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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 Jul 28. 2023

명랑한 은둔자와 메타버스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The Merry Recluse)'

이 책의 제목 '명랑한 은둔자' - 반어적인 2개의 단어를 조합하여 만든 국문 제목이 책의 내용을 찰떡같이 잘 표현하고 있다는 개인적인 감상평을 먼저 말하면서 글을 시작하고 싶다. 최근에 가까이 일해야 하는 사람 중에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무뚝뚝하고, 주변에 관심이 없을까? 혹시 나를 싫어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명랑한 은둔자'라는 책을 통해서 다른 관점에서 상대방을 바라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계기가 되었다. 


상대는 수줍어하고 있는 거라고, 수줍음을 방어하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동이 무뚝뚝하고, 때에 따라서는 쌀쌀맞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나를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시각에서 상대를 폭넓게 바라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내 마음에 여유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와의 상호작용을 원하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나에게 몰두하고, 침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결코 외롭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었던 동시에 저자인 캐럴라인 냅은 이 책에서 중독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외로움과 우울감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다양한 무언가에 중독된다. 


하지만 최근 메타버스의 한 종류로 여겨지는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프로그램이 우울증, 중독, 강박장애 등 다양한 신경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VR의 치료 효과를 어떻게 측정하는 것일까? 고약한 중독을 일으키는 환각물질들이 오히려 최근에는 중독,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임상시험이 활발해지고 있고, 유망한 신약으로 규제당국의 허가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 미국 FDA가 환각버섯의 추출물인 실로시빈(psilocybin)을 중증 우울증에 대한 혁신치료제(breakthrough therapy)로 지정하여 신속하게 승인한 사례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 소개하는 VR 프로그램인 ‘이즈니스-D(Isness-D)’는 위에서 설명한 환각물질(아래부터는 정신활성물질로 표현)을 중간 용량 투여했을 때와 거의 동일한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75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이러한 효과가 확인되었는데 특히, 정신활성물질의 임상적 유용성을 평가할 때 사용되는 4개 지표를 바탕으로 측정한 결과이다. 4개 지표는 MEQ30(환각 체험 설문지), 자아 해체 척도, 공동체성(communitas) 척도, 공동체 자아 포함 척도이며, 공동체성이란 사회 구조를 초월하여 인류와 강하게 공유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한다.


연구팀은 이즈니스-D를 통해 자기 초월적 경험(self-transcendent experience)을 재현하는 데 관심이 있는데, 정신활성물질 임상시험에서 더 강한 자기 초월적 느낌을 보고하는 사람일수록 질환 증상 개선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조사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팀에서 창업한 어뉴마(aNUma)라는 스타트업에서는 VR 헤드셋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매주 이즈니스 세션에 등록할 수 있으며, 가상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이즈니스-D 단축 버전을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공간에서 사용하는 이즈니스-C(A), 서로 다른 공간에서 참여하는 이즈니스-D 버전(B)
4명의 참가자와 1명의 진행자가 합류하는 모습(A.i), 에너지 결합을 수행하는 참가자들(A.ii)

출처 : Nature Scientific Reports, Group VR experiences can produce ego attenuation and connectedness comparable to psychedelics, 2022.5.30.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이슈화되기 한참 전인 2002년에 사망(힘겹게 중독은 극복했지만, 암으로 사망)한 캐럴라인 냅이 메타버스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나는 사실 3D 영화도 잘 보지 않는다. 아이가 어렸을 때 2D로는 참 좋아하는 쿵푸팬더를 그것도 4D로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갔던 적이 있다. 예상치 못한 순간 물을 받고, 바람을 맞고, 심지어 종아리에 매를 맞으면서 깜짝 놀랐고 바로 이어서 매우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VR로 즐기는 가상휴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머리가 어지럽고 서글퍼진다. 나는 진짜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느끼고 싶은데 말이다.


메타버스 세상에서는 가짜가 진짜가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해질까? 이전에는 맨 눈으로 직접 보고, 맨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는 것을 진짜라고 했다면 앞으로는 다른 기준(저작권? 소유권? 구독권?)으로 구별하게 될까? 나는 기본적으로 좋은 기술과 나쁜 기술은 따로 없고,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사용하는지 그 의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건강에 도움을 주고, 외롭지 않게 하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그 의도가 변질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변질된 의도가 문제가 될 정도로 쌓여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를 만드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참 복잡한 것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나쁜 의도가 어떤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을지 미리 예측하여 안전 시스템을 만들어 놓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향후 발생할지도 모를 문제가 무서워 기술의 발을 묶어둘 수도, 활개 치면서 막 돌아다니게 놓아둘 수도 없는 상황이다. 바이오기술이야말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기술인데, 바이오기술은 우리에게 적용되기 전에 임상시험이라는 것을 한다. 하지만 그전에는 개념 검증의 기초연구부터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실험한다. 


초기 연구와 기술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단계에서는 기술의 발을 묶어두기보다는 마음껏 뛰어다니게 하고, 실제 인체에 적용하고, 시장에 나오기 전에는 보다 엄격한 눈으로, 시장에 나온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안전체계는 지금도 마련되어 있지만 본격적으로 우리의 삶에 들어오기 전에 여러 운동장에서 몸을 풀게 하는 것이 바이오기술에서는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초기 연구와 기술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단계에서 과학자들의 책임 있는 연구가 필요한데, 과학자들이야말로 기술의 다양한 의도를 제일 먼저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의 창의성을 제한하지 않는 방식으로 다양한 의도에 대한 신중한 경계가 계속 조정될 수 있도록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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