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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Jun 28. 2024

살면서 가끔은 탈을 써보자

#Stardoc.kr  최정철칼럼

이탈리아의 ‘수향 도시’(도시 한가운데에 물이 흐르는 도시) 베네치아에는 12세기부터 시행해 온 세계적인 축제가 있다. 1169년 베네치아가 인근 경쟁 도시국가 아퀼레이아와의 일전에서 승리한 후 벌인 잔치에서 기원한 축제로, 지금은 해마다 3백만 명의 외래 방문객이 찾는 베네치아 카니발이 그것이다.


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은 ‘마리아 축제’와 ‘천사 강림’이다. 마리아로 뽑힌 12명의 어린 여인들에게 전통의상을 입혀서 산 피에스트로 대성당부터 산 마르코 광장까지 행진하게 한다. 이 행진 중에는 다양한 춤이 어우러져 축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된다. 12명의 마리아들이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마리아 축제’가 마쳐지면 이들 중에서 1명의 천사를 뽑는다.


베네치아 카니발의 대표 가면 Voto. 사진출처=venezia.net


그렇게 뽑힌 천사는 곧이어 산 마르코 광장 종탑에 올라가 지상으로 하강하는 ‘천사 강림’을 재연한다. 천사가 강림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세상의 평화를 기원한다. 이 두 프로그램은 다른 축제들에서 볼 수 없는 멋진 퍼포먼스이지만, 카니발에 강렬한 축제성을 부여하는 핵심 요소는 따로 있다.


베네치아 카니발의 천사강림 장면. 사진출처=venizia.ent


축제성은 세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 단순성, 신화성, 거대성이다. 베네치아 카니발에 강렬한 축제성을 부여하는 핵심 요소, 그것은 곧 가면이다. 사람들은 화려한 중세 의상과 함께 여러 가지 신비로운 가면을 쓴 채 베네치아 곳곳을 돌아다니며 중세의 환상을 누린다. 가면이라는 단순성과 환상이라는 신화성, 모든 사람이 중세로 돌아가 하나가 되는 거대성. 가면 하나로 축제성 세 가지가 모자람 없이 표출되는 것이다.


카니발에서 가면은 언제 왜 만들어져 쓰게 되었을까? 13세기 초 4차 십자군 원정대는 전쟁을 끝내고 귀환할 때 이슬람 여인들을 데리고 왔다. 계율을 따르고자 베일로 얼굴을 가린 이슬람 여인들. 이슬람 여인의 얼굴을 가린 그 베일을 신비롭게 보았던 베네치아 사람들. 그 반향이 카니발에의 가면 도입이었다.


중세의 환상이 펼쳐지는 베네치아 카니발. 사진출처=vinezia.net


또, 16세기에 들어 성행한 대중연극 ‘코메디아 델 아르테(Commedia Dell’arte)’에서 배우들 전원이 가면을 쓴 채 세상을 풍자한 것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렇게 가면으로 성한 카니발은 가면으로 탄압받기도 하였다. 1930년대 정권을 장악한 무솔리니는 사람들이 가면 쓰고 파쇼 정권을 풍자하며 비꼬는 행태를 곱게 볼 리 없었기에 전면 금지를 가한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가면 대신 탈이 있다. 한국인은 15개의 전승 탈놀이를 보유하고 있다. 국가 지정 중요문화재급만 놓고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함경도의 북청사자놀음, 황해도의 강령탈춤, 봉산탈춤, 은율탈춤, 해주탈춤, 서울의 송파산대놀이, 경기도의 양주별산대놀이, 강원도의 관노가면극, 경상도의 하회별신굿탈놀이, 수영야류, 동래야류, 가산오광대,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와 함께 지역 연고 없이 유랑하는 남사당놀이가 있다.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 장면. 사진출처=한국관광공사


한국의 탈놀이는 뛰어난 해학미와 예술성, 놀이성으로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한국인은 왜 탈놀이를 사랑했을까? 탈놀이에는 지배 계층과 외래 종교에 대한 저항 의식이 담겨있고, 가부장적 봉건 체제에의 과감한 비판이 활개를 치기 때문이다.


탈놀이에 등장하는 양반들은 늘 멍청하고 상것들에게 놀림만 받는다. 중들은 오입질에 맛 들여 난리 치다가 망신당하기 일쑤다. 가장에 버림받은 여인의 한은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 땅의 힘없는 민중들은 잠시나마라도 탈을 쓴 채 부조리하기만 한 사회체계에 보란 듯이 저항한 것이다. 서양의 가면과 한국의 탈은 이처럼 같은 속성을 갖는다.


양주별산대놀이의 탈들. 사진출처=전통문화포털


가면과 탈을 쓴다는 것. 본연을 찾는 행위다. 가면과 탈을 씀은 나를 버리고 제3의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던 ‘원래의 나’로 회귀하여 ‘원래의 나’가 품고 있는 본성을 세상에 뿌려대는 것이다. 존재의 가치, 존재의 미덕, 존재의 목적이 가면과 탈을 통해 빛을 내는 것이다. 가식과 조작, 폭력과 굴종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발휘해야 할 지혜는 살면서 가끔은 가면과 탈을 쓰는 것이다.



글=최정철 | 축제감독. 전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출처 : 스타다큐(https://www.stardoc.kr)

https://www.stardoc.kr/news/articleView.html?idxno=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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