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대의 조연인 너에게
모두의 인생은 각자의 무대라고 했던가.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무대 위 주연이라고 들은 것도 같다. 만일 나의 무대가 있다면, 네가 내 무대의 조연이 되어버린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막으로만 치면, 어쩌면 넌 주연일 수도 있겠다. 네가 주연이 되는 것도 조연이 되는 것도 내겐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미 지나버린 극의 내용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일 누군가가 내용을 바꿀 기회를 줄 테니 되돌아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아도 거절할 것이다. 현재라는 장에서 네가 퇴장한 것만으로도, 나는 너의 비중을 견딜 수 있다. 역경을 이겨내는 주인공처럼, 결국엔 그를 돕는 사람들만이 곁에 남는 결말처럼, 너의 흔적은 꾸준히 지워나가면 될 일이다.
한데 마음이 시원찮다. 받아들였다고 했는데. 분명히 나는 너의 비중을 기꺼이 감내했는데도 영 시원하질 않다. 네가 내 인생의 조연이 되어버려서도 아니고, 자꾸 큰 비중을 차지하려고 꿈틀대서도 아니다. 아, 그래. 이 미묘함은 나에게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우리 각자가 주연이라는 건 우리만큼의 무대가 있다는 뜻일 터. 네가 나의 무대 위 조연일지라도, 나는 너의 조연이고 싶지 않았다.
너라는 무대, 네가 주인공으로 선 무대의 조연은 내가 아니길 바란다. 주연은 더더욱이 아니길 바란다. 부디 내 역할은 단역으로 스윽 지나가, 너의 극장에 아무런 비중도 차지하지 않길 빌었다. 네가 내게 남긴 흔적은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나만큼은, 나는 너의 극에 남고 싶지 않았다. 너에게 나는 그저 단역이었으면 좋겠다. 너의 현재에도 너의 미래에도 영향을 끼칠 리 없는 단역. 너에게는 나의 흔적이 남지 않았으면 했다. 그야, 너의 인생에 남은 흔적을 내가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우리 그냥 그렇게 살자. 서로의 존재를 더욱 희미하게 만들며 살자. 서로의 극에 등장하는 일도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필연적으로 나와버린 이상 서로의 비중을 잘라내며 살자. 나는 골백번도 더 마음을 먹은 일이지만 너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너는 나를 아직도 조연으로, 혹은 주연으로 두고 있을까 봐 찝찝했다. 너는 나처럼 흔적을 지울 의지가 없을 것 같아.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과거에는 주연이었겠지. 너 역시 내 지나간 주연이었듯이, 나도 너에게 지난 세월간 주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너를 극에서 내렸다. 마찬가지로 네 극에서 퇴장했어야 했다. 그런데 왜, 나는 아직 네 포스터 위에 이름을 걸치고 앉아있는 기분이 들까.
우리는 스스로의 무대 위 주연임과 동시에 각본가이자 연출가이다. 환경이라는 이름의 기본적으로 주어진 세팅값과 함께하는 공동 감독이기도 하다. 동시에 우리는 다른 극에 오르는 배우이기도 하다. 나는 그날, 감독으로서 너를 퇴장시키고 배우로서는 너의 무대에서 멀어지길 택했다.
멀어지는 것. 나는 퇴장하고자 했지만, 네 무대에서 퇴장시키는 건 나의 역할이 아니었다. 내가 무대에서 내려간 뒤에도 너는 나를 주연으로 삼을 수 있었다. 훨씬 오랫동안 네 마음 속의 주연으로 삼아, 앞으로 남은 러닝타임 내내 나의 흔적을 간직할 수도 있다. 서로에게서 퇴장하고자 한 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이었으니까.
부디 다른 누군가가 나 모르게 나를 조연급으로 세운다 하더라도 너의 무대에서만큼은 그러지 않길 빈다. 네가 나의 조연인 것으로 충분하다. 너와 나의 사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친다. 그러니 너만은, 너만은 나를 단역으로 지나치며 살기를. 너의 극에서 더 이상 나를 찾는 일이 없기를. 이대로 서로의 극에서 퇴장해 영영 볼 일이 없기를. 행여 마지막으로 마주친다해도 그것은, 누군가의 극이 끝났을 때 짧게 등장할 커튼콜 위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