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아름다운 이유 2
“서른 넘으면 되게 멋질 줄 알았어…무슨 배짱으로 서른은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는지 몰라.”
드라마 <또 오해영>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처음 알게 된 건 한때 핫했던 ‘슈퍼스타 K’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였다. 그때는 그냥 이런 노래가 있구나 싶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그때의 나에겐 너무나 먼 미래이자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미래였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가수인 아이유가 ‘스물셋’이라는 노래를 냈을 때 내 나이도 스물셋. 그래서인지 그 노래에 더 관심이 갔고 즐겨 들었었다.
어쩌면 내가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들어도 별 감흥이 없었던 건 그땐 내가 서른을 이해 못 하던 때여서가 아닐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나에게도 서른이 다가왔다.
지금 다시 ‘서른 즈음에’ 노래를 들어 보니 확실히 그때와는 다른 감정이 든다.
이제 정말 서른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서른은 어떤 의미일까?
한 때 친구들과 ‘우리 중 누가 먼저 결혼하게 될까? 서른이 되면 결혼했겠지? 서른? 난 서른 되기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서른은 그때 우리에겐 너무 먼 미래였고,
그래서 서른 즈음이면, 그때쯤이면 모든 게 안정돼 있을 줄 알았다.
조금 더 차분해지고,
조금 더 성숙해지고,
조금 더 여유로워져 있을 줄 알았다.
당연히 그런 건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여전히 덤벙대고, 미성숙하고, 급하다.
어찌 보면 이게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이제 고작 만 28년을 살았을 뿐이니까.
해본 것보다 해보지 못한 게 더 많고, 가본 곳 보다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다.
그때는 서른이면 아무것도 다시 시작할 수 없는 나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서른이 돼보니 아니었다.
이제 와서 느끼는 거지만 서른은 아직도 뭐든 해볼 수 있는 나이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게 된다면 내가 했던 생각에 대해 절대 아니라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서른이라는 나이를 인생의 정점으로 찍어 놓지 말고 충분히 즐기고, 하고 싶은 것만 찾아 가. 그러면 네 인생의 정점은 무한히 늘어날 거야.”
그래, 난 왜 내 인생의 그래프에서 서른을 정점으로 찍어 놓았을까?
서른은 그저 내 인생을 그리기 위해 지나가는 구간일 뿐인데.
불과 2년 전, 호주에 오기 전만 해도 사람들이 ‘한국에 언제 돌아올 건데?’라고 물어보면 ‘1년? 2년? 서른 전에는 무조건 와야지!’라고 대답했던 나였다. 서른 전에는 한국에 돌아가서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나면 가야지.’라고 말한다.
누군가 ‘그래서 네가 서른까지 당연히 이뤄놨어야 하는 게 뭔데?’라고 물어본다면 나도 모르겠다. 그냥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뭔가가 돼 있을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나이는 그냥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먹는 것이었고, 뭔가가 되고 싶다면 뭔가를 했어야 했던 것이다.
10년 전 나에게 있어 서른은 모든 게 끝나 있어야 하는 도착점이었다면, 지금 나에게 서른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것을 해야 하는 시작점이 됐다.
이제 더는 세상에 당연하게 얻어지는 건 없다는 걸 알게 됐기에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이 힘들지라도 그러므로 얻는 건 더 값지다는 걸 깨달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