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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Jan 31. 2024

아가씨,  혼자 살아요?

결혼은 했지만 혼자 살아요.

안녕, 그리고 안녕.  ( Hello, and bye)  /  다섯 번째 이야기.



이사를 온 곳에 그럭저럭 잘 적응 중이다. 남편은  정확한 기약이 없지만 짐을 싸서 부모님 댁으로  내려갔다.

집을 짓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공사 초반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오다가 조금 일이 많은 주에는 2주에 한 번씩 , 공사진행  감리까지 보고 있기도 해서 한 달 정도  못 온 적도 있었다.


남편은 집이 완성될 때까지 부모님 집 방 한 칸을 숙소로 잡고 생활을 한다.  일을 마치고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시간이 날 때는 같이 스크린 골프도 친다고 한다.  서울에 못 오는 주 주말에는 부모님과 근교에 외식을 하러도 나가곤 했다.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나에게 보낼 땐 기분이 참 묘했다.


‘그는 왜 거기에 있고 나는 왜 여기에 있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일 텐데 남편은 정말 시골 가서 살고 싶은 걸까? 지금까지 우리는 어딜 가도 붙어 다니는 부부였는데  왜 그는 굳이 거기서 살려고 할까?  

집의 형태가 점점 지어질수록 나는 기쁜 마음보다는 오히려 걱정스러운 마음과 그의 진짜 속마음이 궁금했다.

그래도 사진 속 그의 모습이 집에 있을 때 보단 훨씬 많이 웃고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그때는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나는 퇴근 후 하루종일 혼자서 집에 있을 뽀삐가 걱정이 되어 후다닥  집으로 달려간다. 역시나 뽀삐는 기다렸다는 듯이 현관 앞에서 나를 마주한다.

화가 잔뜩 난 얼굴이다. 혼자 있는 낮 시간에 자다 일어나서 엄청 짖은 티가 눈가의 눈물자국을 보면 대충 알 수 있었다.  원망의 눈빛과 삐진 티를  팍팍 내며 밥그릇 앞에선다. 나에게 일단 밥부터 달라고 왕왕 짖는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뽀삐 밥을 준비한다. 노견이라  뽀삐 밥을 제조(?)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루종일 배고팠던지 허겁지겁 머리를 밥그릇에 담그고 밥을 핥아먹는다. 이빨이 없다 보니 혀로만 핥아야 밥을  먹을 수 있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불쌍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뽀삐 밥을 먹이고 치우고  그제야 옷을 갈아입고 나도 대충 저녁밥을 챙겨 먹는다. 뽀삐 저녁을 챙겨줘야 해서 저녁시간은 약속을 잡지 못하고 집으로 곧장 오기 때문에 거의 혼자 저녁을 먹는다.

변화된 저녁시간의 모습이다.


남편이 있을 땐 지인들과 저녁 식사 자리도 많았고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았는데  지금은 저녁은 어쩔 수 없이 거의 뽀삐와 둘이 지내는 시간으로 점점 변해갔다. 가끔은 뽀삐 저녁을 챙겨주고 다시 나갔다가 오기도 했지만 또 혼자 남겨 두고 나오면 뽀삐가 계속 마음이 쓰여서 점점 그런 시간들을 줄이게 되었다.

가끔은 누가 집에 있으면 뽀삐가 조금 덜 외로울 거고 나도 편하게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남편이 내려가고 분리불안 증상이 심해진 뽀삐 때문에 나는 안방 침대 대신 작업방에서 바닥에 이불을 깔고 뽀삐와 함께 자기 시작했다. 내가 옆에서 자면  꼭 내 옆에 붙어서 잠드는 뽀삐가 귀엽기도 하고 나 역시도  뽀삐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조그만 아이가 하루의 지친 나에게  작지만 큰 위로가 되었다.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작은 할아버지 뽀삐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준다.






 눈을 뜨고 마주한 아침이 점점 낯설지 않다. 무서워서 틀어놓고 잔 티브이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아침 해가 뜨는 풍경을 보기 위해 창가에  앉아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한다. 마음이 한없이 차분해진다.  시간별로 변하는 아름다운 뷰를 보며 명상의 시간도 가진다. 이렇게 나만의 고요하고 행복한 시간을 가지게 될 줄 생각도 못했다. 참 잘했다 이사오길.


매일 홀리듯 들리게 되는 맛있는 커피집도 찾았다. 소개받은 맛집도 많아서 하나씩 도장 깨기를 하고 있다.  쉬는 날 쉬는 것 같아서 마음의 여유도 생겨났다.


그중에 이사 와서 제일 좋은 것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집 근처에 공원이 많다는 것이다. 봄 여름엔 온통 초록색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코끝에 닿는 냄새가 좋아 밥 먹고 자연스레 산책을 하게 된다. 혼자서 가볍게 산책을 하기도 하고  호수공원으로 운동을 하러 가기도 한다. 근처의  길도 이제 어느 정도 익혀서 뽀삐를 데리고  함께 나가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밖을 나가면 주변이 강아지 세상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안에 있는 공원에도, 집 주변의 곳곳의 공원에서도 온갖 종류의 새로운 강아지들을 만난다. 보호자와 산책하는 강아지, 공놀이하는 강아지, 개모차에 타서 드라이브하는 강아지,  견주들의 얼굴도 밝다.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다. 서울에 살 땐 몰랐던 평화로움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여긴  내가 지내기에도 강아지를 키우기에 정말 적절한 환경이다.



