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출간될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
“승민(가명) 님, 총 내려놔요. 총.”
“…”
“내려놔요. 어서요.”
“…”
“총 내려놔요.”
“…”
“강도 잡혔대요. 그러니까 총 내려놔요.”
“…”
“위험해요. 다칠 수 있어요.”
“…”
“승민 님, 이제 안전해요. 아무도 안 와요. 총 내려놔요.”
“…”
간호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총을 내려놓으라고. 승민이가 꿈쩍도 하지 않자 간호사는 강도가 잡혔다고 했다. 승민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눈치 빠른 간호사는 다그쳤다. 너를 해칠 사람은 여기에 없으니까 총 내려놓으라고. 승민이는 쭉 뻗었던 두 팔을 내렸다.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더니 귀에 꽂았다. 이제 손에 아무것도 없다. 총은 어디에 있는 건가. 내려놓은 거 아니었나. 바닥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총은 원래부터 없었다. 오직 승민이의 눈에만 보이는 총이었다. 2012년 여름 한밤중,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승민이가 ‘자신만의 총’을 집어 들은 건 입원 중이던 환자 A가 탈출하면서 생긴 소란 때문이었다. 중년 남성 A는 병동 출입구를 지키던 보안 요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빠져나갔다. 누군가 몰래 나갔다는 걸 알리는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병실에서 자고 있던 환자들이 놀라서 뛰쳐나왔다. A는 바로 붙잡혔다. 외부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려던 순간 병동 직원에게 발견됐다. 병동에서는 의료진이 벨소리에 놀란 환자들을 챙기느라 정신없었다. 탈출에 실패한 A가 폭발했다. 환자복 상의를 벗어 던지며 뭐라 소리 질렀다. 벨소리는 더 커졌다. A의 괴성과 벨소리는 사람이 참아내는 한계치를 벗어날 지경이었다. A가 휴전을 제안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웃통을 벗은 A는 병동 바닥에 주저앉으며 한쪽 손을 올렸다. 다가오지도 어떤 말도 하지 말라는 표현 같았다. 환자들은 유리로 된 출입문을 통해 A를 지켜봤다. 보안 요원이 대화를 시작했다. 벨소리가 멈추면서 둘의 대화는 병동 안까지 들렸다.
“선생님, 오늘밤은 병동에서 주무시고요. 날이 밝으면 나가시죠.”
“집에 가야 합니다.”
“밤이 너무 늦었어요. 아침에 교수님 뵙고서 퇴원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집에 가야 한다고요.”
“네. 집에 가셔야죠. 여름이지만 춥습니다. 옷부터 입으시죠. 감기 걸리면 어떡해요.”
“집에 가야 한다니까!”
A는 보안 요원이 건넨 상의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아, 진짜 짜증 나게 다들 왜 이래? 왜 나를 집에 가지 못하게 하냐고?”
A는 의자들을 발로 차며 욕설을 퍼부었다. 의사가 출입문 넘어 보안 요원에게 신호를 보냈다. A를 그냥 두라는 것 같았다. 웃통을 벗은 남자가 맨발로 쓰레기통을 차면서 큰 소리로 화를 내는 건 보통의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준다. 마음을 다쳐 외부의 자극을 차단한 채 쉬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공포였다. 환자 몇 명은 흐느꼈다. 간호사들이 그들을 병실로 데리고 갔다. 그때, 승민이가 병실에서 나왔다. 이어폰을 꽂은 덩치 큰 청년 승민이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맨발의 승민이는 출입구 쪽으로 가더니 스테이션 앞에 섰다. 귀에 꽂힌 이어폰을 빼서 상의 주머니에 넣었다. 두 손을 이용해 판토마임을 하듯 제스처를 취했다. 총을 쏘는 자세였다. 왼쪽 손은 쭉 뻗어 총대를 잡고 오른손은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게끔 했다. 누가 봐도 총을 쏘려는, 누군가를 조준한 자세였다. 모두가 승민이를 지켜봤다.
