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린이맘 Jun 13. 2022

주방은 엄마의 마음이다

마음과 사랑을 내어준다는 것

따뜻한 바닐라 라떼를 한 잔 타서 식탁으로 와 앉는다. 아이의 낮잠시간. 새근새근 아이의 숨소리만 날 뿐 고즈넉하기만 하다. 잠시 집도 숨을 고르는 시간. 아이의 잠이 깊어질수록 집도 점점 고요해진다. 지글지글, 보글보글, 바스락바스락, 달그락달그락, 탁탁. 슬그머니 주방에서 말을 걸어온다. 소곤소곤. 귀를 간지럽힌다.


나는 도무지 주방과 친해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주방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요리도 하고 이유식도 만들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노트북도 한다. 노동의 공간인 동시에 마음의 해우소이자 양식처랄까. 마음을 비우거나 채우고 싶을 때, 육아라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도 주방으로 간다. 괜히 냉장고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주방 수납장을 열기도 하고 식탁 위를 정리하기도 한다. 딱히 할 일은 없지만 주방을 서성이며 일거리를 찾는다. 무슨 일이라도 하면 아니 하는 척이라도 하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남편의 눈치도 덜 보인다. 주방에 조용히 숨어들어가 일을 하면서 복잡한 현실에서 잠시 여유를 찾는다. 주방에 오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생각이 단순해지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제 주방과 어느 정도 정을 붙였나보다.


오랜만에 친정엄마가 가져다주신 만두를 꺼내 찐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집 안 가득 따스함이 퍼진다. 만두는 손으로 빚어야 맛있다며 일 년에 한 번씩 만두를 빚는 엄마. 큰 대야에 다진 채소와 으깬 두부, 고기를 넣어 만두소를 만들고 꾹꾹 눌러 만두를 빚는다. 빚은 만두는 곧장 냄비에 쪄내고 한 김 식혀 간장과 함께 언제나 나에게 건네졌다. 자고로 요리는 그때그때 해서 먹어야 맛있다는 엄마의 오랜 지론이다. 분명 엄마는 만두를 빚는다고 하루 종일 주방에서 사부작거렸을 테다. 먹는 것은 고작 십분 내외인데 들인 수고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시간.


그러고 보면 엄마는 항상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밑반찬을 만들고 한 솥 크게 국을 팔팔 끓이고 밥을 안치고 설거지를 하고 때로는 냉장고에 식재료를 다 꺼내 정리하기도 했다. 가스레인지의 찌든 때를 박박 문지르기도 했고 가스 후드를 청소하기도 했다. 주방 수납장에 그릇을 꺼내 닦고 켜켜이 다시 쌓기도 했으며 싱크대를 청소한다고 종일 고무장갑을 끼고 베이킹 소다 가루를 연신 뿌리기도 했다. 무슨 할 일이 그렇게나 많은지 한번 주방에 들어가면 두세시간은 기본이었다.


어쩌면 엄마도 주방에서 사부작거리며 마음을 가다듬고 정리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애써 힘든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쓸고 닦고 볶고 삶고 굽고 지지고 문지르고. 그렇게 반복하기를 여러 번. 주방에 머무르는 시간이 오래인 날에는 우리에게 말 못할 어떤 일로 힘든 하루를 보내는 날이 아니었을까. 그때의 엄마 마음을 엄마가 된 지금 조금이나마 헤아려본다. 자식을 키우는 고됨, 생계를 꾸리는 고단함은 주방에 오면 모두 엄마의 손길을 거쳐 가벼워진다. 깨끗하게 빛나는 주방만큼이나 엄마의 마음도 순간 반짝이며 가뿐해졌을 테다. 깨끗하고 정갈한 주방이 마치 엄마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주방을 나서며 다시 현실과 마주하며 살림을 이어나가는 것. 이것이 엄마의 일상이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 차려준 밥을 먹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지금은 밥을 차리는 입장에서 떡하니 밥상이 차려진다는 일만큼 편하고 기분 좋은 일이 없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차리는 일은 나의 시간과 정성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몇 번의 밥을 얻어먹었는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밥상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따스한 온기가 포근하게 감싸줄 때의 느낌,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앞에 슬쩍 놓아주는 배려, 콧물이 찔끔 날 때면 휴지를 건네주는 손, 오늘 하루의 안부를 묻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모두 다 나를 위한 사랑이었음을. 한 끼를 차리는 것은 자신의 마음과 사랑을 내어주는 것임을.


오늘은 씽크대 위 선반을 정리해야겠다. 철이 지난 머그컵을 꺼내 물로 닦고 마른행주로 물기를 없앤다. 뽀드득뽀드득.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 깨끗해진 머그컵만큼이나 내 마음도 뽀송해진다. 오늘 저녁은 무얼 해먹을까? 두부를 크게 썰어 간장양념을 만들어서 보글보글 조려야지. 여기에 다진 소고기를 넣고 파를 넣고 마지막에는 참깨를 탈탈 털어 그릇에 담아 식탁에 올려야지. 조려진 두부만큼이나 나의 사랑과 정성이 오랜 시간 깃들여있다. 오늘 하루 수고한 남편에게 따끈한 저녁을 차려주고 따뜻하게 배를 채우고 따스해진 마음으로 아이를 포옥 안아주어야지. 깨끗해진 주방만큼이나 정갈해진 마음으로 따뜻한 밥상의 온기를 품고 주방을 나서야지. 주방은 엄마의 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따스함을 먹고 자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