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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Apr 22. 2022

정년보장 회사를 박차고 나오기까지

극도의 안정지향적 인간의 인생 첫 일탈



위는 얼마 전 개인 SNS에 마지막 출근을 기념하며 작성한 퇴사 소감이다. 회사 동료들도 보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구구절절한 나의 얘기 또는 회사의 대처 등에 대해 열거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지만 참으면 독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쌓여만 가는 나의 화가 회사를 향하지 않도록, 어쩌면 익명일 수 있는 이 공간에서 내가 만 3년 넘게 다녔던 공공기관을 퇴사하게 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간단히 나의 살아온 배경을 말해보자면(진부한 얘기지만, 이 회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우선 나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고 첫째가 아픈 가정의 둘째로 태어났기 때문에,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자식이 되는 것이었다. 이 목표는 주위 어른들의 "네가 잘돼서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 "너라도 부모님을 속 썩이면 안 된다"는 등의 조언과 항상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힘들어 보이는 부모님을 보며 더 확고해져 갔다.


10대의 목표는 좋은 성적을 받아 '학비가 싸면서도 부모님이 자랑할만한 국립대'에 가는 것이었고, 20대 초중반에는 '절대 잘리지 않는 월 200 이상 받는 공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중대한 목표였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지방 거점 국립대에 입학하여, 26살이라는 적당한 나이에 월 200 이상 받는 공공기관에 입사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합격 통보를 받은 날 길바닥에서 눈물도 흘렸었다.)


내 평생 목표였던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자식'의 마침표를 찍게 해 준 회사를, 이직도 아닌 퇴사하게 된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어서'다. 가장 최근까지 몸 담고 있었던 팀에는 작년 초 새로 발령받았는데, 내가 맡은 업무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혼자 할 수 있겠냐", "업무분장이 잘못된 것 같다"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나는 아예 다른 직무로 이동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맡은 업무의 범위를 잘 알지 못했고, 무엇보다 '할 수 있으니까 줬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말 내 업무 범위는 내가 아무리 근무시간 내내 화장실 한번 안 가고 일해도, 야근을 해도 진행되기는커녕 더 쌓여만 갔다. 새로 발령받은 지 6개월이 지나던 즈음에는 퇴근 카드를 찍음과 동시에 눈물이 터져 나왔고, 유튜브에 과로사를 검색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결국 팀장님께 면담을 요청했고, 혹시 내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모를까 봐 내가 발령받기 전 나의 업무를 몇 명이 했는지, 내가 하루에 하는 업무량이 어떤지, 계속 밀리고 있는 업무들이 뭔지를 A4용지 한 장에 작성하여 챙겨갔다.


팀장님이 내가 내민 종이를 보자마자 한 말은 "생각보다 늦게 찾아왔네"였다. 생각보다 늦게 찾아왔다니? 그럼 내가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한 건가? 나를 치켜세워주려고 하는 말인가? 여러 생각들이 뒤엉켰지만, 아무래도 후자로 생각하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는 좋을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맡은 업무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일이 조금 줄어들고 나니, 근무시간에 화장실 갈 시간은 여전히 없었지만 야근을 하는 날은 극히 드물었고, 더 이상 퇴근 카드를 찍으며 울지 않았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들이 이어지나 했더니, 3개월 정도가 지나자 팀장은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넘겼던 업무는 사실 내가 해야 하는 업무라며 팀 회의시간에 슬쩍 말을 바꾸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미칠 듯이 뛰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첫 번째 면담을 요청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두 번째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팀장님께 현재 일부 줄어든 업무량도 간신히 소화하고 있는 정도라고 말씀드렸지만, 결국 넘겼던 업무를 나도 일부 하는 것으로 얘기가 마무리되었다.


퇴근할 때쯤엔 머리와 눈은 안개가 낀 것 같았고, 걸을 힘도 먹을 힘도 없었다. 하루에 43통의 전화를 받았던 어느 날, 귀에서 삐 소리가 나며 먹먹했다. 다음날 병원에 갔더니, 청력이 매우 저하된 상태라 아무래도 돌발성 난청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1주일간 스테로이드 치료를 했지만, 안 좋아진 청력은 그다지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병원으로부터 2개월의 안정가료 진단을 받고, 회사에서 병가 가면 승진 밀릴 수 있다는 말을 뒤로한 채, 병가를 들어가게 되었다.


2개월의 병가가 끝나갈 무렵, 그간 보지 못했던 메신저들을 정리하려고 사내 메신저를 들어갔는데, 올해 업무분장이 쪽지로 와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열어본 업무분장에는 작년과 동일한 업무가 나에게 또 배정되어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퇴사를 준비했던 것 같다. 과한 업무량에 대해 팀장에게 얘기했고, 인사팀에 얘기했다. 결국 몸이 안 좋아서 병가까지 가게 되었다. 내가 더 이상 이 회사에 남아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병가에서 복귀한 지 2개월이 막 지났을 때, 회사에 퇴사를 통보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 "차라리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 준비를 해라"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의 회유가 있었지만, 그런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는 것이 나에게도 회사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거절했다. 회유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응원과 격려 덕분에 나 스스로 회사생활을 나쁘지 않게 했다는 소소한 위로도 되었다.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수많은 생각들을 거쳐오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자식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나를 버려가면서 이 회사를 다니는 것이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걸까'는 생각을 해봤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위한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의 방향을 이제부터 고민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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