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과정
친구들은 79년생이지만 나는 80년생이다.
1997년 11월 19일 수요일에 실시된 우리 세대 수능.제5차 교육과정 세대의 마지막 수능이다. 대부분의 1979년생, 빠른 1980년생과 n수생이 응시했다.
->내가 해당되었다.
빠른 80…
쉬운 수능 시대를 여는 첫 시험이었다
총점 400점 만점에
수탐1은 80점 만점이었다.
나는 물수능 세대이다.
수능 100일 남겨두고 친구와 독서실을 끊어서
정석만 파고 들었다.
담임에게도 미친**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왜 100일 남겨두고 그걸 공부하냐고..
담임선생님은 우리 옆집에 사셨는데,,,
츤데레 셨다.
사실 괴짜다.
나는 ,,100일 남겨두고 다른 친구들은 사탐 과탐
공부할때 수탐 1을 공부하다니;;;
욕을 그렇게 먹어가며 수능 일 당일!!
머리에 똑딱삔을 10개나 양쪽에 꽂아가며
수능을 치러갔다..
웬일인가???
집에와서 가채점을 하니 80점 만점에
72점 이다!!!
미쳤다리!!!
내 남동생은 이 시험지를 보고
“누나 돌았다!!!”라고 감격해했다.
하지만 엄마의 그 기는 못 꺾었다.
경주는 비평준화라 막내딸은 경주여고에
진학했는데 소중한 아들은
그렇게 원하던 경주고에 입학을 못하고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이게 한이 되었는지 나를 그렇게 미워하셨다.
난 담임께 서울 시립대 조경학과를 가고싶다 했다.
하지만 내 꿈은 엄마의 미친 아들사랑에 모든것이
산산히 밟혔다.
“서울대 아니면 가지마”
본인도 이건 말도 안되는 어거지인걸 알면서도
나에게 단호하게 대했다.
사실 인서울은 되지만 서울대는 아니잖아;;;;
그렇게 나는 끝까지 서울을 가겠다는
고집을 부린 그날
고막이 터지도록 맞았다..
그 다음날 보건 선생님께 찾아간날
그렇게 나를 잡고 울어주셨다.
차마 맞았다고는 말을 못하고 말이다…
교대를 간 친구가 나에게 그런말을 했다.
“왜 너는 나보다 수학성적도 잘나왔는데
대학을 그렇게 써?“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한이 맺혔다.
그냥 박차고 나갔어야 되는데…
그렇게 원하는대로 나는 아들의 그림자가 되어야했고 결혼도 본인들 마음대로 대학졸업하자마자
결혼시켜버리고…
그래서 한이 되었다..
아버지께 얼마전 이 말을 하였다.
“그 돈을 나에게 투자했으면 난 벌써 더 성공했을 꺼야”
그러자 아버지는 미안하다고 하신다.
아버지도 지은죄가 많으셔서 지금까지 말씀도 못하고 있었다.
지난간것 생각하면 뭐하겠어…
기껏 얻은것은 건물밖에 더있어…라고
내가 이야기했다.
아직도 악이 남아있어서 이야기를 했다.
자식 공동 배분이니 돌아가시면 꼭 상속 제기 할것이라고..
절대 넘어 가지 않는다고..
그래서 내 딸들에게는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다.
드디어 출국날짜가 잡혔다.
10월에..
딸이시험을 치러 가는데 같이 간다.
유학준비하는 딸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너가 하고 싶은 대로 훨훨 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