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 (2023) 후기. 2024/03/10 관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같이 관람한 사람으로부터 영화의 성경적 해석을 들었다. 아래 문단에 간단히 요약해 보겠다.
이 해석에서 '갓윈'은 '야훼', '벨라'는 '인간'이자 '이브', '덩컨'은 뱀이다. 벨라가 처음 간 여행지인 리스본에서는 1755년 성자 축일에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유럽의 '기독교적 낙관주의' 사상 붕괴의 단초가 되었다. 벨라가 타게 된 배는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를 떠올리게 한다. 배에서 잠시 내려 방문한 '알렉산드리아'는 가톨릭의 최초 교구들 중 하나이다. 파리에서 배우는 '사회주의' 사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 사상과 연관된다. 성장한 벨라가 '에덴'(갓윈의 집)으로 돌아오고,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위의 해석이 재미있어서 몇 자 더 적어보았다.
벨라는 임산부의 몸과, 그 임산부가 품고 있던 태아의 뇌가 합쳐져 있다. 성경의 삼위일체 개념이 연상되는 설정이다. 성령의 요소에 대응되는 것은 두 이질적 요소가 합쳐져 탄생한 벨라라는 새로운 인격이다. 성행위는 선악과의 속성과 연결된다. 다만 영화에서는 원죄로서의 속성이 아닌 선악과를 통해 얻게 되는 앎에 집중한다. 창세기에서 선악과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라 묘사된다. 성이 주는 쾌락을 알게 된 벨라가 갓윈의 집을 떠난 것은 에덴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킨다. 사과를 이용한 자위행위도 묘사돼 연결성을 강화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성행위를 죄악시하고 있지는 않다. 벨라는 쫓겨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발로 떠난 것이고(갓윈은 비상금까지 쥐어주었다), 파리에서의 매춘도 맥스의 입을 빌어 인정한다. 전남편은 구시대적이고 부정적인 면모의 기독교를 연상시킨다. 우선 전남편은 벨라(혹은 벨라 어머니)의 과거와 연관된 인물이다. 성기를 제거하려 한 것은 할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그가 벨라를 규탄하는 것은 예수가 받은 핍박과 연결 지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그럼 벨라가 전남편의 뇌를 바꿔 끼운 게 꽤 묘해진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에게 구원이 없다는 메시지로 봐야 할까, 아니면 몸만이라도 살아서 갓윈 집에 있으니 구원을 받은 걸로 봐야 할까. 어느 쪽이든 사이비 같다.
쓰면서 느낀 건데 갓윈이 갓,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비롯해서 꽤 노골적인 성경 비유가 많다. 볼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하나씩 되짚어보니 보인다. 근데 맥스는 모르겠다. 성모 마리아의 정절을 믿어준다는 점에서 요셉과의 연관성을 보이나, 썩 잘 들어맞지는 않는다. 벨라(이브)와 결혼하고 갓윈의 집과 실험(에덴)을 돌본 아담 정도일까. 역시 썩 만족스러운 해석은 아니다. 얜 진짜 뭐지…?
이하 그밖에 든 생각들을 주저리 적어본다.
화면 예쁘다. 처음에 흑백에 화면 왜곡된 게 갓 태어난 아기의 시각이 발달 안 한 것과 관련 있는 걸까 했는데 컬러로 바뀐 이후에도 왜곡된 장면 나온 걸로 봐선 그냥 감독 취향 같다. 유람선에서 흑인 남자 나올 때 미감이 어색했다. AI 그림 질감 느낌 났다. 예고편에 그 장면이 한 컷 지나가는데 그걸로 다시 봐도 어색하다.
의상 예쁘다. 커다란 퍼프 소매가 벨라 의상에 계속 있는 게 인상적이다.
파리에서 사회주의자랑 하려나 했는데 진짜 했다. 파리에서 창관에서 일하는 게 레미제라블 팡틴이 생각났다. 성교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자꾸 나와서 야하다기보단 웃겼다. 참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일단 야하게 보이려는 의도 자체가 자위 장면 처음 나왔을 때 말고는 그다지 안 느껴졌다. 그런데 그 장면이 벨라가 신생아 뇌를 써서 만들어졌다는 장면 직후에 나온 거라 좀 놀랐다.
갓윈 뇌를 장군 몸에 끼울까 봐 걱정했는데 안 해서 다행이었다. 모든 것은 언젠가 죽는다고 말하며 갓윈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인데 억지로 살릴 거 같아서 긴장했었다. 특히 얼굴 때문에 다 날 괴물로 봤다고 할 때 '이제 새로운 몸으로 다른 삶을 살아보세요'하면서 몸 바꿀 것만 같았다.
제목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일단 자신이 가엽다고 말하는 벨라의 대사가 한 번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은 나름대로 가여운 구석이 있다. 아마 영화에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더라도, 가엽게 여겨질 만한 무언가가 인물 속 어느 한편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제목이 복수형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가엾이 여기고,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뜻인 걸까.
보고 나서 재미는 있었는데 왠지 엄청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아다리가 잘 안 맞아떨어지는 기분이다. 특히 결말. 이게 맞나…? 갑자기 노래 깔리면서 이런 해피엔딩 분위기로 끝내도 되는가…?
Poor Things
세 줄 요약: 기독교적 관점이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1대 1 대응은 무리이다.
화면이 예쁘다.
와! 어쨌든 해피엔딩...?
별점: ★★★★ (4/5)
재관람 의사: 집중해서 한 번 더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