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자키 준이치로 '세설(細雪)'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1940년대에 쓴 소설, 세설(細雪) - 가랑눈이란 뜻도 있지만, 쓸데없이 자질구레하게 늘어놓는 말 - 을 읽는 동안 나는 왜 이렇게 지루하면서도 재미없고, 내 취향에도 맞지 않는 책을, 그것도 상, 하로 구성된 두꺼운 책(글자를 맘껏 키울 수 있는 e북으로 읽었기 때문에 실제 두꺼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페이지수로 예상해 보건대)을 계속 읽고 있는 것일까 의아했다. 뭐 하나 시작하면 얼렁 뚱땅이라도 마무리는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이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으로 가면서 알게 되었다. 신기해서 읽었다는 것을. 1940년대 일제 강점기 막바지 발악으로 고막이 찢어나갈 지경이던 우리나라와 달리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는, 여성들은, 혼인을 앞둔 여성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신기해하면서 끝까지 읽었던 것이다. 비록 다니자키 준이치로라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여성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탐구가 중요한 삶의 의미였던 남성의 눈을 통해 그려진 여성들이지만 그녀들의 생활과 생각이 신기했다. 결론이 어떻게 될지...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인생의 목표인 혼인을 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끝이 난다.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들인 한때 잘 나가던 집 안의 자매들에게 인생 최대의 목적은 행복한 삶이었던 것 같다. 애매하긴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도 인생의 목적을 행복한 삶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차이가 나는 부분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결혼을 잘해야 한다. 결혼을 잘하기 위해서는 좋은 신랑감(격이 맞아야 하고, 건실한 직업과 장래성을 갖춰야 하고, 외모가 지나치게 늙어 보이면 곤란하고, 재혼이라면 아이들 성격이 유순한지)을 찾아야 했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이니 우리나라의 여성들도 혼인이 남은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드는 의문이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아니 여성, 남성 구분할 필요 없이 모두에게 행복이라는 목적성을 생각할 겨를이 있었을까?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었을까? 남자로 태어났으니 그 역할(일하고, 전쟁에 나가고)을, 여자로 태어났으니 그 역할(일하고, 아이 낳고)을 당연하게 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더 당연하게 위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소설 '토지' 속 장이와 홍이처럼 곳곳에 있었겠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여성과 남성의 역할을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어졌지만, 오히려 생명과학과 바이오 연구에서는 생물학적 성(性)의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이다. 특히 면역과 질병에 있어 생물학적 성(性)은 다른 반응과 특성을 보이는데, 이러한 연구는 오랫동안 간과되어 왔었다. 남성과 여성은 감염병이나 자가면역질환 등에 대해 다르게 반응한다. 만성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인 루푸스(lupus)에 걸릴 확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9배나 더 높은 반면에, 남성은 결핵에 걸리거나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여성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임상시험은 주로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되어 온 까닭에 그 결과는 공중보건과 의학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예를 들어 남성 위주의 임상시험으로 인해 여성은 생명을 구해줄 수도 있었을 HIV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당시 인체 내 바이러스의 양으로 치료를 결정했는데, 여성은 남성보다 HIV에 대한 면역력이 강해 바이러스의 양이 적어 치료를 받지 못함), 또 다른 경우에는 남성과 같은 양의 약물 투여와 백신 접종으로 인해 부작용을 겪었다. 1997∼2001년 사이에 미국 FDA가 시장에서 철수시킨 약물 10개 중 8개는 여성에게 중대한 건강 위험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출처 : MIT Technology Review, The quest to show that biological sex matters in the immune system, 2022.8.15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전임상시험에서도 설치류(쥐나 햄스터 등) 동물실험의 75% 이상이 수컷만을 이용해서 진행하였다. 동물실험을 수행할 때 암컷과 수컷을 모두 사용하려면 더 많은 연구비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암컷 동물은 생식주기(reproductive cycle)를 고려해야 하는 등 많은 과학자들이 암컷 동물 사용을 기피해 온 반면, 드물게 어떤 과학자들은 수컷들이 서로 싸울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이유로 암컷만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각종 연구에서 유전자 발현부터 호르몬 수치까지 다양한 특성에서 암컷이 수컷과 차이를 보인다는 보고가 잇따르면서 성(性) 차이를 고려한 연구가 중요해지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학술지와 연구비 지원기관에서 성(性)이나 젠더에 따른 계층화된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성(性)이나 젠더에 따른 연구는 기존의 치료법을 더 안전하고 효과적이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치료제, 치료기술 개발을 위한 길도 열어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권위 있는 고든 리서치 컨퍼러스(Gordon Research Conference, GRC)에서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면역학과 성(性)의 차이점(Sex Differences in Immunity in Health and Disease)이라는 세션이 처음으로 구성하였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함께 논의한다면 성(性)의 차이점이 생물학적인 탐색 영역을 한 차원 넓혀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참고로, 고든 리서치 콘퍼런스는 생물학과 화학, 물리, 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 세계 석학이 모여 최신 연구 동향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이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의 수탈을 겪으면서 과학기술을 돌볼 여유가 없었던 1931년 처음으로 개최된 유서 깊은 콘퍼런스로 과학계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기도 한다.
세설의 어느 페이지를 읽던 내 머릿속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의 식민 통치라는 단어가 같이 떠다녔다. '일본에게 식민 통치를 받은 것이 자랑이냐? 우리가 무능하고 약해서 그랬던 것 아니냐? 언제까지 과거에만 발이 묶여 앞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갈 것이냐'라는 말도 나도는 것 같다. '일본도 잘 못했지만 사과했던 적이 있고, 힘도 없고, 무능했던 우리도 잘한 것은 없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과거는 뒤로 하고, 미래를 향해 같이 잘 나아가자'라고 할 일인가?
같은 반에 힘이 센 학생이 있고, 바로 옆자리에는 체격도 왜소하고, 약해 보이는 학생이 앉아 있다. 어느 날 힘센 학생이 약해 보이는 학생에게 가서 '넌 힘도 없고, 능력도 없으니 그 가방 나한테 맡겨'라고 한다. 가방을 안 주려는 학생을 위협해서 가방을 뺏는다. 가방 안에 있던 핸드폰이며, 지갑에 든 돈을 마음대로 쓴다. 그 사이 가방은 너덜너덜해지고, 핸드폰은 망가졌고, 지갑도 텅텅 비었다.
가방을 빼앗겼던 피해 학생의 엄마라면 '친구가 사과도 했고, 가방도 돌려주었으니 화해하고 잘 지내보는 것이 어때? 이쯤 해서 나쁜 기억은 흘려보내고 집중해서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약해빠진 너도 잘한 것은 없잖아.'라고 할 수 있을까? 엄마라면 아이의 다친 마음부터 보듬고, 다독여야 할 것이다.
매우 주관적인지만 생각해 보았다. 약한 것이 잘못일까? 약한 것은 무엇일까? 다는 아니지만(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생존력은 매우 강하다.) 물리적으로 작다(나도 작다). 작으니까 들어있는 것(자원 같은)도 별로 없다. 들어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약육강식이 난무하는 자연의 생태계에서 작은 것은 약할 수는 있지만 잘못은 없다. 작은 것도 생존하면서 역할을 해야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다.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자연환경이 되어야만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크고, 강한 2개 국가가 충돌하고 있는 지금, 강한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힘만을 바라보고 줄을 서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이해하고,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우리의 미래를 탄탄하게 설계할 수 있으며, 그리고 국제 생태계가 더 건강해지는 데에도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