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 시간이 분주하다. 오늘은 강화 집으로 바로 퇴근하는 날이라 먹을거리며 옷가지를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인천에 살면서 직장을 다니는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2~3일 정도는 강화에 있는 두 번째 집에서 지낸다. 해가 한껏 길어진 지금은 퇴근 후 도착해도 산 너머로 붉게 물들어 가는 노을을 잠시나마 볼 수 있지만, 겨울에는 퇴근하는 동안 해가 져버려 깜깜한 집에 들어가 여명이 밝기도 전에 출근한다. 누군가 그럴 거면 뭐 하러 굳이 가냐고 하지만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설레기만 한다.
우리의 두 번째 집은 9평짜리 원룸 주택이다. 늘씬하게 뻗은 소나무 숲을 뒤로하고 앞으로 펼쳐진 들판에서는 봄이면 모내기하느라 물을 대어 놓은 모습이 마치 호수 같고, 여름이면 무성하게 자라난 벼 이삭이 사락사락 자라는 소리가 들리며, 가을이면 들판이 온통 샛노랗게 물결치고 그 위로 쇠기러기 떼가 쉼 없이 날아가는 그런 곳에 집이 있다. 사진을 본 누군가 '농막'이냐고 할 때면 나는 발끈해서 '농막' 아니고 '집' 이라고, 건축물대장에 등재된 주택이라고 강조한다.
97평 땅을 사고 처음부터 집을 지을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편이 좋아하는 텃밭을 경작하고, 자연 속에서 꽃이나 나무를 심어 가꾸고 싶어 땅을 샀지만, 막상 사고 보니 잠시라도 생활할 공간은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천만원 정도 되는 컨테이너 하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전시판매장을 방문해 컨테이너 주택을 보니 생각보다 가격도 비싸고 잠을 자고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그렇다고 평당 천만 원 가까이하는 주택 건축을 할 수도 없고, 대안으로 저렴하게 지을 수 있는 조립식 주택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이윤을 남겨 팔기 위해 겉만 그럴듯하게 꾸민 철골 주택은 짓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건축계획은 컨테이너에서 조립식 주택으로, 철골조에서 목조주택으로, 이동식에서 현장 건축으로 변경되었다.
대개 전원주택은 작게는 20평에서 3~40평 정도로, 2층이나 지붕 층을 이용해 복층으로 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큰 집이 필요하지 않았고 복층 같은 2층은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는 40평을 지을 수 있는 대지에 9평 단층 주택을 짓기로 결정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들이 와도 음식을 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크기의 싱크대, 식사도 하고 책상으로도 쓸 수 있는 4인용 식탁 겸 책상, 좁은 집의 이불과 옷 등 잡동사니를 수납할 수 있는 붙박이장, 변기와 샤워부스가 있는 넉넉한 화장실, 언제든 푹신하게 몸을 기댈 수 있는 안락한 쇼파, 그것으로 충분했다. 애초에 땅을 산 이유가 집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과 격리된 집 안에서의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그 밖의 모든 것은 문밖에서 이룰 수 있었다. 스위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위대한 건축물을 수없이 만들었지만 마지막 여생을 4평짜리 오두막에서 보냈다. 그의 집에 비하면 우리 집은 벽으로 구획된 널찍한 화장실도 있고, 대형 주방에나 놓일 것 같은 대면형 싱크대도 있으니 호사스럽기까지 하다.
흔히들 집 한 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고 한다. 원하는 디자인과 이미지를 미리 사진으로 보내줘도 실물은 딴판인 경우가 허다했고, 구두로 당부했던 내용도 담당자의 실수로 시공팀에 전달되지 않아 나중에는 수정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패시브 주택(에너지를 스스로 절감할 수 있도록 건축된 집)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업체를 골랐고, 집의 설계 단계부터 우리의 생활패턴에 맞는 건강한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반영했기 때문에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집이 완성되었다.
윤현준 작가는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노자의 '도덕경'을 인용해 물질로 가득한 세상에서 비움의 가치에 대해 언급한다. '비움은 창조의 시작이다. 노자는 일단 손에 잡히는 물질적 존재가 가득하게 되면 오히려 성장의 잠재력이 소진된다고 생각했다. 진흙을 이겨서 질그릇을 만든다. 그러나 그 내면에 아무것도 없는 빈 부분이 있기에 그릇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게문과 창문을 뚫어서 방을 만든다. 그러나 그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 있기 때문에 방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9평 집을 지음으로써 88평의 빈 공간을 얻었다. 이 집과 나와 비어있는 공간의 관계는 어떤 것으로도 규정되지 않으며, 우리는 유동적으로 흘러 춤을 추듯 넘나들며 서로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