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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I Travel Jan 02. 2023

공부하기

러시아어로 무언갈 배우기

모스크바 대학의 예비학부는 독립된 건물이 아닌 큰 건물에 일정 부분을 사용하는 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도보로 3분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과와 문과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예비학부 근처에는 어느 건물 한 층에만 "ㅇㅇ대학 ㅇㅇ과" 이렇게 쓰여있는 걸 볼 수 있었는데 대학교가 한국의 학원처럼 건물의 일부분만 쓰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예비학부에 등록할 때 입학사정관은 학생의 관심과목을 묻는다. 예비학부이기에 특정한 전공과목이 아닌, 역사, 언어, 공학, 자연과학과 같이 큰 분류의 과목을 묻는데 이에 따라 1년간 수강하는 과목이 결정된다. 필자의 경우 자연과학을 선택했기에 러시아어 외에 수학과 물리를 수강했고, 아내의 경우 언어(러시아어-한국어 통번역)를 선택했기에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수강했다. 예비학부에선 매일 수업이 있고 "빠라"라고 부르는 1시간 35분의 러시아만의 수업시간 단위가 있는데 하루에 보통 네 빠라가 있으니 배우는 입장에선 꽤나 빡빡하고 학부모 입장이라면 가성비가 좋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당시 1년 학비가 5080불이었으니 보통의 32주 커리큘럼이 아닌 38주 교육, 매일 같이 가르치고 한 반에 많아야 6-7명이니(필자의 반에는 4명) 나쁘지 않다. 다만 제일 잘하는 반이더라도 시설의 목적 자체가 기초 러시아어를 가르쳐서 대학으로 올려 보내는 역할을 하니 고급 러시아어를 배우기엔 무리가 있다. 물론 본인 하는 것에 따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가능하나 보통의 학생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토르플 1급이라는 러시아어 시험이 최종 목표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수업은 러시아어이고 일주일에 두 빠라 수학, 두 빠라 물리를 들었다. 러시아어는 인쇄체와 필기체가 서로 다르기에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게다가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악필인데, 자신이 쓰고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이제 러시아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이해하기엔 언감생심(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없음)이다. 또한 동사가 주어의 상태(시제는 물론이고 인칭)에 따라 변하고 명사는 전치사와 수(단수, 복수), 성(남성, 중성, 여성)에 따라 다른 형태를 써야 하니 어느 언어나 배우는데 어려움이 있겠지만 러시아어도 쉽지 않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학은 더하기부터 배운다. 더하기라는 연산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1 더하기 1은 2"를 러시아어로 읽는 법을 배웠다. 기껏해야 로그랑 지수정도 배웠으니 1학기에는 수학적으로 힘든 게 없었다. 물론 이 생각도 잠시 2학기에는 미분과 적분, 고급 미적분까지 배우는데 더하기 곱하기 알려줄 때와 같은 속도로,


"자, 정적분은 이런 식으로 읽고 이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 (중략) 숙제는 ㅇㅇ 풀어오세요"


이렇게 말하는데 속도가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수학을 가르친다고 생각 안 하고 언어를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그런 것 같았는데, 졸업한 지도 꽤 되었고 편미분이니 고급 적분 방법 등은 배우지 않았는데, 수학으로 애를 먹으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러시아 수학에선 점(.)과 쉼표(,)가 역할이 바뀌어 있다. 12,345.6 이라는 숫자를 러시아에선 12.345,6으로 써야 한다. 막 엄청 헷갈리진 않았는데 가끔씩 아차 할 때가 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그런 듯 하지만 숫자 자체도 우리와는 조금 다르게 쓴다. 특히 아래의 사진과 같이 1, 4, 그리고 7은 조금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커리큘럼 자체에 물리는 수학보다 늦게 시작을 하게 되어있는데 첫 부분에서는 뉴턴물리학을 배웠다. 엘리베이터와 도르래, 비탈길, 마찰 등을 이용하여 물체가 받는 힘 등을 계산했는데 난이도가 쉽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도르래에 매달고 아래층 위층으로 옮기도 하고 쓸데없이 용수철을 두세 개 쓰면서 물체에 힘을 계산하라 하니 도통 정신이 없었다. 그 외에도 필자의 약한 부분인 전자기학도 배웠고 핵물리에 대해서도 아주 조금은 배울 수 있었다. 


언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공부하려 하니 언어도 공부해야 하고 특히나 그들의 사고(thinking)를 모르고는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1년 차 생활을 할 당시만 해도 받아들이기보단 거부하고 내가 이해 못 하는 것을 이상하다고 단정 짓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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