봄여름가을겨울 낮과밤으로 너와 함께한 시간들



   뽀삐와 나는 예전에 자주 할 수 없었던 매일 공원 산책이란 루틴이 생겼다. 집 앞만 나오면 초록초록 풀들이 많아서 냄새 맡기도 좋고 배변활동을 하기도 좋아 뽀삐는 밖을 나가자는 신호를 준다.

이사오기 전 동네에선 뽀삐 산책은  이른 새벽, 밤늦은 시간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주로 했었다.


 목디스크가 있어서  목줄을 할 수가 없어서  밖을 데리고 나오기가 너무나도 조심스러웠다.  가방에 놓거나 안아서 데리고 나왔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두리번두리번 눈치를 살피다 잠깐 내려놓는다. 행여 사람들이 근처라도 오게 되면 바로 뽀삐를 안아버린다.


뽀삐가 다리가 아파서  뛸 수도  없고 이빨이 없는 노견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은  사정을  알 수 없으니 목줄 안 한 강아지면 너무 나도 당연히 싫을 것이다.

근데 여기서 참  신기한 일들을 겪는다. 뽀삐를 구석에 숨어서 잠시 풀냄새를 맡게 내려놓고  산책을 시키고 있으면 사람들이 오히려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말을 건다.


' 아기 강아지가 조금 아픈가 봐요. '

' 아니에요. 노견이에요. '

' 아, 자세히 보니 다리가 아픈가 봐요. 노견이구나 '


 사람들은 뽀삐가 아주 작은 소형견에 아기 강아지인 줄 알고 쳐다보다가 행동이 느리고  뛰지도 않고 천천히 걷는 걸 보고는 노견인지 그제야 알게 된다.  노견을 키워 본 견주들은 바로 뽀삐의 행동들을 보고 바로 노견임을 파악할 때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일부러 곁에 오기도 한다.

 

'19살이에요? 보호자님 잘 키워줘서 고마워요..'

'우리 00 이도 노견이었는데 작년에 무지개다리 건넜는데.. 갑자기 생각나네. '

' 뽀삐야,  오래오래 살아라 '


산책을 하며  길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건넨 말들이다. 참.. 희한했다. 서울에 살았을 때 견주들과 말을 섞어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 여기는 강아지를 많이 키우는 동네라 그런지 노견의 뽀삐에게 굉장의 호의적이다.

심지어 아기와 손잡고 뽀삐한테 다가오는 엄마 아빠들도 많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아가들이 근처에 오면 뽀삐를 품에 바로 안아 버리 고 노견이고 다리가 아프고 목디스가 심해 목줄을 못 했다고 빠르게 사정을 설명을 한다.  대부분 싫은 내색보단 자신의 아이에게 강아지의 상태를  설명해 주고 나에겐 힘내란 말을 하고 간다.


어쩌다 보니 뽀삐는 점점  우리 동네의 인기 스타견이 되었다. 19살의 노견이 주변에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귀여운 외모와 윤기 나는 황금털을 가진  뽀삐를 한번 본 사람들은 기억을 한다.

산책길에 한두 번 마주했던  견주들과 어느새 눈인사도 하고 가볍게  각자의 강아지들의 안부를 묻는다. 거의 대부분은 뽀삐의 근황과 건강을 묻는 경우가 더 많다.


 동네 세탁소 사장님, 상가 꽃집 언니, 편의점 어머님. 49층 사는 견주 여자분, 뽀삐와 함께  어디를 가도 뽀삐 덕분에 말문을 트게 되어 주민들과도  친분을 가지게 되었다.


낯선 곳에 이사 와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한두 명씩 천천히 동네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고마운 사람들. 반려견을 키운다는 이유로 서로를 위로하고  오고 가며 건네는  말속에서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평소같이 뽀삐와 저녁 산책을 하고 상가 앞을 지나다 담소를 나누고 있는 세탁소 사장님과 꽃집 사장님을 마주쳤다.


'어머 아가씨, 뽀삐 산책 갔다 오나 봐요. 뽀삐 안녕!

 근데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아가씨는 혼자 살아요? '

'아니에요.. 결혼했어요.'

' 진짜요?? 1년 동안 매일  뽀삐랑 다니길래  우린 혼자 사는 여자인 줄 알고 있었는데..'


순간,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말을 제대로 이어가진 못했다.

아.. 내가 이때까지 혼자 사는 미혼녀로 알고 있었나 보다. 얼마 전에 헬스클럽에서 만난 선생님도 그렇게 보셨던데.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나는 결혼하지 않은 아가씨로. 혼자 사는 여자로. 그들 눈에는  비추어졌나 보다.


그동안 나는 1년이란 시간 동안 이곳에서 남편과 함께한 시간보다 혼자인 시간이 더 많았나 보다.

결혼은 했지만 혼자 살고 있다.


근데, 나는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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