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시간

by 희욤

겨울이 오기 전에 공사가 끝난다고 했던 우리 집은 다음 해 3월이 다 돼서야 준공이 났다. 봄이었다. 9평 집과 연결된 목재 테크 위로 따스한 아침햇살이 소나무 키만큼 드리워졌던 그늘을 거두어 내고, 갓 토목공사를 끝내서 아직 풀포기 하나 없이 비어 있는 너른 바당을 환한 빛이 감싸면 나는 그저 눈이 부셨다. 우리는 설계업체에서 받은 준공 도면에 정원과 텃밭의 위치를 잡고, 주차장과 정원과 집으로 이어지는 길을 그려 넣었다. 생각하고 상상만 했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유튜브에서 벽돌로 구불구불 예쁜 길도 만들고, 파이어피트도 동그랗게 뚝딱 완성하는 모습을 보고 무작정 벽돌을 사러 건축자재 상에 가서 보니 바닥에 비닐 매트도 깔고 벽돌 사이사이는 모래로 메워 줘야 한다고 했다. 자재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었지만 다행히 건장하게 성장한 두 아들이 있어 삼겹살 두어 근을 구워 먹이고 1박 2일의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데크 앞 잔디밭은 '당근'에서 규격대로 잘라 팔고 남은 자투리 잔디를 가져다 깔았다. 비틈없이 깔끔하게 깔린 앞집 잔디밭과 달리 탈모 환자 머리처럼 듬성듬성 비어 있지만 나머지는 물과 햇빛과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봄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나무 시장이 열렸다. 다양한 묘목과 꽃들을 찾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에 놀랐다. 우리에게 처음 온 꽃은 다알리아. 네일 케어를 받은 여인의 매끈한 손톱 같은 꽃잎이 층층이 겹쳐 피어 한두 송이만으로도 화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모습에 넋을 잃고 두 그루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수수한 듯 우아한 자태를 감추지 못하는 수국과 노란색 꽃이 방긋방긋 피어나는 가자니아, 꽃이 앙증맞은 송엽국과 여름 정원을 수놓을 아스틸베 그리고 봄에 매력적인 향기로 유혹할 라일락 묘목이 함께 들어왔다.


기온이 오르고, 여름이 오려나 했더니 그새 장마가 시작되었다. 자연에 맡겨놓은 것이 많아진 나에게 장마는 그저 우산을 챙겨야 하고 눅눅하고 후덥지근한 공기를 견뎌야 하는 것 이상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장대비를 며칠씩 쏟아붓고 난 후 배수로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우리 땅은 여기저기 물바다가 되었다. 예쁘게 만들어놓은 벽돌길 곳곳이 흙탕물에 잠기고 근처에 심겨 있던 수국과 다알리아는 패잔병처럼 축 처진 몰골로 그토록 아름답던 꽃을 포기한 채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의 무지와 우둔함이 누군가의 생명을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좀 더 나은 환경에 있거나 더 건겅한 체력을 가진 것들은 힘겹지만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다. 아침이면 방새 움츠리고 있던 노란색 꽃잎을 두 팔 벌리듯 펼쳐 보이며 세를 늘려가는 가자니아, 동글동글한 꽃이 부채춤을 추는 송엽국, 구근을 심은 지 얼마 안 돼 작은 몸집에도 성급하게 꽃망울을 올리는 작약, 작은 묘목을 사서 몇 년을 키울 요량으로 구입한 미스킴라일락은 작달막한 키에 수수한 꽃 무더기가 피어나고, 나름 맘먹고 구입한 장미 묘목은 야속한 빗줄기 때문에 고상한 품위에 상처를 입기 일쑤지만 어김없이 자신이 가진 색을 담아 꽃을 피워낸다. 너무 화려한 꽃 색에 한 달여를 행복하게 바라보던 다알리아는 이제 꽃대를 잘라 한숨 돌리게 했고, 가장 기대가 컸던 수국은 온실에서 이른 꽃을 피워서인지 노지 환경에 힘들어하기에 화분에 옮겨 주었다.


