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마를 일 없는 이름 앞에서
나의 고향은 전라남도 목포시이다.
유년기의 거의 모든 기억을 목포에 빚지고 있지만 내가 고향을 더 사랑하게 된 것은 성인이 된 이후이다.
상경 후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하면서 답사를 즐기다 보니 여러 사적지를 관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방학이면 고향에서 유달산을 오르고 구시가의 적산가옥, 고하도 등을 거닐며 숨은 이야기를 발견하기에 힘썼다.
어느 해 질 녘, 유달산 노적봉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걷다가 목포대교와 목포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온금동에 이르렀다.
온금동은 이 동네의 옛 이름인 ‘다순구미’의 한자식 표현이다. 다순구미는 ‘양지바른’ 지역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이다.
오래된 골목에는 낡은 것과 낡고 있는 것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질박한 모양새로 얽어져 있다.
그곳에는 사람이 없어도 사람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
다순구미라는 지명에 마음이 압도되었는지 몰라도 온기를 잔뜩 느끼며 걸었다.
다순구미의 조선내화 구 목포공장 근처에 놓인 평상에서 시간을 보내고 계신 할머니들은 젊은 날, 부둣가의 쩐내를 주워 입고서 그물에 난 구멍을 깁고 또 기웠다고 한다.
수백 근의 생선을 담고도 견딜 만한 묵직한 그물을 짜내는 동안 할머니들의 손에는 ‘징하게도 뻐신‘ 굳은살들이 산맥처럼 박혔다.
50년, 세월의 무두질에 갉히며 궁궐의 바닥을 장식하는 박석처럼 판판해져 버린 할머니들의 삶의 깊이를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으려나.
비 오는 날 경복궁 근정문 행각에서 바라본 풍광을 완성해 주는 것은 근정전의 웅장한 처마도, 어스름이 보이는 북악산의 위용도 아닌 박석을 타고 요란히 흐르는 빗물의 노닒이다.
맑은 날 근정전 앞 품계석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제멋대로 놓여서 각자의 방향으로 빛을 난반사하는 박석 덕분이다.
삶터에 놓인 아무개들의 바지런함에 대한 반대급부로 주어진 주름과 거친 손보다 더 쓸쓸한 감동이 있을까.
이제는 저물어가는 다순구미의 오늘에 ‘따수움’이 가득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