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를 기차역에 잘 내려주고 나는 나만의 일정 속으로 달려갔다. 임시 총회를 마친 후 점심을 가볍게 한 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시상식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박수를 보낼 때와는 사뭇 다른 박수받는 수상자가 되어 보니 그 무게감이 느껴지면서 뭔가 경건해지는 마음에 쑥스럽기도 했다. 무사히 시상식을 마치고 시상식에 꽃다발을 들고 먼 곳으로 달려와 준 고마운 친구와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친구가 알아본 바로는 이곳에 열대식물원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손을 잡고 바람에 날리는 방패연을 한동안 지켜보면서 어릴 적 추억담을 주고받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방패 꼬리가 살랑이면서 봄을 유혹하는 듯하다. 더 멀리! 더 높이! 마치 올림픽의 구호처럼 우리의 시선에서 멀어져 가는 연이 우리 둘만의 시간을 들고 달아나는 듯해 우리는 손을 힘주어 잡아본다.
식물원 입구에 다다르고 난 뒤 우린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럴 수가! 어찌 이리 매정할 수가 있나. 마감 시간이 3월은 다섯 시이나 한 시간 전에 입장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떡 하니 앞길을 가로막고 버티는 게 아닌가.
‘오늘은 토요일, 주말인데 좀 봐주면 안 되겠니? 우린 오랜만에 지음으로 회포를 푸는 중이란다. 이 흐름을 부디 깨진 말아주면 어떻겠니?’
키오스크는 인간이 아니라서 감수성에 호소해 보았지만 아무런 수확을 거둘 수가 없었다. 에잇.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마치 위대하신 도깨비님의 대사처럼 우리는 넓은 잔디밭을 걸으며 곤충관 외부를 둘러본다. 돌아서 텃밭이라고 명명한 작은 공간들이 옹기종기 몰려있는 텃밭지기인 토끼, 돼지, 사슴, 닭 조형물과 눈을 마주쳐 본다. 저 멀리 야생화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우리, 가볼까? 식물원이 안되면 야생화라도 건져 보자.
입구는 환히 열려 있다. 조심스럽게 들어가 본다. 와~~ 아~~, 가운데를 필두로 좌우로 야생화가 길게 늘어서 있다. 대박!! 우리의 입과 눈을 커졌다. 여긴 신세계다. 보지도 못한 야생화들이 잔뜩 앉아서 우릴 맞이하고 있다. 모과란다. 모과가 꽃이 피는가. 나는 천변에서 모과를 본 적이 있지만 꽃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처럼 고운 모과꽃이라니. 예뻐도 너무 예쁘잖아?
주인장이 나타났다.
우리의 소곤거림이 퍼졌나 보다. 주인장이 나타나셨다. 인사를 드리자마자 우리를 에스코트하듯 야생화를 설명해 준다. 그의 눈에서는 광채가 나고 얼굴에서는 야생화 부모로서 숨길 수 없는 뿌듯한 긍지가 뿜어져 나온다.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이 있다는 것은 이토록 빛나는구나. 이토록 숨길 수 없는 지식과 이야기가 끝도 없이 술술 나오는구나.
주인장은 우리에게 1촉에 삼십만 원에서 백만 원을 호가 하는 귀한 야생화를 따로 보여주었다. 그 귀한 꽃들의 설명을 듣노라고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아니다. 그 열정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는 말이 정답이다. 우리는 야생화를 전부 둘러보고 인사를 나눈 뒤 나왔다. 알고 보니 개점시간은 벌써 한참 지나 있었는데 주인장이 우리의 관심에 폐문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친구와 아쉬운 작별 포옹을 나누며 다음을 기약했다. 식물원에서 팽 당하고 야생화에서 환영받고 삶은 돌발 상황이 있기에 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탄생하는 것 같다. 친구와 나는 오늘 본 야생화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주인장의 빛나는 눈과 열정은 잊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나누며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처럼 빛을 발하는 이가 되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에 최선은 못하더라도 차선이라도 하자 서로를 응원했다.
시나브로 어둠이 사위를 점령하는 갈래에서 멀어지는 우리를 서로 엉겨있는 나무 가지들 사이에서 가로등이 지그시 배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