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출발
리더들의 독서모임 지원금을 받다
어서 와, 대표는 처음이지?
우리를 둘러싼 세계 안에서 시시때때로 자아와 세계가 불꽃이 튈 때가 있었다. 중학생이 된 나는 아싸를 자처했다. 입학식 때 전교생 대표로 선서했던 반장인 M은 글씨를 잘 쓴다는 이유 하나로 서기로 불도저처럼 날 임원으로 끌어올렸다. 말수도 없고 조용한 곳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던 나는 M 덕분에 인싸가 되었다.
학교란 세계가 조용한 사색의 그늘 안에 훅 치고 들어왔다. 멀었던 교무실이 친근하게 다가왔고, 말 시킬까 무서운 담임까지도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해졌다. 여름방학이 채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던 시점에서 갑작스러운 담임의 호출이 떨어졌다. 머릿속에서 난리가 났다. 뭘까?
학생교육도서관에 강제 출근하게 되었다. 방학 동안 평일 아침 아홉 시까지 가서 책을 한 권씩 읽은 다음 거기서 제시하는 독후 활동하고 귀가하는 프로그램에 보무도 당당하게 학교 대표로 담임이 추천한 것이다. 평소 책을 읽는 모습을 눈여겨본 것이리라.
솜털 뽀송했던 중학생 시절이 꿈결처럼 지나간다. 어쩌면 그때와 지금이 교차하며 바통 터치하는 듯하다. 글을 쓰면서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이것이 최선인가. 그렇게 독서를 즐겼던 십 대와는 달리 성인이 된 후로 오랫동안 양서보다 금서에 심취해서인지 스스로 불만스럽다. 실상은 없고 잡스러우며 허상인 듯하다. 내 안을 퍼냈으니 이젠 담아야 할 때가 임박한 것이리라.
결심이 굳건하면 실행 지수가 높다. 철학에 가까워진 순간 원했던 그 무엇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거창한 계획보다 허접한 계획일지라도 나는 요즘 바로 실행으로 옮긴다. 작년에 그리스 철학과 동양 철학 일부를 마쳤다. 워낙 한자와 담을 쌓은 지 오래 공부했어도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지만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당연히 쓰기에도 가물에 콩 나듯 도움이 될 것이다.
올해부터는 새로운 동양 철학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기존 철학 모임의 리더님들이 제안을 해왔다. 대표를 맡아 달라는 거다. 경험은 물론 연륜도 제일 미흡한 나다. 뭐 하나 나은 게 있다면 오직 하나 가장 어리다는 거다. 이 리더들이 모인 철학 모임에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던 차에 천재일우가 찾아왔다.
다른 건 몰라도 정보에서는 빠른 편이다. 검색을 자주 하는 편이고 블로그나 인스타, 카페 활동에서 얻은 자료나 데이터가 많은 도움이 된다. 소개서와 계획서 등 서류 작성을 고민하다 뒤늦게 제출한 작년 결국 탈락했다. 리더들에게는 선정되면 알려주려 했기에 이런 사실을 함구했다.
공모 지원했던 사업자 측에서 메일로 정보를 제공해 왔다. 올해 관심이 있다면 지원해 보라는 안내였다. 무슨 129? 이것은 당첨 확률이 높은 복권이 아닌가. 안 하면 바보, 지원하지 않으면 후회막심이 뻔하다.
리더들의 모임 대표로서 나는 경이로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지원 선정된 사실을 알렸다. 앞으로 우리 모임은 모 회사의 지원금을 받아 보다 더 쾌적한 환경에서 더 즐거운 마음으로 열린 사고로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되었다. 리더들의 대표는 처음이지만 설렘을 가득 품고 새봄부터 새로운 모임의 역사를 만들어갈 것이다.
처음은 막연하고 부담이지만 새로운 페이지를 펼 수가 있다. 기존대로 침을 묻히거나 멋스러운 골무를 검지에 끼고 넘기거나 아니면 기존의 방식에 새로움을 덧대거나, 처음은 단발성이지만 그 경험은 오래 남는다. 리더들의 대표로서 올해를 축복해 준 지원사업으로 긴장을 풀고 시작할 수 있어 한 뼘 고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