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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온도 Oct 10. 2022

휴가(休暇)

4월의 어느 날




퇴사를 하고, 잠깐 다른 일을 도와주게 되었다.

3개월 계약직 인사팀의 산업요원관리와 급여담당



육아휴직을 들어 간 분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들어간 자리였는데, 잠시나마 내 생애 다시는 없을 것 같은 남초 회사를 경험하게 된 시간이었다.



9시 출근-6시 퇴근. 9 to 6의 삶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 곳. 기간제로 근무했을 때 이후론 이렇게 정시 출퇴근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평범한 회사원이 된 것 같아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마치 보통의 직장인들처럼 살아보는 체험 기간 같달까?



퇴근 후, 남편과 식사를 하고, 과일을 깎아 먹으며 하루 일과를 도란도란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하루 종일 앉아서 컴퓨터를 보는 업무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지만, 점심시간 짬을 내어 마시는 커피 한 잔과 친구와의 수다는 직장인들이 왜 이렇게 점심시간을 소중히 여기는지 알게 해 주었고, 탕비실에서 기지개를 켜며 타는 차 한 잔의 여유는 고단함 속의 온몸을 달래주는 듯했다.


그전에 일하던 것에 비하면 사실 아주 여유로운 일이어서, 첫 일주일 일을 배우는 동안만 제외한다면 나머지 시간은 퇴근시간 전에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오늘은 뭐 먹지?”



일이 끝날 때쯤이면 늘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매일 같은 고민의 반복이지만 왜 인지, 지루하지 않은 고민이다. 2021년의 마지막 날까지 그렇게 먹을 고민을 하며 보냈다.



1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쉬어 보리라. 난생처음 퇴직금으로 취미생활 용품을 샀는데, 그것은 바로 ‘스키세트’였다. 돈 안 드는 취미생활만 골라서 했던 내가 거하게 돈을 투자했다.

남편도 학교 방학기간이라 함께 스키장 주중 주간권을 끊어 다니기로 했던 참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스키를 타고, 꼭 붙어 다닌 지 꼬박 한 달. 2월 초 설을 쇠고, 몸이 아팠다.

갑작스레 수술일정이 잡혀, 코로나가 걸리면 안 되었기에 집에서만 한 달을 보냈다.



그때부터였다. 내 생각과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당장 책을 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디선가, 자신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마음을 위로하고 평안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역시나 나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는 일은 나를 잔잔하게 만들었다.


‘아, 그때 또 어디를 갔었지….’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 생각보다 기억의 오류가 많았다. 사진으로 남겨둔 일들이 가장 또렷하고 정확해서 선명한 글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추억을 사진으로 많이 남겨두려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는 것

집구석구석의 먼지를 닦아 내는 것

쌓이지 않게 빨래를 하고 개는 것

오래된 친구들을 시간의 구애 없이 만나는 것

퇴근하는 남편의 저녁밥을 차리고 함께 먹는 것

늘 잔잔한 명상음악을 틀어 두는 것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요가를 하는 것

해가 가득 든 오후의 발코니에서 책을 읽는 것



그간 일을 하면서 병행하기 힘들었던 것들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았다.

3개월 정도는 이렇게 나를 위해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러던 중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마음을 ‘툭’ 건드리는 말들이 가득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제각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정해지지 않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두려움과 가족의 비난, 주변의 멸시를 견디며, 아니 견딘 다기보다 그 시기를 지나며 아주 조금씩 자신을 찾고 있는 듯했다.


언젠가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지내는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뭔가 나이마다 해야 할 것들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아, 20대엔 이래야 하고, 30대엔 이래야 하고. 너무 숨 막히지 않아?”


그렇다. 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종종 잊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너무 많다.

그나마 요즘에는 세대가 바뀌고, 세상의 흐름이 바뀌어 개인생활을 존중해주고 있어 그 관심이 ‘덜’ 하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주변 친구들, 가족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회 속에서 일을 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사회에 고착된 관념과 질서를 무시하며 살아가기 어렵다.


책 속의 주인공들 또한 그랬다. ‘착한 아이’로 자라, 삶도 착하고 바르게 살았고, 그런 과정에서 자라난

‘착하게 살았으니, 잘 살아가겠지’하는 믿음은,

어른이 되어서야 ‘그 착한 아이’가 지극히 사회화된 어른들이 만들어 낸 잘 짜인 인형극 속 주인공이었다는 걸 알게 되며 비로소 깨지고 만다.


휴남동 서점의 사람들은 조용한 방황을 시작한다.

나쁜 것들로 가득 찬 방황이 아니다. 조용하고, 규칙적이며, 담백한 방황이다.

언제 닫을지 모르는 서점을 연다 거나,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거나,

하루 종일 서점 창가에서 뜨개질을 한다거나,

그 뜨개질하는 모습을 옆에서 하염없이 지켜본다거나 말이다.



어쩌면 나도 그들과 비슷한 방황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이건 방황이 아니라 온전한 나를 찾는 인생의 휴가기간이랄까.

비록 일을 해야 하는 나는 3개월이라는 기간을 정해 두었지만, 이 기간이 끝난다고 해도 나를 위해 찾았던 일들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나에게는 뒤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목표만을 좇고, 그 목표에 도달함에 취하느라 더 이상 인생의 소중한 것들을 저만치 미루고 싶지 않다.



작은 보폭일지라도 내가 걷고 있음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졌다.

나는 내가, 이 순간을 잊지 않고 다짐을 지켜 나가길, 꼭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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