요란한 굉음이 들렸다. A가 발로 찬 스테인리스 쓰레기통이 벽에 부딪혔다가 굴러가는 소리였다. 승민이의 눈빛이 변했다. 두려움을 느꼈던 자에서 적을 발견한 자의 눈빛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실제 총이냐, 허구의 총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병동을 집어삼킬 것 같은 분노를 쏟아내는 중년 남자로부터 신변에 위협을 느낀 청년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을 꺼내 겨눴다. 발사 직전, 일부 의료진이 비상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A의 고성이 멈췄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의학적인 조치를 통해 A를 제압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 A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A의 난동이 일단락됐지만, 병동에는 해결 과제가 남았다. 승민이였다. 그의 검지만 까딱하면 총알은 발사다. 국내에서 일반인의 총기 사용은 불법이며, 승민이는 우리 국민이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법을 지켜야 한다. 승민이에게도 삶이 있다. 총을 내려놔야 한다. 총을 쏘면 안 된다. 의료진은 승민이를 배려했다. 그의 눈에 가득한 적의, 공포를 이해했고 존중했다. 승민이 눈에만 보이는 총의 존재도. 다만, 쏘지 못하게 유도했다. 내려놓게끔 했다. 총기 사용은 불법이니까. 그에게 인식시키는 것 같았다. 의료진은 승민이에게 위협을 가한 대상을 강도라고 특정했다. 강도가 잡혔다는 의료진의 말에, 그는 총을 내려놨다. 탈출한 A로 인해 소동이 벌어진 건데, 그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승민이는 조현병을 겪고 있었다.
총을 내려놓으라고 했던 간호사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등을 두드리면서 병실로 이끌었다. 그가 다시 스테이션 쪽으로 갔다. 허리를 굽힌 채 무언가를 줍는 것 같았다. 손동작이 말해줬다. 총이었다. 한 손에 총을 든 채 병실로 향했다. 한 걸음씩 발을 뗄 때마다 발가락이 보였다. 맨발, 그는 다급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으로부터 위협을 받았다고 느꼈다. 총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했으니까. 눈을 가늠자 뒤쪽에 가져다 댔을 때 눈빛은 공포에서 결의로 바뀌었다. 자신을 위협하는 대상을 제거하려는 의지. 살고자 하는 의지. 생존 의지다. 승민은 자신을 해하려 했던 대상이 잡히고 안심할 수 있게 되자 본인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환자들이 돌아간 사이 A는 병동에 들어왔다. A는 신기할 정도로 조용했다. 상의를 다시 입었고 복도 소파에 앉아 있었다. 구겨진 상의가 조금 전 소동이 꿈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는 걸 보여줬다. 야간 당직을 맡은 남자 전공의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A는 새벽까지 의사와 이야기를 나눴다고 들었다. 분노조절장애가 심했던 A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준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 때까지 입원을 이어가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A는 실내 자전기 타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A는 평소처럼 조용해 어젯밤 소동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전날 일이 창피해서인지 시치미를 떼는 것 같았다. 죄송하다고 일일이 말하고 다니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까. 승민이도 이어폰을 꽂은 채 운동실에 나타났다. 양손이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니 총은 두고 온 것이다.
이 일은 내게 잊히지 않는 사건이다. 우울증으로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을 때 목격한 것이다. 승민이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상의 총으로 겨눴던 모습에서 어떻게든 살려는 의지를 봤다. 자신을 해하려는 위협에 맞서는 건 생명체라면 가지고 있는 본능이다. 의료진이 총을 내려놓으라고 달래고 설득하는 모습, 가상의 총이지만 승민이가 총을 쏘지 않도록 유도하는 모습에서 어떻게든 함께 살아보자는 유대감을 느꼈다. 의료진은 승민이를 존중한 것이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았을 것이다. 언젠가 그가 의료진의 이런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길 바랐다.
그날 밤 승민이가 총을 겨눴던 모습은 삶이 흔들릴 때마다 영화 속 장면처럼 눈앞에 그려졌다. 살고자 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모든 걸 숨죽이며 바라봤던 젊은 여자의 모습도 보였다. 의료진은 여자가 관찰하는 걸 막지 않았다. ‘기록하는’ 여자의 정체성을 존중해준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위협하는 대상과 맞섰듯, 여자는 본인을 해하려는 감정으로부터 충동으로부터 자신을 구해낼 것이라고 결심했다.
★삶과 죽음의 존엄을 생각할 수 있는 책은, 이달 중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 매거진에 실린 글들은 책에 담지 못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