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철 Jong Choi May 17. 2024

21세기형 ‘대동강 뱃놀이’ 한강 월하선유를 꿈꿔본다

#Stardoc.kr  최정철칼럼

[스타다큐=최정철 편집위원] 기원전 278년 음력 5월 5일, 그날은 마침 단오였다. 동정호로 흘러드는 멱라수(汨羅水) 강변에 홀로 수심 찬 표정의 사나이가 서 있었으니 굴원이다. 잠시 후 한 늙은 어부가 나타나 그에게 묻는다. “그대는 삼려대부인데 어찌하여 여기에 와 있는가?” 굴원 말하길, “온 세상이 모두 흐려 있는데 나만 홀로 맑고, 뭇사람들 모두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있습니다.” 어부는 냉정하게 말한다. “성인은 사물에 얽매임이 없으니 세상사 흘러가는 대로 그도 따라 흐를 뿐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흐려 있다면 흙 펄 속에서 함께 뒹굴며 풍파를 일으키지 않는다. 모두가 취해 있다면 술지게미 배불리 먹고 변변찮은 술이나마 실컷 마신다. 그런데 어찌하여 홀로 깊이 생각하고 고상하게 굴어 스스로 쫓겨난 것인가?” 굴원은 분연히 대답한다. “듣자 하니 새로 머리 감은 이는 갓 먼지 털어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이는 옷을 털어 입는다 했습니다. 어찌 이 깨끗한 몸으로 저 더러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강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어찌 희고 깨끗한 내 몸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쓴단 말입니까?”



김홍도의 ‘월야선유도’. 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어부는 빙그레 웃음을 머금은 채 이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 이런 대화가 있었던 후 굴원은 멱라수에 뛰어들어 세상과 고별한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이 되면 ‘투엔응(Tuen Ng. 단오절) 축제’로 불리는 용선(龍船) 축제가 홍콩의 핫 플레이스인 빅토리아 하버에서 개최된다. 이 용선 축제는 2천 3백 년 전 스스로 목숨 끊은 굴원에서 기인한다.



마을 사람들은 굴원의 죽음을 슬퍼하며 시신이나마 찾으려 강으로 나섰으나 끝내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물고기들에 의해 굴원의 시신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행위로 배 위에서 노로 수면을 치고 북을 두들기면서, 물고기들의 먹이로 쫑쯔(粽子. 대나무로 감싼 삼각 형태의 만두)를 던져주었다고 한다.


용두경도(龍舟競渡)에 나서는 용선들(사진출처=BBC)


그 이후 ‘쫑쯔’와 ‘배 몰기’가 장차 저네들의 단오절 풍속이 되었으니, 그중 배 몰기는 용주경도(龍舟競渡, 뱃머리와 꼬리를 용 모양으로 만든 배로 경주하기) 형태가 되어 오늘날의 용선 축제로 발전한 것이다.

용주경도는 조정경주와 흡사하다. 10m 정도 길이의 배에 20명~22명의 선수가 한 팀이 되어 승선해서 경주에 임한다. 용주들마다 선두에는 선도가 타고 앉아 호령과 함께 북을 두드리고 이에 각 팀원은 힘찬 노질로 각축을 벌인다. 그런 장쾌한 모습에 하버만 해변의 맥주 축제를 즐기는 관광객들은 연신 환호로 응원해 준다.


오늘날 이 땅에서 배를 활용한 수상 축제를 꼽자면, 목포 해양 축제, 화성시 뱃놀이 축제, 완도 장보고 축제 정도가 있다. 아쉽게도 역동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규모감도 떨어지고 시늉하기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강으로 눈길을 돌려야 하는데, 더 아쉽게도 강상 축제라 할 만한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저 강물이 얼면 그 위에 수천 개 구멍을 뚫어놓고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비린내 나는 물고기 축제들만 있을 뿐이다.


용선경주 선수들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맥주축제. 사진출처=홍콩관광청


‘한강 몽땅 축제’를 대표적 예로 삼을 수 있는 강변축제라는 것은 있다. 그러나 강변축제는 애초부터 물 위가 아니라 강변 공원 공간을 축제장으로 활용할 뿐이다. 따라서 강변 축제에서의 강은 멀리서 바라보는 관상용 공간으로만 머문다.


조선 시대에는 동래부사가 주도하는 동래해안 관병(觀兵) 뱃놀이가 화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지지만, 평양에서 감사가 지역 유지들과 함께 판을 벌여 즐기던 대동강 뱃놀이가 더 유명했다. 임진왜란 직전 이 뱃놀이에 초대받았던 명나라의 어느 사신이 “조선이 망할 날도 멀지 않았군.” 하며 개탄했을 정도로 대단한 장관이었다고 한다.

감사가 탄 넓은 주선(主船)에는 요란한 치장 복색의 기녀들이 이리저리 춤을 추고 음식으로 넘쳐나는 잔칫상이 배에 가득하다. 관현(管絃) 악공들의 풍악선(風樂船)과 재예 뽐내는 창우선(倡優船)은 주선 곁에서 여흥 판을 벌인다. 전후좌우로 수십 척의 호위선이 따르고 강변에는 백성들이 횃불을 든 채 강상 장관을 즐긴다. 김홍도가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로 전하고 있는 이 대동강 뱃놀이는 옛 중원의 송나라에서 즐겼던 수상 연희를 훨씬 능가할 정도의 규모다.


김홍도의 월야선유도(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그 대동강 월야선유는 옛일이 되었지만, 오늘날 한강에서 21세기형 ‘한강 월야선유’로 개발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강의 물을 소재로 하는 다양한 행사(뱃놀이 등)가 있을 것이고, 화려한 수상 퍼레이드를 마친 웅장한 선단은 첨단 기재의 수상 무대로 화하여 대규모 행사(공연, 멀티미디어 쇼, 불꽃놀이 등)를 펼쳐 보일 수 있다.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면 범국민축제로 꾸며 국민화합 의미를 챙기거나, 계절별 맞춤형 구성 행사로 운영하여 연중 관광객 창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강을 끼고 있는 해외 유명 도시와의 문화 교류도 가능하다. 한강이 장차 동아시아 물류의 허브가 되려면 이 정도 강상 축제 하나쯤은 보유해봄 직하지 않을까 싶다.



글=최정철 | 축제감독, 전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출처 : 스타다큐(https://www.stardoc.kr)

https://www.stardoc.kr/news/articleView.html?idxno=149

작가의 이전글 문화는 ‘달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행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