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리 Feb 18. 2024

퇴근 후 19살 노견 육아가 시작된다.

안녕, 그리고 안녕.  ( Hello, and bye)  /  일곱 번째 이야기


(2022. 12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어느새 조급함으로 가득 찬다. 하루종일 혼자 있을  뽀삐 생각에 마음 한켠이 계속 신경이 쓰인다. 서둘러 퇴근 준비를 한다.  친구들과 오늘도 저녁 약속을 참여하지 못하고 집으로 향한다.

꼭 참석해야 하는 저녁 약속이 있을 땐, 일단 집으로 먼저 향한다. 일터와 집까지의 거리는 차로 30분 거리이다. 번거롭지만 뽀삐 밥을 챙겨주고 다시 서울로 나온다. 그래서 늘 약속장소에 늦게 도착을 한다.  그러다 보니 저녁 약속의 빈도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한 번쯤은 그냥 두어도 괜찮을 거란 생각도 하지만 나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아침부터 밤까지 늙은 노견을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은 반려인 입장에선 꽤나 쉽지 않은 일이다.



퇴근하자마자 혼자 지낸 뽀삐를 안아줍니다.



퇴근이 늦은 날일수록 현관 비번을 누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문 열림과 동시에 크게 이름을 부른다.

귀가 최근에 잘 들리지 않는 뽀삐는 크게 지르는 내 목소리를 듣고 쪼르르 현관으로 아픈 다리로 마중 나온다. 그 모습이 기특하다.

내가 없는 낮에 혼자 많이 짖고 울었는지 눈물 자국이 고스란히 진하게 남겨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었다. 강아지를 키우려면 가족이 많은 집이 강아지에게 훨씬 행복한 시간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많이 한다.  혼자 집에서 외로워하는 뽀삐를 위해서  퇴근 후에는 최대한  많은 시간을 곁에서 보내려고 노력한다.

내가 집에 오면  뽀삐는 항상  내 뒤를 졸졸졸 따라다닌다. 화장실에 가든, 주방에 가든 어디든지  내가 움직이는 곳으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껌딱지다.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럽다.  

혹시나  잠깐 눈앞에 내가 보이지 않을 땐 불안한 마음이 드는지  나를 찾으려고 모든 방안을 돌아다닌다. 그래도 못 찾았을 땐 앙 ! 소리를 내어 짖으며 나를 부른다.


'너도 혼자 있기 싫구나. '









자, 이제부터  노견육아 시작이다. 옷을 후딱 갈아입고  얼른 뽀삐 어르신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닭가슴살을 삶고 사료를 뜨거운 물에 불린다. 자기 밥을 준비하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밥그릇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시위를 한다.


‘앙앙앙! ’ (빨리빨리)


이빨이 없는 뽀삐는 사료를 씹어 먹을 수 없어서 딱딱한 사료가 불 때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뽀삐가 알리가 있나. 그저 빨리 눈앞에 주지 않으니 참다못해 내 발 밑까지 와서 다시 외친다.


‘앙앙앙! ’ (빨리빨리)


사람도 갓 지은 밥이 맛있듯이 뽀삐는 갓  지어진 (?) 밥을 허겁지겁 먹는다. 혀로 핥아서 촵촵촵 소리 까치내며 참 맛있게도 드신다. 쪼그만  얼굴을 밥그릇에 푹 담가서 먹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2kg의 이 작은 생명체가 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신기할 뿐이다. 습식 사료를 먹어서 온통 얼굴에는 으깬 닭가슴살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밥그릇 속으로 들어간 뽀삐.



‘맛있어? 그렇게 맛있어? ’


내 말을 알아듣는지 모르겠지만 뽀삐에게 말을 건넨다. 배가 부른 뽀삐는 나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듯하다. 노견이 밥을 잘 먹는건 생명의 연장과도 같아서 정성을 다해 밥을 먹인다.


밥을 먹이고 얼굴을 씻기고 치우고 나면 1시간이 금세 흐른다. 나도 아침부터 일하고 와선 쉬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하루 종일 혼자 집에 있었던 뽀삐는 나를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왕왕왕' (급해 급해)


이번에 짖는 소리는 밥 달라는 짖음과는 확연히 다르다. 눈치가  응가 타임이다. 이상하게 나랑 있으면 꼭 밖에 나가서 응가를 하자고 짖는다. 남편이 있을 땐 조용히 화장실 가서 해결하는데 말이다. 강형욱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다. 강아지도 사람을  가리는 건가요?

