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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후 Jul 13. 2024

마르지 않는 샘

두 번째 샘물 한 바가지를 꿀떡꿀떡 마셨습니다.

여운의 꼬리가 긴

반전의 폭소 혹은 탄식 사이에서

올려본 하늘

      


 몰아치는 것은 광풍이나 모래 폭풍 혹은 아랄해 소금 폭풍만이 아니다. 여기 휘몰아치는 글을 쓰는 마력을 가진 한 사나이가 있다.


그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브런치 크리에이터, 가족들과 끈끈하거나 혹은 뒹구는 방문을 잠근 적이 없는 한 가장이자 나의 도반이기도 하다. 그가 무려 여섯 번째 책을 출간했다.


 이번에 출판한 책은 두 번째 스마트 소설 모음인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위문편지이다. 솔직한 개인적 취향을 밝히자면 첫 번째 소설책보다 이번 책이 몰입도가 더 컸다. 그렇기에 가장 바쁜 수요일 한밤중에 받은 소설을 다음 날부터 짬짬이 바쁜 와중에 읽어 이틀 만에 완독에 이를 수 있었다.


 글을 읽다 보면 글쓴이의 생각과 태도와 자세가 엿보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글과 작가의 갭이 커서 실망한 사례가 있기도 했다. 일례로 모 작가님의 책을 평소 친분이 있는 작가가 부러 사서 포장까지 정성 어린 편지와 보내준 책 두 권을 빠르게 읽은 적이 있다.


 우린 입을 모아 읽은 문장을 공유하고 침을 튀겨가며 글에 열광했다. 일을 벌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날 먼 곳까지 부러 가게 만든 것은 순전히 모터 추진력을 자랑하는 작가의 장악력이었다. 우리는 글로 만나 어쩌면 문장이란 환상을 글쓴이를 포장했는지도 모른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이 책에서 글귀로 언급한 것처럼 행동은 글과는 다른 면모를 오감으로 느꼈던 그때가 떠오른다.


 하나 글과 결이 같은 작가를 실제로 대면하면 어떨까. 팬심은 펜심으로 더 크게 공명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겠다. 정이흔 작가는 글이란 이상과 평소 모습이란 현실의 괴리가 가깝다는 평을 감히 하고 싶다. 왜냐하면 작가를 나는 세 번에 걸쳐 만남을 이었고, 부러웠던 가족들과의 관계를 눈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며 동경을 품었으며 전화나 톡으로 아는 정보나 지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정이흔 소설가의 이번 <위문편지>로 동명의 표제작을 먼저 언급하자면 나는 위문편지를 쓴 적이 꽤 있다. 자찬하자면 답장은 거의 받았다. 모 군인 아저씨가 오빠 동생하자며 편지를 보냈는데, 할머니가 편지를 읽으시곤 “사촌오빠 많은데, 뭔 오빠고? 답장 보내지 말아라.” 하신 말씀이 귀를 때렸다. 향수 돋는 스마트한 소설을 몇 편 언급해 보자면, 푸시맨, 데자뷔, 상담자와 내담자, 가을의 시작, 아랫집 수난사, 등단 등이다.


 반전의 묘미로 무릎을 탁,  “오호~”를 발산하며 빙그레 웃은 몇 편 또한 언급하자면 지각 소동, 첫사랑이었을까?, 눈발, 간접 경험, 소외, 강박증, 신념 등이다.


 하나 정이흔 소설가의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한때 읽은 적 있는 반전 동화들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백설 공주>는 <뱃살 공주>로 반전이 일어난다.   

  

 갑작스러운 선생님 말씀에 나는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교실 풍경이 갑자기 내 방안의 모습으로 바뀌면서 벽에 걸린 시계가 열 시를 가리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러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_ <지각 소동 > 부분     


  마지막 부분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선생님의 제자를 품는 사제 간 정으로 드디어 지각을 면했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으나, 독자를 후려치는 반전이 세수를 부른다. 냉수 먹고 속 차리라는 듯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암시라도 하는 듯이. 나는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갸웃하다. 세수하러 들어간 시간대가 혹시 자기 전은 아닐까. 작가의 의도에 낚인 나는 여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스승의 사랑은 제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걸 멈추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너, 맞지? 예전에 그, 내 방 앞에서 항상 어정거리던 그 꼬마 맞지?
그때는 왜 그렇게 졸졸 따라다녔던 거니?

누나는 그 시절 내가 방문 앞에서 어정거린 모습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_ <첫사랑이었을까?> 부분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아련하다. 어쩌면 마지막은 영원한 노스탤지어일지도 모르겠다. ’첫‘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라서 조심스러우며 서툴지만 순수하고 티가 하나 없다. 그러한 소년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남기는 누나는 소년의 첫사랑을 받기엔 소년의 마음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어떻게 말했을까를 생각했다. 적어도 누나처럼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반복되는 일상은 때로는 권태롭거나 지루하기도 하다. 그래서 행복감을 항시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비가 온 뒤라야 햇살이 고맙고, 가문 뒤라야 비가 감사하듯 평범한 사람인지라 있는 것에 늘 감사함을 자주 잊는다. 그런 면에서 정이흔 소설가의 일상에서 감사함을 잊는 뇌의 착각을 후려치는 죽비 같은 반전이 기막히게 좋은 건지도.

    

다가온 그녀가 입을 열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아저씨! 저기 저, 바지 앞자락이 열려서 속옷이 다 보여요.”
 _ <간접 경험> 부분     

 다시, ’나‘라면 그저 “아저씨, 남대문 열렸어요,” 하거나 못 본 척 허공으로 눈을 씻어냈을 거라면서 빙그레 웃고 지나간다.     


 이 소설집에서 씁쓸하거나 각성하거나 뭉클한 몇 편을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그러고 보면 진수가 동네 사람들을 떠났던 것이 아니라,
 _ <소외> 부분     
누군가 도란거리는 말소리에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눈을 뜬 그녀의 귀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_<강박증> 부분     
갑자기 자기가 변화시킨 그의 일상에 대한 약효가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한 분석이 사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_<신념> 부분     
그러다가 드디어 속으로 삭이고 있던 울화통이 터져버렸다. 뒤늦게 자격시험공부를 하던 그는 거의 이 주일을 내내 뛰는 윗집 아이에게 분노하고 말았다. 결국 그는
_<아랫집 수난사> 부분     
그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조용히 일어나서 밖을 나온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_<자식 자랑> 부분     

 이 밖에도 <어느 봄날의 기억>은 꼭, 기억해야 할 작품임이 분명하다고 느껴졌다.


마르지 않는 샘을 지닌 것은 복이요, 작가의 노력의 산물일 것이다. 더해 더 깊이 있는 시선과 경험, 그리고 사색으로 또 다른 작품으로 만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이흔 작가의 두 번째 스마트 소설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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