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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후 Jun 03. 2024

흑기사의 페르소나를 들쳐봅니다

단점이 더 매력적인 흔치 않은 사람입니다

첫눈에 알아봤습니다. 우린 서로 잘 통하리라는 것을. 내가 상처받을까 걱정하고 있을 때 나는 그분을 염려하곤 했습니다. 여리다면 여리다 할 외모를 미루어 짐작해서 소소한 일상에서 조금은 날 선 말들이 오가는 합평 시간과 가감 없이 발화가 허공에서 타오르는 현장에서 갓 들어온 절, 그분은 날에 베일까 불면 날아갈까 노심초사했다는군요.

어쩐지 병아리를 싸고도는 어미 닭인 것처럼 절 늘 곁에 끼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야수들을 물리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의외로 보기보다 저는 약해 빠지진 않았답니다. 보통 사람들은 말합니다. 정신력이 강하다고. 맞습니다. 저는 흔치 않은 MBTI 성격유형에 속하는 조금은 특별한 군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왜냐고요? 대학교에서 교수님 지도하에 성격유형과 애니어그램을 검사한 적이 있습니다. 애니어그램은 거의 기억나지 않고, 위의 것이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유일무이 저 혼자만 해당되어 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동기들은 속도 모르고 맞다, 맞다며  손바닥을 마주치기도 합니다. 이내 수긍했습니다. 어쩔까요. 결과가 그렇다는데요. 끄덕이지 않으면 조목조목 따질 수도 없는데요.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이분도 독특한 이 유형에 속하지 않을까 지극히 합리적 의심을 해 봅니다. 가끔 예전의 저의 모습이 이 분의 행동에 겹쳐 보일 때면, 오히려 제가 저러면 안 되는데, 이럴 땐 가만히 계시는 것이 상책인데, 아 어쩔까. 말할까 말까. 관조냐 수호대냐 그것이 문제구나. 저를 유난히도 아끼는 이분을 오히려 제가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저요? 웬만해선 상처받지 않습니다. 이전과는 다릅니다. 저 지금은 단단해졌거든요. 이런 절 모르는 그분은 당신보다 절 지키려 하시니 얼마나 가슴이 벌렁대고 조마한 일입니까.

그래서 제가 나섰습니다. 관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지키는 게 좋아하는 이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요. 좋아한다면서 그 사람이 짓밟힐지도 모를 상황을 방관하고 , 무기에 찔려 아프게 하고, 억울하게 미움받게 방치하면서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정전기 같은 음심을 버리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이가 열심히 살고, 열과 성을 다해 진심으로 다가와 뭐라도 하나 알려주고 뭐라도 한 입 넣어주는데 어찌 가만히 앉아 강 건너 구경할까요.


그분은 뛰어난 정원사이자 동식물을 아끼는 자연 친화적인 장미의 전사입니다. 한겨울 폭설에 손발이 꽁꽁 얼 줄 알면서도 길냥이의 안위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벼랑에 세우는 사람입니다. 장미를 지키기 위해 파상풍이 걸려 아플 걸 알면서도 기어이 장미 가시에 손가락을 눈 질끈 감고 내어주는 정의의 사도입니다.


불편한 정의를 모두 눈감고 귀가 먼 듯 모른 척합니다. 왜냐고요? 당신들의 이득이 걸려있으니까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어물쩍 넘어가면 뒤를 잇는 후배는 설 곳이 없습니다. 당신의 빛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가만히 앉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저 보위는 따 논 당상인데,  움직입니다. 후배가 불합리한 제도에 원탁의 검을 빼 들고서 휘두릅니다. 후배는 알만한 사람은 압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제자리를 겨우 찾은 것을.


그분은 당신이 일군 텃밭에서 외부의 힘에 의해 유배를 떠납니다. 보내는 사람은 가슴이 찢어지는데 당신은 웃으며 손을 흔듭니다. 그 사람순순히 갔지만 돌아올 때는 떠난 사람이 아닙니다. 거친 황무지를 개척한 더 큰 사람이 되어 복귀합니다. 오히려 기존의 밭은 지금 자갈이 무성합니다. 이름도 품종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씨앗들이 땅속에서 아우성들입니다. 저마다 먼저 올라오려고 난리입니다. 규칙도 없고 분별도 없습니다. 땅속은 지금 언제 푹 꺼질지 모를  싱크홀 같습니다.


그분은 평화롭습니다. 앎에서 더 성장한 지혜가 빛나는 얼굴로 절 바라봅니다. 오늘 먹거리를 한가득 받았습니다. 살이 오릅니다. 건강한 근육이 살고 지방은 죽은 몸으로 태어납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이유는 없다고요? 저는 이유가 너무 많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분은 장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장점보다 단점이 더 좋은 사람입니다. 그 단점이 S극을 만난 N극처럼    강하게 끌어당깁니다. 자기장이 점점 세력을 넓히고 있습니다. 감싸는 자기장의 전류가 워낙 센지라 덕분에  저까지 빛을 바라봅니다. 참 고맙습니다.

새벽부터 아침을 먹는 시간까지 텃밭과 정원을 가꿉니다. 아침을 들고 나면 점심 전까지 공부합니다. 공부의 분야는 철학, 문학, 역사를 비롯한 문사철이 주식이나 가끔은 부식을 드시기도 합니다.


오후는 어떨까요. 십 대를 가르칩니다. 영어면 영어, 수학이면 수학 문과와 이과를 아우릅니다. 수학에 약한 저는 감탄합니다. 좋아할 수밖에 없는 열정으로 사춘기인 아이들과 예민한 수험생을 몰고 다닙니다. 저녁에는 어떨까요. 밤이면 창작의 불꽃을 태웁니다. 본받고 싶은 에너지가 무궁무진합니다.


아무리 써도 지속이 가능한 ESG가 기업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저는 ESG 않습니다. 빨리 소진되는 에너지로 충천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적당한 속도로 유유자적하게 그러나 쉬지는 않고 나아갑니다. 좋아하는 그분과 너무 멀어지면  속상할 테니까요. 동행하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이 함께 하앞길이 장거리여도 단거리처럼 짧게 다다를 수 있습니다. 공동의 목적지까지 서로를 지키고 서로 성장하면서 천천히 먼 길을  떠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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