살짝 피곤이 몰라와 외면을 하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밖으로 나갈 때까지 짖는다.


'왕왕왕'  (급하다고! 급하다고!)

동동 거리는 발의 템포는 점점 빨리지고  소리는 점점 커진다.

아니, 19살 노견이 어떻게 이렇게 울림이 크지? 단전에서부터 나오는 소리의 울림이다.

뽀삐를 재빨리 안고 밖으로 나와  배변 스팟 지점에 내려놓는 순간, 정확하게 일처리를 했다. 정말 정확하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엉덩이를 감싼 내 손에는 큰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뽀삐는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편하게 산책 타임을 즐긴다. 킁킁 거리며 냄새도 맡고 가만히 서서 혼자만의 힐링 시간도 가진다. 다리가 아프니 오래 걷지도 뛰지도 못한다. 다른 강아지들과는 조금 다른 뽀삐만의 산책 시간이다. 나는 한 걸음 뒤에서 뽀삐를 기다린다.  그 시간을 차분히 기다려준다. 혼자만의 시간을 다 즐긴 뽀삐는 그제야 가자고 발걸음을 뗀다.  

노견이라  짧은 산책 시간이지만 나도 뽀삐 덕분에  잠시 머리를 식히며 마음의 정리를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을 우리는 쉬지 않고 산책을 나왔다.  너와 나만 아는 장소와 루틴까지 생긴 것을 보니  함께한 추억들이 많아졌다.  

언젠가 이 시간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까 봐 나는  동일한 장소에서  매 계절 뽀삐의 사진을 남긴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 내가 저녁을 먹을 시간은 이미 훌쩍 지나버렸다. 남편 없이 혼자 지낸 지 오래되다 보니 매일  저녁식사가 단순히 한 끼를 때우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러한 생활이  1년 정도 계속되면서 ,  어느 순간 냉장고에는  다양한 식재료들이 사라지고 인스턴트음식과  간단한 밀키트 음식으로 바뀌어 버렸다.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사실 그다지 즐겁지도 맛있지도 않다. 혼자서 잘해먹고 밖에서 혼밥을 즐기는 마인드가 아직은 어색하고 적응이 되진 않는다.
다행히도 새로  이사 온 곳 근처에  친한 지인 부부들과 친구가 살고 있어서 가끔 주말에  시간을 보내며 식사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한식 음식을 즐겨 요리했던 기억.



남편이 집에 올 때면,  제일 먼저 맛있는 거 사달라고 말을 했다. 고기를 사달라거나 뷔페를 먹자고 한다. 그동안 못 먹은걸 한꺼번에 해소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보여, 나는 혼자의 생활을 잘 즐기지 못하는 사람임을 종종 느낀다.

외부 시선에서는 커리어우먼, 일 잘하는 원장님, 인싸. 굉장히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다들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는 굉장히 의존적인 성향이 내면에 깊이 새겨져 있다. 굉장히 소심하고 낯가림도 많다.

곁에 누군가를 두고 의지하려는 성향이 심하고 혼자 있는 것을 결코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  결혼 전 혼자 살았던 긴 시간들의 힘든 순간의 경험들이 마음에 남아   가끔은 밥을 먹다가, 잠을 자다가  혼자의 공간에서 익숙함과 낯선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이번주에는 집에 오려나??

지방에 내려간 남편은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첫 번째 건물이 어느새  3층까지 올라갔다. 층이 올라갈수록 , 마무리가 되어갈수록  그는 바빠지고  어느 순간 연락도 뜸해지는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연락이 없다가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연락이 되기도 했다.  내가 언제 연락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왜 연락을 안 해?


바쁘잖아,

일하잖아 ,

피곤하니까.

그러면 네가 먼저 연락을 하면 되잖아.

내가 노는 것도 아니고..


만나질 못하다 보니 우리의 통화는 언제부터인가 서로의 불만이 담긴  짜증 섞인 말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전 06화 내가 유모차 대신 개모차를 사게 될 줄이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