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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 Jul 28. 2023

공간의 미래와 eDNA로 분석한
과거의 공간

유현준 '공간의 미래'

인간이 지구를 대하는 탐욕적인 행동을 보면서 지구에는 유통기한이 있어 언젠가는 그 수명을 다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러한 생각은 행성도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거친다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더 확신하게 되었는데, 고등학생인 내 아들도 걱정이지만 그의 아이들(나는 비록 하나이지만, 내 아들은 둘 이상을 거뜬히 키울 수 있는 세상이기를...)이 더 걱정이다. 이런 걱정의 기저에는 지구의 운명이 다할 수 있다는 아주 먼 미래의 걱정 외에도 살아가는 것이 더 좋아지고, 행복해져야 하는데 그와는 반대로 세상이 점점 더 불공정하고, 약한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중학교 때보다는 대학교 때가, 지난해보다는 올해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삶은 살아볼 만한 거라고 여겨왔는데, 최근 그런 생각들이 달라지고 있다. 


대전 변두리의 1 가구 1 주택자로서 오랜 기간 살아왔는데, 아이가 애기일 때부터 시부모님 사시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고,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직장도 가깝고 편의시설도 많은 그런 동네로 이사해도 되겠지 그때 마련하면 되겠지 하는 계획은 나를 무능하고, 게으르고,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그래서 불만인 상태로 만들었다. 주택은 내 인생 행복에 매우 큰 변수가 되었고, 최근 들어 다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내 행복의 기준이 2020~2021년 부동산 폭등 전후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내 마음 상태에서 읽게 된 '공간의 미래'는 불안과 불만이라는 께름찍한 먼지 덩어리를 흩어놓을 수 있는 바람을 일으켜주어 기분 좋게, 재미있게 본 책이다.


인간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이기적인 존재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인정하고, 공간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속이 시원해지는 글의 시작이다. 인간의 선한 일면에 기대어 욕심을 내려놓고,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공허한 생각은 그만두어야 한다.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복원될 수 있도록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기술 혁명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1990년대에 들어서 기성세대와 기존 재벌에 밀려 오프라인 공간에서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젊은이들은 IT 기술로 온라인 공간이 만들어지자 네이버, 카카오, 넥슨 같은 기업을 만들 수 있었다.


현재 도로 위에는 물건을 운송하는 트럭과 사람이 혼재하고 있는데, 미래 도시에 도입될 필수적인 지하 인프라 시설로 '자율 주행 로봇 전용 지하 물류 터널'에 대한 콘셉트가 나온다. 로봇만 다니는 낮은 천장고의 터널은 공사기간과 건설비를 크게 줄일 수 있고, 작은 크기의 운송 로봇은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 공간으로 보내고, 지상은 '인간을 위한 느린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공간의 미래에 대한 저자의 상상과 인사이트가 많이 스며있는 책이다.


미래의 공간을 어떻게 설계해 나갈지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공간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볼 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에 중요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eDNA(evironmental DNA, 환경DNA)는 과거의 공간, 생태계를 추측하는 데에 매우 유용한 접근 방법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얼어붙은 토양(북부 그린란드)에서 복구된 200만 년 된 eDNA 분석을 통해 한때 이 지역이 마스토돈*과 순록이 배회하는 숲이 우거진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 마스토돈(mastodons) : 제3기 마이오세(Miocene)에서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에 걸쳐 번성했던 동물로, 마스토돈은 코끼리나 매머드보다 키가 작고, 몸이 작달막했던 것으로 추정


eDNA 관련기술은 대상 생물을 직접 채집하지 않아도 환경에 존재하는 DNA를 분석함으로써 생물다양성 연구, 멸종위기 생물 탐색, 범죄 수사 등에 활용할 수 있으며, eDNA는 높은 민감도와 짧은 조사 시간 등의 장점이 있어 다양한 공간/환경(수중, 토양, 대기 등)에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 


다시 과거의 공간으로 돌아와서 eDNA 기록에 의하면 북부 그린란드 일부 지역은 포플러, 자작나무 등의 혼합 식생뿐 만 아니라 다양한 북극, 아한대 관목의 산림 생태계를 형성한 것으로 조사되어 오늘날보다 11∼17°C 더 따뜻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미래 온난화에서 예측되는 기후와 유사한 환경으로, 고대 퇴적물 등에 존재하는 eDNA 기록은 향후 생태계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eDNA로 밝혀낸 200만 년 전 과거의 공간을 상상한 그림

출처 : Nature, DNA reveals that mastodons roamed a forested Greenland two million years ago, 2022.12.7


우리 삶에 있어 시간의 유한함은 잘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시간은 금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와 같은 말들을 흔히 들으면서 성장해 왔다. 하지만 공간에 대해서는 그 소중함을 일깨우거나 교육적인 문구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시간은 개인적이며, 스스로 조율할 수 있는 반면에, 공간은 공동체적이 이서 개인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에는 그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애매한 면이 있어서일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우리에게, 지구에게 공간 또한 유한하다. 우리가 숨 쉬는 현재 이 공간은 잠시 빌려서 사용할 뿐 우리의 것은 아니다. 물건도, 아파트도 빌려서 사용하고 나면 가능한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규칙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로운 옷을 사는 것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것이 있었으니 먹거리에 대한 구매 욕구가 확실히 높아진 것 같다. 냉장고에 요리 재료와 음식을 쟁여두는 습관이 생겼는데, 특히 냉동실에는 봉지 봉지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는 것들이 많이도 들어차 있다. 우선 무엇부터 시작해 볼까? 냉장고에 묵히는 음식 없이 50~60%의 빈 공간을 두는 것부터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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