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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후 Mar 11. 2024

어른은 처음이라

떨리는 새봄 입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시대를 앞선 운동을 펼쳤던 도의 예산이 축소되었나 봅니다. 그동안은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던 지라 언감생심 넘볼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야 필수 자격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그 자랑스러운 기록의 역사를 변방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점점 축소되는 운동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다 나도 역사에 동참하고 싶은 욕심을 부려보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서류전형 기간이 점점 나를 포위하고 할까 말까, 내가 과연 자격이 되는 걸까 의심합니다. 응시가 가능하다면 충분한 것이라 스스로 위로하다가 문득 전에 어떤 책에서 읽었던 글귀가 훅 치고 들어옵니다. 저지르고 후회했던 경험들보다 저지르지 않고 후회하는 것들에 대한 미련이 더 오래 더 크게 곱씹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했다면 일단 저지르고 보라는 조언도 생각났습니다.


두드려라, 그럼 열릴 것이다. 알리바바의 개문을 위한 주문이 슬그머니 어른거립니다. 잘할 수 있는가의 의문은 합격한 이후에 다가올 문제입니다. 합격하지 못한다면 쓸모도 없을 설레발일 겁니다. 그래, 결심했어! 사족을 거의 뺀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작성합니다.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주차에 해당하는 것들도 채워 넣습니다. 이메일을 엽니다. 작성한 서류를 모두 첨부하여 빠진 것이 없나 체크 한 다음 전송합니다. 이제 제 손을 떠나 기관의 선택만을 기다리면 됩니다.


발표날이 다가왔습니다. 이메일을 열어봅니다. 오, 서류전형은 고맙게도 일단 통과했습니다. 다음 전형이 남아 있네요. 면접입니다. 얼마만의 면접인지 까마득합니다. 가장 최근의 면접은 언제였을까. 가만히 되짚어봅니다. 아, 거의 오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네요. 면접은 선택하는 것과 선택당하는 것입니다. 선택당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선택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내 일처럼 성실하게 거기가 더해 상상력도 동원해 일해 줄 사람을 뽑는 일입니다.


넓은 회의실에 안내자를 따라 입장합니다. 문을 조용히 닫고 인사를 한 다음 마이크가 있는 자리로 가 앉습니다. 거리가 좀 있는 반대편엔 나를 응시하는 세 명의 평가자가 앉아있습니다. 들어오기 전까지 담담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긴장 타기 시작하네요. 입술이 갑자기 물기를 찾습니다. 마음이 노출된 것일까요. 가운데 앉은 분이 긴장을 풀어주는 멘트를 시작하네요. 몸이 이완되기 시작했습니다. 앞 타임에 진행되었던 몇 분들의 면접시간은 거의 15분 여가 되었던 듯싶었습니다. 저는 한 6분이나 했을까요. 면접을 마쳤습니다.


마지막 질문의 답을 하긴 했는데 좀 횡설수설한 듯싶습니다만, 좋은 제도인 것은 분명하니 좀 어필을 나름 했습니다. 어쨌든 테스트를 마쳤기에 속이 후련합니다. 갑자기 커피가 마렵네요. 긴장이 풀렸다는 반증이겠지요. 앞서 마친 선생님에게 묻습니다.

“저랑 커피 한 잔 어떠세요?”

“좋죠. 요 앞 공예관 커피숍 좋은 곳 있는데 가시죠.”

커피 한 잔 놓고 우리는 사담으로 대기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합니다. 즐거운 주말의 오후가 저녁을 몰고 옵니다.


합격했습니다. 일단은 기쁨에 취하다 슬슬 걱정이 드리워집니다.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은 많아도 다 큰 어른을 대상으로 교육한 적은 없다는 겁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좀 떨리네요. 당장 새봄인 3월 학기가 개강됩니다. 설렘 반 걱정 반 그런 묘한 상태입니다. 누구든 처음은 있는 거니까,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처음에는 떨렸지만 할 수 있었잖아, 넌 할 수 있어. 저를 토닥토닥해 줍니다. 처음이란 그래서 기억이 오래가는가 봅니다. 그 떨림, 잘 숨기고 자연스럽게 해 보려 합니다. 삼백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사회를 본 적도 있는데 난 잘할 수 있어. 불끈 주먹을 쥐어 봅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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