처음 맞는 겨울. 우리 집은 바닷가라 내륙보다 온도가 2~3도 더 낮아 철저한 겨울 준비가 필요했다. 몇 권의 책과 유튜브의 정보를 이용해 쌀겨나 볏짚을 구해 보온을 하기로 했다. 쌀겨는 멀리 정미소에 가서 구할 수 있고 추수철에 일이 바쁘다 보니 나 같은 정원지기를 위한 배려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한창 추수에 여념이 없는 집 근처 탈곡장에 가서 볏짚을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다음 주에 주변 논을 추수하는데 '볏짚 곤포 사일리지'(볏짚을 탈곡한 후 사료 등으로 쓰기 위해 말아 놓은 덩어리)로 쓰지 않고 조금 남겨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 주말에 가 보니 논에 추수가 끝나 있었고 우리를 위한 볏짚 몇 덩이가 논 두렁에 남겨져 있었다. 남편과 나는 대형 잔디 포대를 이용해 질질 끌다시피 해서 볏짚을 날랐다. 볏짚으로 정원 전체 바닥을 덮고, 특히 보온이 필요한 수국과 백일홍은 포장용 뽁뽁이로 둘러주었다. 그렇게 허술하게 준비된 우리 정원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었다.


3월 초 어느 날. 냉혹하리만큼 차갑던 바람도 기운을 잃고, 햇살이 따사로웠다. '이제 봄이구나.' 회심의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겨우내 덮여있던 볏짚과 비닐을 걷어내고 생존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난 나는 밖으로 나갔다 안으로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나는 한낮에 더 따사로워지는 봄 햇살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비닐을 걷어내고야 말았다. 비닐 속에서 수국이 연두색 새순을 빼꼼히 내밀었다. "세상에! 여보, 이리 와봐요." 나는 감탄사를 외치며 남편을 불렀다. 자연의 위대함이여! 하지만 나의 성급함이 얼마나 무지한 짓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교차가 큰 초봄에는 저녁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곤 하는데 식물을 발가벗긴 채로 영하의 날씨에 내 놓은 것이었다. 며칠 뒤 가서 보니 새순은 얼어서 까맣게 되어 있었고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무지로 생명을 죽였다는 사실에 몸서리쳤다.

긴 겨울을 보낸 정원은 페허와 다름없었다. 살아남은 것은 감나무, 백일홍 같은 교목과 목수국, 장미, 셀렉스 등 관목류, 일부 강인한 화초류 정도였다. 노지에서 월동이 가능하다고 해서 구매했던 식물들이 대부분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냉혹한 겨울의 상처는 아랑곳없이 봄은 성큼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새로 꽃씨를 사서 포트에 파종하여 노지에 옮겨 심고, 이른 봄꽃을 볼 수 있는 튤립, 히아신스, 크로커스, 무스카리 등 저온 처리된 알뿌리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심었다. 그런데 폐허가 된 땅 위로 나만 모르게 깜짝 파티가 준비되고 있었다. 작년에 우연히 길에서 씨를 받아 우리 정원에 들여온 벌개미취가 뾰족뾰족 연하고 귀여운 새싹을 무수히 올리기 시작하더니 앙상하게 가지만 남았던 미스킴라일락, 사계 장미, 불두화 줄기에서 새순이 나오기 시작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수국, 꽃범의꼬리, 붓들레아, 아스틸베, 국화, 달맞이꽃, 캄파눌라, 데이지 등 몇 가지 유명을 달리한 것들을 제외한 대부분이 마른 줄기 사이로 새싹을 내밀었다. 작년 여름 짧은 개화로 아쉬움과 함께 사라졌던 오점네모필라, 여우꼬리맨드라미, 채송화도 모습을 드러내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기적의 시간'이 만들어낸 감동을 잊지 못한다. 이제는 호들갑 떨지 않고 모든 것이 시간을 지나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믿는다. 영원할 것 같이 빛나던 것들도 언젠가는 색이 바래 소멸하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라는 것을, 이러한 모든 일들은 나 같은 미물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따라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