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준다는 착각
아이가 성장하면서 할 수 있는 놀이가 많아졌다. 그만큼 집에 장난감도 늘어간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구입했는데도 막상 정리를 하다보면 늘어난 장난감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국민 육아템은 왜 이리 많은 것인지…. 없으면 아쉽고, 우리 아이가 뒤처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급하게 구입한 장난감도 있다. 아이가 모든 장난감에 흥미를 가지고 잘 놀아주었으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어떤 날은 잘 가지고 놀다가 눈길도 안 주고 며칠 뒤 다시 꺼내놓으면 잘 가지고 놀기도 한다. 치워버리자니 아쉬운 마음에 계속 장난감이 쌓인다. 신생아 시절에는 움직이는 모빌과 초점책을 보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쏘서도 타고 움직이는 장난감을 쫓아가기도 한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보면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빨리 크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오늘은 어떻게 놀아줄까? 뭐하고 놀까?’ 매일 아침 아이가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이다. 사실 이보다 ‘하루 종일 아이와 뭐하고 시간을 보내지?’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굉장히 짧다. 찰나의 순간에 관심을 끌지 못하면 고개를 휙 돌리고 다른 놀거리를 찾는다. 아이가 재미있어하고 오래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엄마들에게 최고의 장난감이다. 하지만 어떤 장난감을 잘 가지고 놀지 모르기 때문에 이것저것 선택지가 많아야 하는 것이다. 장난감이 없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만큼 내 몸이 더 힘들어질 것이다. 엄마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장난감은 꼭 필요하다.
주말에 좀 쉬고 싶어 남편에게 한 시간만 아이를 봐달라고 했다. 혼자 조용히 누워 그냥 쉬고 싶었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워 부족한 잠부터 보충했다. 푹 자고 일어났다 생각했는데 아직 삼십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나갈까? 잠시 고민하다 다시 눕는다. 한 시간을 쉬겠다고 했으니 꽉 채우고 나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다시 누워 뒹굴거린다. 오랜만에 포근한 이불을 덮고 혼자 조용히 누워있는 기분이 좋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이 조용하다. 아직 아이가 잠잘 시간도 아닌데 왜 이렇게 조용할까? 내가 자고 있을 때 밖에 나간건가 싶을 만큼 너무 조용하다. 그러다 문득 아이에게 촉감인형을 건네주고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하는 평소 남편의 모습이 스친다. ‘분명 아이는 혼자 놀고 있고, 자기는 핸드폰 하고 있겠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그렇게 아이 앞에서는 핸드폰 하는 것을 자제하자고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는 단단히 주의를 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방을 나선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왔는데 거실에서 남편과 아이가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었다. 아무런 말 없이 남편은 책장을 넘겨주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은 아니어서 일단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잘 놀고 있었어? 뭐하고 놀았어?”
“응. 책 보여줬어. 아무 말 안 하고 책장만 넘겨주는데도 잘 보더라.” 나를 속이기 위해 미리 세팅해놓은 것이라기에는 어떤 어설픔이나 어색함이 하나도 없었다.
“동물병풍은 보여줬어? 아기체육관은?”
“그거 안했는데.”
“그럼 뭐하고 놀아줬어?”
“그냥 혼자 두니까 알아서 잘 놀던데. 베이비룸 울타리 잡고 일어서려고 하고, 매트 위에 깔아놓은 이불 속으로도 들어가고, 매트도 긁던데 안 까졌나 몰라….”
“그래도 좀 이것저것 장난감 가지고 놀아주지. 재미없게….”
“평소에 엄마가 장난감으로 열심히 놀아주니까 나까지 그렇게 해줄 필요 없어. 그리고 여보는 여보 혼자 놀잖아.”
“….”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이와 다양하게, 재미있게 놀아주지 않은 성실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동안 내가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이 함께가 아니라 나 혼자 노는 것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이에게 자꾸 무언가를 해주려고 했다. 이 생각에 여러 장난감을 꺼내두고 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애썼다. 아이가 재미없어 하면 다른 장난감. 또 재미없어 하면 다른 장난감. 이렇게 계속 다른 장난감을 가져다주었다. 장난감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같이 흉내도 내고 노래도 따라 부르고 이것저것 버튼을 눌러 보았다. 정작 아이는 관심도 없는데 아이와 놀아준다고 착각하며 나 혼자 놀고 있었다. 아이의 놀이시간이 엄마의 놀이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매번 장난감이 부족하다고 투덜댈 수밖에….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책에 그림만 보여주어도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아이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들려주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매트에서 장난감을 싹 치웠다. 원래는 아이가 가지고 놀 장난감을 쫙 펼쳐놨었는데 장난감 상자에 모두 넣어두었다. 아이가 노는 시간이 되면 처음에는 그냥 매트에서 놀게 한다. 그 다음 장난감상자를 가져온다.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놀이의 주도권이 아이에게 있으니 아이 스스로도 재미있게 논다. 장난감에 흥미가 없을 때는 아이와 몸으로 놀아준다. 비행기도 태워주고 안고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기도 한다. 서랍장도 열어보고 냉장고도 열어보고 베란다에도 나가보고 매트에 누워 뒹굴거리기도 하고 엎드려서 서로를 관찰하기도 한다. 물론 몸은 힘들지만 그만큼 아이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엄마는 아이와 ‘놀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아닐까? 제대로 못 논다고 밉상스러워 놀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쳐있을 때 남편의 말은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거실에 가득 했던 그날 이후 나는 아이와의 시간을 어떻게 때울까가 아니라 부족하거나 모자란 것을 어떻게 메워주어야 할지 고민한다. 앞으로도 이것저것 선택지를 마구 가져다주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가져온 선택지를 함께 고민하고 채워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