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다큐=최정철 칼럼니스트] 이 땅에서 행해지는 축제는 크게 문화관광형 축제, 특산물 판촉형 축제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 시행되는 축제 물량은, 이름 있는 축제만 추리면 대략 1천여 개, 고만고만한 축제들까지 포함하면 많게는 약 2천 개 정도에 이른다.
무용수들의 선정적인 의상 차림은 성폭력으로부터의 해방, 성평등을 주장하는 코드이다. 사진출처=rio-carnival.net
2만여 개 축제의 나라 필리핀, 30만여 개 마쯔리의 나라 일본 등과 비교하면 퍽 초라하다. 물량 적다고 위축될 것 없다 자위할 수 있을 것이나, 안쓰럽게도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축제는 낙후된 수준에서 헤매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부분의 축제가 관제 축제로 만들어지다 보니 그렇다. 한국의 관제 축제는 예산만 지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축제 구성과 운영 전반까지 축제 전문가인 총감독 대신 담당 공무원들이 지휘한다. 예산 지원과 함께 공무원이 총감독 되어 축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대한민국 관제 축제의 기본 틀이다.
선출직들의 지루하게 이어지는 축사 릴레이로 축제 시작부터 진을 빼는 개막식, 인기 트로트 가수의 축하 공연이 없으면 안 되는 개막식, 주민 단체 동원으로 객석을 채우는 개막식, 그런 개막식이 끝나면 축제장 여기저기에서 펼쳐지는 프로그램들은 또 어떤가?
축제 주제와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의미도 없는 그렇고 그런 자잘한 체험 프로그램들과 소품 공연. 전국 축제장마다 출몰하는 ‘현대판 장돌뱅이 노점상 집단’의 비위생 음식 바가지 장사 행위. 노점상 집단과 행동을 같이하는 저질 품바 각설이의 음담패설 범벅의 난잡 천박 공연. 축제 기간 내내 축제장 일대를 소음으로 흔들어 놓는 지역 가수들의 저급 트로트 공연······.
리우 삼바 카니발. 사진출처=riocarnaval.org
공무원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다른 지역에서 하는 것만큼만 하면 된다는 무사안일에 젖어 있다. 그 무사안일은 이웃 지역 것 베끼기로 직결되었고, 그 결과 전국 어느 축제를 봐도 기가 찰 정도로 서로 판박이인지라, 외지 사람들은 어떤 축제가 되어도 심드렁해 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 지역 축제들이 한결같이 수준 낮고 어느 축제든 붕어빵 되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은 ‘영혼 없는 관제 축제’이기 때문이다.
관제 축제의 아주 심각한 폐단이 또 있다. 축제와의 연관성에 있어서 그저 관전자 입장에만 머물 뿐인 지역주민들. 유독 한국 축제에서만 확연하게 드러나는 특이한 현상으로, 자기네 고장에서 열리는 축제에의 주인의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 주민들이 자원봉사 참여로 ‘주민 참여’의 구색을 조금은 갖추어보기도 하나, 대부분 참여도가 저조하고 때로는 사례금을 대가로 이루어지는 것도 있다. 한국 축제의 고질적인 문제는 바로 이것이요, 수준 향상 보다 서둘러 개선할 것이 ‘지역주민의 축제 주인의식 정착’이다.
지구상 최고의 축제를 말할 때 단연 손꼽히는 축제가 브라질 리우 삼바 카니발이다. 이 축제는 국내외 관광객 백만 명 방문, 20억 달러 수익, 40만 명의 인력 고용 창출 등 엄청난 성과를 해마다 보장하고 있다.
삼바 학생들이 퍼레이드의 주인공이다. 사진출처=riocarnaval.org
2백 년 전 아프리카 앙골라 출신 흑인 노예들의 엔투르도(Entrudo 사순절 카니발)에서 발아되어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인 퍼레이드 형태의 축제로 성장한 리우 삼바 카니발. 이 축제의 핵심 요소는 시 정부의 일체 관여나 간섭 없이, 100% 주민이 직접 카니발 용품(대형 플로트 조형물, 의상, 소품 등등)을 만들고 출연까지 한다는 것이다.
사순절 직전인 2월 말에 행하는 단 1회 출연을 위해 그들은 1년을 준비한다. 리우데자네이루 시민들은 너나없이 카니발 참여에 인생을 걸 정도로 적극적이다. 카니발에 대한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애정, 자긍심은 카니발러(Carnivaler)들을 위한 전문 삼바학교의 탄생까지 만들었다.
1928년 리우데자네이로의 흑인 빈민가 에스타시오스데사 구역에 최초의 삼바학교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리우데자네이루에만 약 3백 개 정도의 삼바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삼바학교 학생들은 카니발의 기본 요소가 되는 셈바(Semba) 음악과 삼보(Smabo) 춤을 익히고 행사 용품들을 직접 만들면서 카니발을 준비한다. 진정한 주인의식으로 무장된, 완벽한 주민 주도형 축제의 결정체가 리우 삼바 카니발이다.
지역 축제의 첫째 성공 전략은 바로 현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미쳐(?) 날뛰도록’ 하는 것이다. 관의 간섭과 관여 없이, 현지 주민들이 주동하고 주민들이 직접 빚어내는 축제는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소문 들은 타지 사람들이 궁금해서라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찾아와 보니 현지 주민들이 ‘미쳐 날뛰는’ 것에 휩쓸려 함께 신명을 내게 된다. 그렇게 일상의 찌듦에서 벗어나 너나없이 진정한 일탈의 환희를 즐기는 축제. 그런 축제의 앞길에는 장미꽃만 깔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