나를 괴롭히는 것일 뿐이다.


현실이 나를 때렸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아이가 없는 삶, 선택적 딩크족, 뽀삐 엄마, 기약없는 주말 부부.

이 모든 수식어들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왜 나는 개모차를 끌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걸까?

내가 생각한 지금의 나이에 나의 모습과 나는 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지금은 편안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다 아이 없는 삶을 살게 된 것일까.?

나는 왜 뽀삐와 이렇게 꼭 끌어안으며 살고 있는 걸까?  

모든 것이 물음표로 나에게 되물었고 , 얽혀버린 감정들이 내 안에서 요동을 쳤다.


뽀삐와 개모차.


나는 고개를 돌려 눈물을 몰래 정돈한다. 그 순간, 개모차에 앉아 있는 뽀삐와 눈을 마주하게 된다. 뽀삐는 가끔 사람의 기운이 느껴질때가 있다. 괜히 20살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말없이 빤히 쳐다보며 한동안 나를 응시한다.뽀삐의 따뜻한 눈빛은 말하지 않아도 나를 위로해 준다.

그 순간, 뽀삐의 작은 존재가 나에게 큰 힘이 됨을 느낀다.


그래, 너가 있는데 내가 왜 쓸데없는 생각을 했을까


미안한 마음과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나는 뽀삐를 개모차에서 꺼내 안고 부드럽게 쓰다듬어본다. 뽀삐는 앙칼지게 ‘앙‘ 하고 만지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눈물이 쏙 들어가며 감동은 금세 끝이나 버렸다.  

그래도 그 순간은 뽀삐와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나는 뽀삐와 함께 낯선 이곳을 돌아다니며, 서로를 의지하고 지지해 주는 동반자가 되었다. 뽀삐는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때론 알아주는 존재이다.


아이가 없는 삶, 선택적 딩크맘으로서의 삶은 힘들고 외로울 수 있지만, 뽀삐와 함께하는시간은 나에게 큰 힘과 위로를 준다.


내가 원한것은 아니였지만 현재 내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분명 의미있는 나의 길이 있겠지.



‘뽀삐야 , 나는 괜찮아지겠지 -? ’





좋은 일만 생기길. 산책길에 우연히 찾게된 네잎클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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